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들이 간직한 제각각의 책과 이야기, 그리고 '이해'
사유(思惟) 매거진은 저자 커피사유가 일상 속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느낌과 생각들을 기반으로 작성한 에세이를 자체 선별하여 연재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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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무렵에는 ‘변론서들’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것들은 우주에 살고 있는 각 인간의 행위를 항상 정당하다고 입증해 주고, 각자의 미래에 대한 놀라운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 찬미서와 예언서였다. 탐욕에 굶주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정든 육각형 진열실을 버리고서, 자신의 ‘변론서’를 발견하려는 허황된 욕망에 사로잡혀 아래층 위층으로 마구 달려들었다. 그 순례자들은 비좁은 복도에서 서로 말다툼을 벌였고, 이해하기 어려운 욕을 내뱉었으며, 신성한 층계에서 서로 목 졸라 죽였고, 믿지 못할 책들을 통풍구로 내던졌으며, 머나먼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유사한 방식으로 내던져졌다. 어떤 사람들은 미쳐 버리기도 했다…….”
어떤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간, 수많은 사람들로도 가득 찬 공간이기도 하다. 그들 대부분은 도서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가 어느 방에서 도서관의 서가에 꽂힌 책들을 열어 살핀 뒤 그 책을 해석하는 데에서 답을 찾으려고 할 때에, 또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를 통해, 즉 자신들과 똑같은 순회자들로부터 답을 찾으려 하기도 한다. 또 그런가 하면 저쪽의 어떤 사람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부터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말하기도 하며, 또 다른 한켠에서 누군가는 너무 지쳐버린 나머지 도서관의 선회를 포기하고 자신의 방에 머무를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사실 도서관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책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내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도서관의 어느 한 방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에 나는 내가 태어난 방과 그 주변만을 돌아다니며 그 주변의 사람들과 서가에 꽂힌 책들에 뒤덮여 살았다. 그 시절에 나는 내가 익숙하게 돌아다니던 몇 개의 방과 몇 명의 사람들이 도서관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꽤 지나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도서관은 나의 상상 이상으로 방대하며, 도서관은 수많은 책과 이야기,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찬 – 그리하여 때로는 시끌벅적하며 때로는 잔인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것을.
하지만 도서관에 대한 이러한 관찰보다 도서관을 더욱 매력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도서관을 순회하는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던지는 질문이 사실은 동일한 것이라는 점이다.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은 제각각의 어느 한 방에서 태어났고 그들이 어린 시절 돌아다닌 도서관의 어떤 공간들은 저마다 달라서, 각자의 사람들을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와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외에도 이러한 공통적인 질문을 품은 채 사실 모든 사람들이 도서관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처음 만나는 사람도 무언가 일종의 동료애를 느끼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도서관의 수많은 방들을 돌아다니는 동안 목격한 수많은 아이러니한 상황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러한 목격은 종종 도서관의 복도에서 목격할 수 있는 말다툼이 대표적이다. 말다툼이 벌어지는 복도의 이름은 다양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똑같은데, 특히 ‘인터넷 신문’이나 ‘Youtube’라는 이름의 복도 주변에 붙어 있는 방들을 돌아다니면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벌이는 말다툼과 욕설이 섞인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한 욕설이나 말다툼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면 좋기도 하겠지만, 큰 말다툼을 벌이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자신들과 비슷한 방에서 태어난 이들을 모아 어떤 집단을 조직하고 양쪽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것처럼 둘 중에 어느 하나가 완전한 파멸에 도달할 때까지 치열하게 싸운다.
그러나 그러한 싸움은 예전에 비하여 도서관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들을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 더 많은 책과 이야기들을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한 요즘에는 이상하게 가라앉지 않고 더욱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분명 도서관을 돌아다니는 나와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지만, 이미 너무 과열되어버린 싸움에 집중하고 있거나 혹은 지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란 아마도 자신의 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적대감뿐인 것인지, 그러한 싸움에서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며 도서관의 어떤 방을 불태우거나 책들을 층계참 밑으로 집어던지기도 하며,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을 층계참 밑으로 집어던지거나 죽이려고 하는 모습들을 볼 때, 나는 어쩌면 불행히도 그러한 기회는 그저 우리 곁을 영원히 정처없이 배회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공통적인 질문을 가지고 도서관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그 사실은 모든 사람들은 도서관의 서로 다른 방에서 태어났으며 각자의 이야기와 책들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오늘날 잊혀지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바로 이것을 사람들이 잊었기 때문에 점차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그 다툼들이 점차 말다툼의 정도를 넘어 상호 간의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가고야 마는 정도로 악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서관에서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마주쳤을 때, 우리가 첫 번째로 느껴야 하는 감정은 오늘날의 도서관처럼 경계심이 아닌, 동료애와 호기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이 도서관은 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간, 수많은 사람들로도 가득 찬 공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제각각의 이야기와 책을 담고서 서로 다른 방에서 출발했고, 대부분은 도서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사실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 그 무렵에는 ‘변론서들’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것들은 우주에 살고 있는 각 인간의 행위를 항상 정당하다고 입증해 주고, 각자의 미래에 대한 놀라운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는 찬미서와 예언서였다. 탐욕에 굶주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정든 육각형 진열실을 버리고서, 자신의 ‘변론서’를 발견하려는 허황된 욕망에 사로잡혀 아래층 위층으로 마구 달려들었다. 그 순례자들은 비좁은 복도에서 서로 말다툼을 벌였고, 이해하기 어려운 욕을 내뱉었으며, 신성한 층계에서 서로 목 졸라 죽였고, 믿지 못할 책들을 통풍구로 내던졌으며, 머나먼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유사한 방식으로 내던져졌다. 어떤 사람들은 미쳐 버리기도 했다…….”
20세기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도서관’이란, 어쩌면 생각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지금, 나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도서관을 여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다툼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공통된 ‘변론서’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무언지 다시 한번 되짚어보아야 하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붙임.
『바벨의 도서관』은 20세기 라틴문학의 대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바벨(Babel)』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고대 바빌로니아의 도시명으로, ‘신의 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경에는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신에 도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늘 끝까지 닿는 탑인 바벨탑(Tower of Babel)을 세우려고 했으나, 이에 노한 신이 원래 전 인류에게 공통적이었던 언어를 뒤섞어버린 끝에 서로 간에 말이 통하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