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티 2부 11화

어느 여름날

by 꽃피네

“이야! 젊음이 좋긴 좋은 모양이구나! 청춘의 가슴에 불이 붙었네 그려!”

마르코는 무엇을 그렇게 재미있게 훔쳐보고 있는지, 연신 헤벌레 웃으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하늘이와 똑소리 나는 남아 ‘똑남’ 화영의 신방을 뚫어져라 응시하였다.

그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으며 입가에는 침마저 질질 흘리고 있었다.

제니가 그런 마르코에게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그는 제니의 접근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헤이! 미스터! 어이구 살판났네, 살판났어!”

제니는 마르코를 놀래키려고 바짝 다가가, 그의 귓전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이런 장난기 섞인 외침에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에이! 바보 같이… 신랑 저 머저리! 그거 하나도 제대로 딱딱 못 넣다니”

그는 어린 고등학생 부부의 신혼생활을 엿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야! 마르코 폴로! 내 말이 말 같지도 않아! 도대체 혼을 어디다 빼 놓고 있는 거야! 이 바보 천치 같은 유령 녀석아!“

제니가 빽 하고 호통을 쳤다.

“아이고 놀래라! 제니 스미스님, 내가 혼을 어디다 빼 놓다니, 혼 여기 있다! 내가 혼이고 유령이야! 이제 봤더니 바보는 내가 아니고, 바로 너라고!”

마르코는 제니에게 곁눈길도 주지 않으며 얄밉게도 낄낄거렸다.

제니와 마르코의 한바탕 소란에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다른 신혼살림을 구경하고 있던 유령들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라비 샤르마는 17살 우진이와 ’껌씹녀 영자매’ 중, 24살 언니 희영의 깨 쏟아지는 부부생활에 “아! 아까운 저 깨들!”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는 이 연상녀와 연하남의 커플 조합이 환상적으로 잘 어울린다고 매우 흡족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편, 남자 경험이 전혀 없었던 샴쌍둥이인 아이샤와 파티마 시디크 자매는 18살 은하와 ‘껌씹녀 영자매’ 중, 21살 동생 순영의 신혼방에 아예 풍덩 빠져 있었다.

“남사스러워라! ’ 아이 만들기‘의 즐거움이 저런 거였다니”

시디크 자매는 한없는 동경과 기대에 찬 눈초리를 빛내고 있었다.

제니는 자신에게는 관심을 뚝 끊고, 아예 눈길도 주지 않는 마르코가 야속하였다.

그는 여전히 18세 천재 하늘이와 좀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한 17살 ‘똑남’ 화영의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에 넋이 나가있었다.

“저러다간 하늘이 거, 다 닳겠네! 화영이 저건, 무식하게 막 들이대는구나! 야! 이 함포야! 포켓볼을 넣을 땐 힘보다는 정교한 기술이 아니겠어! “

때로는 안타까운 듯, 때로는 성이 안 차는 듯, 저 어린 부부의 끝없는 힘찬 결합에 마르코는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지도 편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마르코가 야속했던 제니가 드디어 폭발하였다.

“마르코! 너 이리 와! 넌 좀 맞아야 정신 차리지 ’사람 되기‘는 영 틀렸다!”

제니는 씩씩거리며, 손을 들어 마르코의 귀싸대기를 올릴 것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아이고 무셔버라! '사람 되기'는 쯧쯧, 우린 유령인데 사람이 되긴 왜 되냐! 이 멍충아!”

짐짓 두려운 표정을 지은 마르코는 화가 난 제니를 피해 2011년 여름의 서울로 도망쳐 버렸다. 하늘론가 땅으론가 휙 꺼져 버린 것이었다.

“야! 너! 거기 안 서!”

제니는 방방 뛰며, 사라진 마르코의 뒤를 쫒았다.

마르코와 제니가 그렇게 사라져 버리자, 라비와 아이샤, 파티마 시디크 자매도 그 뒤를 따랐다.

나 푸어박도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뒤뚱거리며 사라지는 시디크 자매를 놓칠새라 그녀들의 뒤를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유령들과 나의 넋 푸어박은 헐레벌떡 숨을 몰아 쉬며 제니와 마르코를 뒤쫓아, 현재의 2025년 여름에서, 과거의 2011년 여름의 서울로 시공의 여행을 하였다.


