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 처음 안경을 겼던 시점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직 스마트폰이 있던 나이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눈이 나빠졌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일찍부터 책을 읽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유전인 것 같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아버지는 안경, 어머니는 라식, 동생은 렌즈, 나는 라섹을 했다. 우리 가족은 눈이 좋은 편은 아니다.
-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하기 전에 부산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수술과 각막이 두께와 금액에 대한 상담을 받은 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성당에 들렀다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시간을 때웠다. 초밥도 같이 먹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데이트를 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것 같다. 항상 후회는 늦기 마련이다.
수술
-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심드렁했던 나와 다르게 어머니는 초조한 모습이셨다. 실제로 수술을 집도하는 층은 상담을 받는 곳의 한 층 아래였는데, 한 타임에 여러 명을 수술하지는 않다 보니 복도는 조용했다. 어머니는 수술에 들어가기 직전에 손을 잠깐 잡아주시며 잘 되길 기도하겠다고 하셨다. 그런 말을 들으니 괜히 더 떨렸다. 무언가 큰 시험대 앞에 선 기분이었다. 정확히는 수술대였지만.
-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실 너무 순식간이라 '이거 되는 거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수술을 하고 난 직후에는 눈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해서 미리 사둔 싸구려 썬글라스를 끼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탔다. 손을 잡은 지도 참 오랜 시만이었던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몸을 의탁하며 자라왔건만 군대까지 다녀와서도 언제까지나 나의 보호자 자리에 계시는 어머니가 왠지 슬펐다.
3일
- 라섹수술을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술 이후 지옥의 3일이 환자를 기다리고 있다. 눈이 정말 아프고 간지러웠다. 그래도 하나 희망을 건 것은 먼저 수술을 하신 선배님들의 일관된 묘사였다. 3일이 지난 후 4일째의 마법 같은 변화에 대한 간증은 나에게 실낱같은 희망이 되었다. 3일째가 가장 고통스럽지만 4일째부터는 귀신같이 고통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수술을 하고 안경을 벗고 다니니 참 편했다. 안경을 벗고 사진을 찍어 보니 전과는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안경을 벗고 찍은 사진이라는 점은 같은데, 수술을 하기 전에 찍은 사진들은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자세히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냥 '내 얼굴이 아닌'듯한 얼굴들이 사진에 담겨 있었다. 물론 세월의 변화나 마음의 변화도 있겠지만, 이제 안경을 벗은 채로 사진을 찍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다. 그냥 그게 내 얼굴이 되었으니까.
안경
- 수술을 한 지 몇 년을 채웠다. 그동안 안경을 2개를 구매했다. 이제 안경을 '패션'으로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수술까지 해놓고 안경을 쓰는 스스로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괜히 더 멋있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사실 쓰건 말건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그렇게 멋있어지는 것도 아닌데.
- 최근에는 블루 라이트 차단 안경을 구입하려고 생각 중이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다 보니까 모니터를 보고 있는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한번 검색을 해봤다. '블루 라이트 차단 안경'. 예쁜 디자인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무엇을 살지 고민을 하다가 몇 년이 지나버렸다. 아마 평생 사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