예술
- 예술을 말하다 보면 다양한 의견을 발견한다. 예술의 경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나는 기계식 키보드에서 나오는 딸깍 소리도 예술적으로 들리고, 카메라에는 잘 담기지 않지만 심장에는 쉽게도 박혀버리고 마는 구름의 움직임이 예술적으로 보인다. 군더더기같은 말들로 열심히 포장해보지만 결국은 사랑이라는 단어 하나로 정리되는 삐뚤은 편지를 쓰는 나는 한명의 예술가이고, 샴푸를 마치고 린스를 한 상태의 머릿결은 보드라움은 예술적이다.
- 기계식 키보드의 소리는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정직하고 규칙적인 소리를 내뿜는다. 하얀 구름과 햇빛이 비친 자몽색 구름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어서 아까 봤던 구름은 어느새 사라졌다. 사랑을 고백했던 편지는 찢어졌을 것이고 사랑을 고백받았던 편지는 태워버렸다. 린스를 한 보드라운 머리칼은 어느새 기름에 떡이 져서 나의 냄새가 날 뿐이다.
위선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다." 나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전혀 나의 취향과 접점이 없거나, 어떻게 보아도 '재능'이나 '끼'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위로처럼 건네는 문장이다. 그런 문장을 내뱉는 나는 얼마나 예술적인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름칠을 하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꾸며내서 상대를 애무하는 나의 위선은 얼마나 예술스러운가.
- '위선'이라는 단어를 한번 더 글에 사용하고 싶지만, 그런 반복행위를 스스로 너무나 경멸하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위선을 검색해서 비슷한 단어들의 목록을 뒤져보고, 비슷한 색의 다른 느낌의 단어를 선택하여 집어넣는다. 이번에는 '허위'라는 단어가 선택받았다. 나의 허위는 이런 사소한 곳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저 지식이 부족하고 상식이 떨어지고 어휘력이 달릴 뿐인 나는 글 하나를 쓰는데도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이라면 내가 쓰는 이런 글은 어떤 예술일까. 나의 예술력은 몇으로 측정될까.
허위
- 글만 있으면 지루할 것 같아서, 첫 문단 정도를 읽다가 이내 떠나버릴 것 같아서 나는 꾸역꾸역 사진을 첨부한다. 그와중에도 최대한 글의 내용과 어울릴만한 사진을 찾아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은 허위와 위선이라는 단어도 부끄러워서 붙이기 부끄럽다. 그 단어 둘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싶다. 그저 스스로가 양산한 배설물에 자신감이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사랑이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글을 글로 바라보지 않고 작가의 자식, 작품, 똥 같은 것으로 상정하고 마는 이상한 습관 때문이다.
- 친구가 자살하고 나서 든 생각이 있다. 자살을 한 사람은 용기가 부족한 것일까 충만한 것일까. 세상을 떠나고 끔찍한 고통을 마주할 용기가 충만해서일까. 지금 그를 괴롭히는 무언가를 도저히 버텨낼 용기가 부족해서일까. 자살한 사람을 떠올리다 보면 눈물이 난다. 우울함이 몸과 마음을 잠식해 버려서 죽어버리는 사람도, 자신의 죄가 만천하에 공개될 것이 두려워서 죽어버리는 사람도. 죽음의 이유에 대해 더 적어보려고 했는데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죽음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정신이 반쯤 죽어있는 것 같다. 나의 정신은 내가 죽인 것이다. 그럼 나는 자살에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예술가
- 나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나다운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을 예술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예술적이지 않은 것은 없겠다. 아무 선이나 스케치북에 그린 뒤에 제목을 예술로 하면 적절할 것 같다. 예술에 비평은 해도 비난은 하면 안되지 않는가. 이런 것들이 예술적이지 않다면 나는 어떻게 하면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열심히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응가를 하다 보면 어느날 예술가가 되어있지는 않을까. 평소에는 맞춤법까지 검사해 가면서 멋들어지게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근데 오늘의 글은 그냥 이대로 쓰고 싶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예술적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