마르코가 제니를 피해 냅다 줄행랑을 친 곳은 바로 2011년 끈적한 여름의 서울, 그곳에서는 깔깔거리는 네 살배기 앙증맞은 소천재 하늘이와, 남반구 광학천체망원경설치 프로젝트에 정신없는 아빠 천재 홍우영과 그의 아내들인 태희와 앵두가 알콩달콩 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딸기네 집안 풍경도 한눈에 들어왔다.

2011년, 그해 여름으로부터 20여 년 전, 1992년 어느 늦은 봄날 밤, 딸기가 여중 2학년 때였다.

칼단발 히메컷에 교복을 단정하게 입은 어린 딸기는 영어, 수학, 국어 과목의 대치동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 도중 납치되어 집단 강간을 당했었다.

그녀는 개포동 구룡산 구룡마을 입구에서, 두 명의 흑인들과 2명의 아시아 청년들에게 처참히 집단 성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요즘에 들어서야 한국인들은 엔조이로 생전 모르는 상대하고 원나잇도 하고, 다른 나라, 다른 인종간의 성교도 흔치 않게 하고 있다고 하지만, 딸기가 어렸을 적만 해도, 한국의 청춘 남녀들은 우리 한민족간만의 사교가 대세였던 시대였다.

시커먼 외국인들에게 둘러쌓인 과거의 딸기는 극단의 공포를 느꼈었다.

사내들은 번갈아 가며 딸기의 다리사이의 밑에 여러 차례를 사정한 후, 홀딱 발가벗긴 알몸의 그녀를 길거리에 버렸다.

그런 가엾은 딸기가 엄마가 되어 오늘 산사태가 일어난 바로 그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 깊이 묻었던, 몸서리쳐지는 과거가 꿈틀거리며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딸기의 질구에서는 짐승들이 싸놓은 누런 정액이 차고 넘쳐, 가녀린 두 다리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오늘 저 억수 같이 퍼붓는 장대비처럼 말이다.

2011년 7월 27일 오전,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전을 부치면서, 구룡산 산사태 뉴스 속보를 접한 33살의 성숙한 딸기는 흐느끼며 벌벌 떨었다.


2011년 7월 서울의 여름, 그해는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다.

어느 저녁 무렵, 공주네 막내 쌍둥이들이 우영정육점에 엄마 우산 좀 가져다 주고 온다며 부리나케 운동화 끈을 맸다.

쌍둥이가 켜 놓은 거실의 ‘저 홀로’ 티브이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늘에 이어 내일도 비소식을 알렸다.

“일란성쌍둥이들은 꼭 붙어 다닌다니까! 어쩜 저리 예쁠 수가 있을까!“

앵두가 언니 태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주방에서는 이 집의 장남에게 거의 동시에 시집온 두 며느리인 태희와 앵두가 시어머니인 공주 대신에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자기들 딴에는 특별히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여, 퍽퍽한 닭가슴살에 생선가스 퓨전 덮밥을 준비한다고 부산을 떨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녀들은 시부모나 시할머니가 드시기 싫어하는, 질긴 닭가슴살을 부드럽고 연하게 조리한다고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재잘거리면서 저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래 채앵이 네 말이 맞아! 막내 쌍둥이들 말이야, 난 지금도 밤에는 우헌이하고 우한이가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아직도 헛갈린다니까!“

“맞아요! 언니.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맨날 커플룩으로 옷도 같은 옷 입지, 얼굴도, 키도 게다가 몸맵씨마저 전부 비슷비슷하지, 우리 엄마는 어떻게 아홉 쌍둥이들을 다 구별하시는지 몰라요“

바닥이 약간 편평한 웍 궁중팬 안에서는 밀가루 반죽에 빵가루 옷을 입힌 생선가스가 기름 위에 둥둥 떠, 제발 자기 좀 봐 달라고 지글지글거렸다.

“어머! 다 탈 뻔했네!”

태희는 휴 하며, 기다란 튀김 젓가락으로 노릇노릇해진 생선가스를 뒤집었다.

앵두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코맹맹한 목소리로 요리하기에 여념이 없는 태희에게 아양을 부렸다.

이 두 여인은 한때는 천재 홍우영이라는 한 남자를 두고 서로가 벼린 칼을 든 원수이자 정적이었지만,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애정만이 가득하였다.

