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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후드 Mar 09. 2021

언제나 내 마음에

Siempre En Mi Corazon


아비(장국영)가 친모를 만나고자 남국 필리핀까지 갔었으나, 그의 어머니는 커튼 뒤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비는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갔다. 자세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도망가듯이. 분노와 좌절과 에너지로 흔들리는 그의 뒷모습이 슬로비디오가 되면서, 이 곡 ‘Siempre En Mi Corazon’이 흘러나온다. 언제나 내 마음에. 언제나 내 마음에.


그때 아비의 대사는 이러했다.

다시 돌아오진 않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그것도 싫으시다면
나도 내 얼굴
보여주지 않는다.

이 장면을 처음 본 정확한 시점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어쩐지 이 장면은 기억에 계속 남아있다. 기억이란 게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알게 되었으나, 이 장면을 여태까지 품고 있는 이 현상을 기억이라는 말 이외에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영어로 하자면... unforgettable, 정도려나? 그러고 보면 잊지 못해서, 버리지 못해서 기억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에게 남게  것들 대부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라는 ,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 기억라는  나에겐 항상 그랬다. 물론, 여전히 그렇다.


모르는 것들에게 매번 끌렸었다. 뭔가를 제대로 보려는 의지 따윈 끼어들 여지없이,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멋진 것이었고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추한 것이었다. 그런 나의 태도는 스스로의 모습을 대할 때도 내내 유지되었다. 아마도 무언가를 똑바로 볼 때의 긴장감을 견딜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비가 등을 돌렸듯이 나도 거울 앞에서 등을 돌려온 것이다. 그러다가, 혹은 저러다가, 피할 수 없는 거울이, 잊지 못할 어머니의 얼굴이 방심하고 있던 틈에 불쑥 나타나 버릴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을 두고 어떤 이가 마음이 수백만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는 것 같다고 표현했었던 게 기억난다. 아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언제나 내 마음에’가 흐르는 느린 장면을 가끔 떠올리다가, 최근에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때, 아비가 어머니의 얼굴을 보겠다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면, 떼를 썼다면, 매달렸다면, 뭐가 좀 달라졌을까,라고.

그거야, 알 수 없지, 이젠.


다만, 만약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온다면, 이번엔 등을 돌리는 대신 눈을 감고 싶다. 눈을 감고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어디선가 ‘언제나 내 마음에’와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지, 한 번 들어보고 싶다. 지금까지는 모르는 것인데도 눈에 보이는 대로 왔다 그리고 갔다만 한 것 같아서, 눈이라는 걸 영 믿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아비처럼,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니, 눈 말고 아직 기능하고 있는 것에 걸어보고 싶다. 내가 전보다 좀 현명해졌다면 아마 코를 사용해 볼 수도 있겠지만, 아, 코는 귀보다 멀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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