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왜 싱글오리진인가?

하루 한 잔 커피이야기

운이 좋았습니다.  '작은 브루잉 카페'에서 커피일을 시작했다니 말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작아서' 할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쨌든 세상은 '규모의 경제' 논리로 돌아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좀 지나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작은 카페'라서 오히려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요. '작다보니'생산성에 대한 확장보다는 '품질'이나 '개성'을 더 이야기해볼 수 있었고, 그것을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 또한 수월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은 카페에서는 '필터커피' 기반의 커피 음료만을 제공할 수 있었고, '블렌드'가 아닌 '싱글오리진'을 이야기할 수가 있었나봅니다. 커피에서 싱글오리진이란 여러 나라나 혹은 지역, 아니면 농장이나 품종별로 커피를 섞어 일정한 맛을 만들어 제공하는 블렌드와는 정 반대의 개념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해 '한가지의 커피'입니다.  그러다보니 싱글오리진은 커피 자체의 품질도 뛰어나야 하고, 때로는 희소성도 갖고 있어야 하며 나라와 지역, 농장, 그리고 품종과 가공방식이 뚜렷하고 투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커피가 가진 본연의 맛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하며, 로스터와 바리스타는 그 본연의 맛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로스팅과 추출 작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여러 커피가 함께 섞여 일정한 맛을 추구하는, 그래서 그 정체성을 담은 '이름'으로 기억될 수 밖에 없는 블렌드 커피와는 달리 싱글오리진은 그 커피가 재배되어진 지역과, 그 커피를 수확하고 컨트롤한 농부와 매니저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분류되어집니다. 

예를 들어 이런 거죠. 지금까지 마셔본 케냐 커피 중 최고였던 '키에니'라는 커피가 있었습니다. 케냐 니에리 지역 무가가 소사이어티에서 만들어진 키에니 커피였죠. 패션푸르트와 크랜베리, 그리고 카라멜의 향미가 아주 뛰어난 커피였습니다. 그런데 이 커피는 케냐에서 매년 1000여명의 소작농들이 잘 익은 커피체리만을 핸드픽 - 일일이 수작업을 통해 수확한 후, 그것을 한데 모아 키에니밀로 보내고, 그곳의 조셉이라는 매니저가 선별, 가공을 해 생산되는 커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0여명의 소작농 그들 중 누구 하나라도 커피체리 수확을 소홀히 한다거나, 매니저인 조셉이 가공과정 중 실수를 범한다면, 그 해의 키에니 품질은 급격히 저하가 되고, 그 결과 상품 가치는 떨어지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1000여명, 모두의 노력이 충실히 어우러져야만 매년 케냐 키에니 Kenya Kieni 라는 싱글오리진의 명성과 품질을 이어갈 수가 있는 거죠. 

바로 그 섬세한 작업이 있기에 우리가 커피 한 잔을 두고 베리의 향미를 이야기하고, 그래서 그 베리라는 것이 크랜베리인지 블루베리인지, 그것도 모자라 건크랜베리인지 아닌지까지 따져들어가며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참 부질없다 싶으면서도 한편 공감되기도 합니다. 또한 그렇기에 '아무거나'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만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더욱 정교하게 세분화된 맛을 따져가며 이 대단한 결과물을 즐기는 것이 무척이나 당연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싱글오리진은 필터커피에 잘 어울립니다. 조금 더 비싸지만 그만큼 커피에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투영해 선택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 본연의 맛에 집중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도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커피의 향미를 좀 더 천천히 온전하게 즐기며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싱글오리진인가?" 

그 본연의 맛에 주목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피의 품질이 좋아야 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커피에 좀 더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개성과 취향 따라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고 더불어 일정 지역, 일정시기, 특정지어진 누군가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희소성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싱글오리진입니다. 매일 아침, 모닝 커피 한 잔을 위해 원두를 분쇄하고, 물을 데우고, 정성스럽게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 그 비효율적 과정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또한 이것이 싱글오리진이기 때문입니다. 필터커피로 즐기는 싱글오리진에는 그만한 충분한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