앙숙이었던 그녀들이 그렇게 변한 것은 앵두가 태희를 자신의 언니이자 여자 서방님으로 깍듯이 섬기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언니! 그뿐만이 아녜요. 엄마는 비상하시다고 할까, 정말 영리하신 분이에요! 우리 쌍둥이 시누이들 작명하신 것 좀 봐봐요. 그 천재성이 어디 가나요!“

“그래, 채앵이 네 말이 맞아! 엄마는 진짜 재치가 있으셔! 우리들 남편 이름도 엄마가 지었대. 우영(宇英)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들 오빠는 바로 우주의 영웅이 아니겠어!"

"그렇네요! 말 되네요! 언니"

"그렇지? 이 언니가 재밌는 얘기 하나 해 줄게, 잘 들어 봐, 채앵아“

“먼데요? 언니”

“엄마는 우영 오빠를 낳고, 1년 뒤 연년생으로 태어난 첫 번째 쌍둥이 큰언니들 이름을 우주의 기운을 듬뿍 담아, 언니는 우선(宇仙), 동생은 우희(宇姫)라고 지으셨대. 우주의 선녀! 우주의 여자란 뜻으로 말이야 “

“어머! 큰언니들, 정말 예쁜 이름이에요! 언니"

"그렇지? 그리고 제일 친한 여고 시절 내 친구들, 2번째 여자 세 쌍둥이들 있잖아. 걔들은 우주(宇宙), 우수(宇秀), 우성(宇星)으로 아예 남자이름으로 지으셨다는 거야. 이번에도 또 여자아이들이라니 다음번에는 꼭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엄마 최대의 염원을 담아 그렇게 지으셨던 거지 머겠어!

“호호, 엄마는 참 재미있으셔! 여자아이에게 남자 애 이름이라니, 작은 언니들은 애들에게 인기 최고였겠다!”

앵두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태희에게 맞장구를 쳤다. 사실 앵두는 여우처럼 영악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추임새 하나는 죽이 척척 맞았다.

태희는 그런 예쁜 앵두를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이 웃겨! 그런데 채앵아, 어랍숑!

2년 후, 엄마는 3번째 여자 쌍둥이를 또 출산하셨는 거야! 그래도 아빠는 다음번엔 아들 낳으면 되지 하시면서 크게 기뻐하셨대“

“어휴 그때 벌써 딸만 일곱을 낳으셨군요. 스물다섯에 8남매나 낳으시다니! 엄마 아빠는 대단하세요!”

“그건 정말 그래! 우리 나이 때에 그렇게 일찍 대가족을 이루셨다니! 아마도 엄마가 외동딸이었고, 아빠도 갓난아기 때 버려진 고아였었기에, 그래서 그만큼 아이들이 절실하셨을 거야!”

“오빠에게서 그 얘긴 들었어요. 그런데 우연이와 우화 시누이는 나랑 동갑인데, 우린 서로 존댓말 하고 있어요“

“염려마, 채앵아! 걔들, 보기 보다 아주 털털해서 금방 친해질 거야”

“그렇게 되면 좋겠어요, 언니. 그래서 어떻게 됐대요?“

“일단 생선가스 좀 건져내고, 다시 튀김옷 입혀서 집어 넣자. 야! 살살해, 그러다간 살 덴다!“

‘알았어요 언니, 염려 붙들어 매시라니까요! 얘기나 마저 해 봐요“

앵두는 촘촘한 채로 기름 위에 뜬 튀김옷의 찌꺼기를 건져 내었다.

그런 다음, 앵두가 묽은 밀가루 반죽에 고슬고슬한 빵가루로 튀김옷을 입혀 사각 쟁반에 포개 놓으면, 태희는 생선가스를 끓는 기름에 하나씩 집어 넣었다.

그녀들의 일손은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다정한 이야기는 끊임 없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아빠의 격려에 심기일전하신 엄마는 우주를 담은 예쁘고 빛나는 여자란 뜻으로, 예쁠 연자를 써서 우연(宇娟), 빛날 화의 우화(宇華)로 지으셨대.

그 이름뜻대로 이 시누이 동생들은 보면 볼수록 정말 정말 예뻐진다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역시 인생은 각자의 이름대로 흘러가나 봐요. 아이참! 우리 할아버진 왜 내 이름을 채앵이라고 지으셨는지… 꼭 중국 이름 같아요. 오빠가 그러는데 만다린으로는 차이잉으로 발음한대요”

“차이잉? 채앵이가 머가 어때서 그래? 독특해서 좋잖아. 빛깔 고울 채, 앵두 앵, 채앵(彩櫻)! 예쁜 앵두 참 예쁘잖아! 난 네 이름이 맘에 들어“

“하기야 앵숙이나 앵자나 앵희보단 예쁘지만서도…”

태희는 비닐장갑 낀 손 대신 어깨를 모아 시무룩해진 앵두를 껴안는 시늉을 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앵두도 언니의 칭찬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활짝 웃어 보였다.

