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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사유 Nov 06. 2022

죽음에 대한 사회적 책임

무엇이 죽음 앞에서의 올바른 자세인가

 생각을 움직여 다른 꿈을 꾸다, 동상이몽(動想異夢) 매거진은 저자 커피사유가 바라본 세상에 대한 시각을 담는 공간입니다.

 더 많은 생각들을 만나보고 싶으시다면, 저자의 블로그를 방문해주세요.




 기억하겠습니다.


 그 누구에게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기에. 얼굴을 모르는 이들뿐 아니라, 제 지인, 친구, 가족, 심지어 저 자신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기에.


 혹자는 선생님들의 죽음을 세월호 참사와 엮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일부 지적에서는 타당할지 몰라도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었기에, 빠른 대응은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지금 마주하게 된 죽음이었기에.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국가의 재난 대응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속속히 밝혀지고 있는 그러한 죽음이었기에.


 어떤 이들의 ‘책임’이 없다는 말은 법률적으로 유효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책임 없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죽음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다.”라고 하는 바로 그 문장. 그 말을 그들은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재난 대응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시스템과 매뉴얼들에서 문제를 일으킨 부분을 찾고, 같은 문제가 재발하였을 때 동일한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이 남겨진 우리들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마땅한 책임, ‘죽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아니던가.


 ‘죽음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과연 다하고 있는가. 애도는 단지 형식적인 예의를 표하는 자세일 뿐이지, 본질 그 자체를 정확히 꿰뚫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의 본질 앞에서 우리는 묻고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 죽음들이 여기에 있게 하였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 비극을 막을 수 없었는가? 역사 속의 수많은 재해와 재난 속에서, 인류가 그나마 조금이나마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게 이끌었던 그 물음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물음만큼은 기억되어야만 하기에 저는 선생님들의 죽음을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죽음’ 그 자체에 대한 애도를 넘어, 그 책임까지 다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이 단순한 형식을 넘는, 진정한 죽음 앞에서의 태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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