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을 들여다본다
자신은 거의 동정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한 사람이 있다. 수많은 비행기와 조종사를 지휘하는 책임자 리비에르이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조종사, 나사를 강하게 조여둔 정비사, 기한이 지난 보고서를 작성하는 직원. 리비에르를 상사로 두고 있는 주변인들은 그의 엄격한 잣대가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약간의 동정심으로 있다면 넘어갈 수 있는 이러한 사건들은 결국 사고로 이어진다고 리비에르는 생각한다. 이 엄격함은 동정심의 부재로 이어지는 것이다.
리비에르의 하루를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자신과 주변의 것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나에게는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다. 이 생각을 더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그의 행동은 야간 비행 추진이다. 심연과 같은 밤하늘을 비행하는 조종사들은 종종 악천후를 마주한다. 그들의 운명은 두 가지로 나뉜다. 살아 돌아오거나 실종된다.
살아 돌아온 조종사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 따뜻한 저녁상과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 뛰어노는 아이들과 들판에 만연한 생명력 같은 것들에서 무용함을 발견한다. 실종된 조종사는 이 무섭고 막연한 리비에르의 추진력이 되는 야간비행의 의미를 곱씹는다.
야간 비행을 지시하는 리비에르도 이 비행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는 조종사들만큼이나 밤하늘을 자주 들여다본다. 심연과도 같은 밤하늘을 바라보는 이 행위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는 타인에게는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는 야간 비행을 무리하게 끌고 나가는 자신의 엄격함에 대해 생각한다. 인류의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한 것이라 자위하면서도, 이것이 정당한지 부당한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고는 전체의 이익에 가려져 희생되고 있는 개인의 가치에 잠시나마 연민을 가진다.
리비에르의 비행장에는 그처럼 나이 든 정비 감독 르루가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을 추구하지 않는 르루에게서 리비에르는 삶의 완결성을 느낀다. 단순히 삶을 마무리해가는 나이대라는 점 때문이라기보다는,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는 모습에서 비롯된 결론인 것 같다. 노화로 인해 신체적 결함이 생긴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생각은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이처럼 오래 존재하는 것들에 의미를 두는 그가 그렇지 못한 것들에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대목이 작중 전반적으로 드러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도, 리비에르가 야간 업무를 하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곱씹으니, '그동안 나는 작고 개인적인 것에 집착해왔기에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나는 추운 겨울에 차 밑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지나치지 못한다. 이를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리비에르가 (야간 비행, 인류를 위한 행동보다는 상대적으로) 가치 없는 것이라 여기는 연민이었다는 생각이 스친다. 사랑이었다면 고양이를 집으로 데리고 가서 따뜻한 환경과 더 나은 여생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동물의 인생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이 연민은 무용한 것인가? 여전히 나는 작은 것들에게서 의미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리비에르의 인류 발전이란 지대한 목표에 동참하고 싶지 않은 거부감 혹은 부담감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