“언니와 오빠만 맘에 든다면, 내 이름이 머래도 난 상관없어요!”

어느새 앵두의 고개는 태희의 입술에 가 있었다. 쪽 하는 입맞춤 소리가 빗소리와 생선가스가 지글거리는 소리에 묻혔다.

“엄마 아빠는 다음번에는 마지막으로 아들 쌍둥이을 낳겠다는 생각에, 미리 작정하고 이름부터 정해 놓으셨대. 처마 헌을 써서 우헌(宇軒)과 날개 한의 우한(宇翰)이라고 말이야.

그런데도 운명의 장난이었던가, 얄궂게도 또 여자 쌍둥이가 태어난 거지 머겠어! “

“이야! 끝내주는데요! 여자이름에 우주의 처마, 우주의 날개라니, 세상에! 세상에! 이런 이름들이 세상천지에 어디 또 있을까 몰라요“

“호호 그건 그래! 더군다나 아이들 성이 한자로 클 홍(洪) / 성씨 홍(洪)이잖아. 그리고 이름들은 죄다 우주나, 별, 하늘과 연관되어 있어"

"어쩜! 언니. 홍이란 성은 크다는 다른 뜻도 가지고 있으니 커다란 우주나, 별이나, 넓디 넓은 하늘에 정말 잘 어울리는 성씨로군요"

"딩.동.댕! 빙고!

그리고 우선, 우화, 우수, 우연이란 이름은 또 다른 뜻도 있어서 어디서나 관심을 끌었대. 그래서 우화언니는 학교에서 줄을 설 때 ‘난 너희들 우선이야!‘라고 하며 가끔 자기가 언니 우선이라고 반 아이들을 속여 먹었다는 거야”

“호오! 그래서요?”

“아무튼, 그리 그리해서 엄마 아빠는 또또엄마, 또또아빠라는 별명의, 졸지에 소문난 다산왕이 되셨던 거야“

“그럼, 세 살배기 늦둥이 ’에헴삼촌‘ 우진이는 엄마 아빠 연세도 있으신데, 어떻게 낳으시게 된 거예요?“

“응, 4년 전 엄마가 45세 때, 2007년 3월 31일 밤, 하늘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대.

디오니소스의 찬가 말이야. 그 찬가를 듣자, 그때부터 갑자기 사랑이 넘쳐 올라서, 엄마와 아빠는 정신없이 사랑을 나누셨대“

“세상에나! 세상에나! 언니, 우리도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넘 부러워요”

“그럼! 그럼! 우리도 그 나이가 되면 더하면 더했지, 엄마 아빠보다 못하진 않을 걸!“

“그래요, 언나. 난 언니랑 오빠 품에서 살 거예요, 그건 그렇고 우진이는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되긴! 결론은 뻔한 거 아니겠어! 급한 김에 피임을 미쳐 못 하신 엄마 아빠가…“

“엄마 아빠가? 그래서요?”

“에구! 말도 마. 우진이를 덜커덕 가지게 되신 거지. 첫째 아들을 낳고, 내리 딸 아홉에 17년 만에 늦둥이라니!

11남매의 엄마 아빠는 너무 기쁜 나머지, 보배 진자를 써서 우주의 보배라는 뜻으로 귀하디 귀하게 우진(宇珍)이라고 부르셨더랬어.

그때, 난 하늘이를 2007년 5월 10일 날 출산했지 머야. 어휴! 그래서 몇 개월 뒤 태어난 우진이는 1살 차이지만 폼나는 ‘에헴삼촌’이 되었고,

우리 하늘이는 우진이보다 나이는 한 살 많지만 존댓말을 해야 하는 조카가 되었어“

“오호! 그런 비화가 있을 줄 몰랐어요. 에고! 불쌍한 우리 하늘이!

하여튼 엄만 정말 문학소녀셨던가 봐요. 그런데 언니가 낳은 하늘이와 시호라는 이름도 참 예뻐요!

비로소 시(始)에 하늘 호(昊), 하늘의 시작! 시호(始昊)라니 정말 멋지지 않아요?“

“그래 정말 멋져, 채앵아! 오빠가 미리 지어 놓은 이름 말이야. 네가 낳게 될 아이가 남자아이면 뜻 지에 하늘 호, ’하늘의 뜻‘ 지호(志昊),

여자아이라면 하늘이처럼 우리말로 샛별이란 이름도 참 예쁘지? 그렇지?“

“응, 언니! 너무 예쁘고 마음에 쏙 들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오빠는 천재가 맞긴 맞는가 봐요! 어쩜 이렇게 형제자매끼리 잘 어울리는 이름들을 짓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리가 공동 남편 하나는 잘 골랐단 말이야. 그러지 말고 채앵이 너도 오빠랑 아들과 딸 한 명씩, 둘 낳을래? 허락해 줄게”

“정말이야? 언니 고마워! 언닌 참말로 천사님, 선녀님이야! 그리고 언닌 영원한 내 서방님이야. 이 채앵이는 오빠와 언니, 이렇게 두 남편이 있어 너무 행복해!”

그렇게 그녀들은 신나게 재잘거리며 조리를 하고 있었다.


끈적한 그 여름날 늦은 오후, 불 앞에 선 태희와 앵두는 비지땀을 뻘뻘 흘리면서, 혼신의 힘을 다하여 퓨전요리에 도전하였다.

우선 시장통 시골통닭집에서 1.5킬로짜리 큰 토종 암탉 세 마리를 손질해 달래서, 닭대가리와 모래주머니며 닭발까지 모두 챙겨 왔다.

올해 만 69세인 왕할머니가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한 머슴 사위아들에게 해 먹이겠다고 꼭 챙겨들 오라는 당부 때문이었다.

”어휴 징그러워! 할머니께서는 이런 걸 어떻게 요리하신담!“

그녀들은 투덜대면서도 고분고분히 왕할머니의 신신당부를 따랐다.

태희와 앵두는 왕할머니가 조리할 닭대가리와 모래주머니인 닭똥집과 닭발을 따로 용기에 담아 냉장고 제일 위칸에 쑤셔 넣었다.

먹기 좋게 토막 쳐진 닭의 몸통살은 미리 물에 담가 놓아, 핏물이 잘 빠지도록 하였다. 그리고 흐르는 물에 깨끗이 휑궈, 물이 팔팔 끓고 있는 커다란 솥에 살살 집어넣었다.

“채앵아 시간 잘 맞춰! 더도 덜도 말고 딱 5분만 데쳐 내자! 오래 데치면 삶아져서 무척 퍽퍽해지거든”

“5분? 너무 짧지 않을까요? 그러다 설익으면요?”

“괜찮아. 데친 다음 구울 테니까”

“요리하면 역시 우리 언니야!”

태희는 생선가스를 조리했던 큰 웍 궁중팬을 키친타월로 닦아내고 참기름을 살짝 한 바퀴 둘러 두었다. 앵두는 언니가 조리하기 편하도록, 싱크대 설거지통 안의 쓰레기들을 정리하였다.

“오케이! 언니. 나는 이런 간단한 건 빈틈없이 잘하거든요! 언니는 나보다 요리를 잘하니까 토크 블랑슈를 쓴다면 영락없는 미쉐린 트리플스타 셰프처럼 보일 거예요! 호호.

난 언니의 딸랑이 조수니까 좀 있어 보이는 비니를 쓴다면 어울릴 것 같은데…요“

언니 태희를 한껏 치켜세운 앵두는 정작 자신의 조리 실력에 대해서는 자신이 영 서지 않는 듯, 살짝 말꼬리를 흐렸다.

5분이 지난 뒤,

“지금이다!”

둘은 한목소리를 내지르고서는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엇이 그렇게도 좋은지, 4살짜리 하늘이의 웃음소리를 흉내 내며 큰소리로 깔깔거렸다.

“아하하! 웃겨!”

“호호! 딱딱 들어맞네요 “

“그래! 우린 짝이야”

“그렇죠? 척하면 척이죠! 언니!”

“하하하! 그럼! 그럼!”

엄마들의 드센 소녀 같은 깔깔 웃음소리에 왕할머니 방에서 동생 시호와 함께 낮잠을 자고 있던 하늘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손등으로 눈을 비빈 하늘이는 깔깔 웃음소리를 쫓아 쪼르륵 내달렸다.

“엄마들도 저희들처럼 깔깔깔 웃으시는 거예요? 그건 저와 우진이, 은하가 장난칠 때나 내는 웃음소리인데, 왜 엄마들도 그렇게 웃으세요?“

의아해하는 하늘이는 참말로 앙증맞은 작은 요정이었다.

“응, 엄마들도 장난치고 있었거든“

앵두는 하늘이의 말에 대꾸를 해 주면서 얼른 장갑을 벗고 손을 재빨리 씻었다. 그녀는 똘망똘망한 눈동자의 하늘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공주님! 오늘 저녁은 엄마표 특별식을 해 드릴 거예요”

진짜엄마인 태희가 키‘큰엄마’인 앵두의 품에 안겨 있는 하늘이의 볼에 뽀뽀를 하였다.

“자, 공주님 조금만 기다려요. 엄마 휴대폰으로 고모님 댁에 전화해서 우진이 그만 놀고 밥 먹으러 오라고 하세요. 고모님과 은하도 같이 오라고 하고, 고모부도 오셔서 드시라고 전해 주세요“

앵두가 하늘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어서 전화를 하라고 상냥하게 아이의 엉덩이를 톡톡 쳤다.

앵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소천재 하늘의 특별 주문이 떨어졌다.

“예, 키큰엄마! 고기는 너무 오래 요리하면 퍽퍽하고 맛이가 없어요. 전 퍽퍽이가 싫어요, 그러니 적당히 구워 주세요“

특별 주문을 마친 소천재 하늘은 주방의 식탁 위에 있는 앵두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거실 소파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어린아이에게도 억수같이 비를 퍼붓는, 이런 끈적한 여름에는 불이 있는 주방이 싫은가 보다 싶었다.

태희와 예쁜 앵두는 끓는 물에 데친 닭고기를 건져서 헹군 다음, 채로 물기를 뺐다. 그런 다음, 웍 궁중팬에 콩기름을 둘렀다.

아까 둘러 둔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닭고기의 잡내를 잡아주었다.

그녀들은 주거니 받거니 소금과 후추를 살살 뿌려가면서, 닭고기가 인덕션 웍에서 껍질이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충분히 구웠다.


그때였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하늘이의 증조모인 왕할머니와 여자로는 막내인 쌍둥이 우헌과 우한이가 들어왔다.

“어휴! 하늘에 구멍 났나 봐! 막 들이붓네!”

“이건 숫제 비가 아니라, 양동이로 퍼붓네, 부어!!“

“그러게! 비 때문에 아예 앞이 안 보여! 눈도 뜰 수가 없고, 에잇!”

우산 심부름을 하러 정육점에 갔던 막내쌍둥이인 우헌과 우한이가 투덜거리며, 할머니의 뒤를 따랐다.

“은하야! 고모들 왔나 봐. 끊을게, 이따 봐”

하늘이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외사촌 동갑내기 은하와 급히 통화를 마쳤다.

“왕할머니!”

하늘이는 통통거리며 달려가, 공주의 엄마인 왕할머니의 옷깃을 꼭 잡았다. 왕할머니는 하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하늘이는 왕할머니 품에 얼굴을 묻고 어리광을 부렸다.

“아휴! 끈적끈적해, 돌아가실 뻔 했네!“

방년 20살, 대학 2년생인 언니 우헌이가 집안에 들어서며 살인적인 서울 여름의 습도를 불평하자, 15분 뒤늦게 세상의 빛을 본 동생 우한이가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끈끈이주걱이 따로 없네, 이러다간 비 때문에, 정말 방구석 귀신이 되겠어!“

막내 고모들의 이런 불평들을 들은 체 만체, 소천재 하늘이는 허리를 편 왕할머니에게 닿으려고, 발 뒤꿈치를 한껏 들어 까치발을 하였다.

증조 왕할머니가 다시 허리를 굽혀 아이의 눈높이에 키를 맞추자, 하늘은 예쁜 두 손으로 왕할머니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아이는 왕할머니에게 간신히 볼키스를 한 후, 막내 고모들의 불평들이 이치에 맞지 않은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숨 쉴 새도 없이 쫑알거렸다.

“고모들이 비가 내리더니 왜 파리가 되셨나요? 끈끈이주걱은 파리를 잡아먹는 식충식물이에요. 장마나 식충이를 탓하지 말고, 저기 남반구로 여행 떠나 보세요.

아니다!

왕할머니! 엄마들 신혼여행도 지금껏 못 갔대요. 고모들도 많으니, 장마통에 집에만 있게 하지 마시고 이 번에 아빠와 엄마들 신혼여행 좀 보내 주세요”

“오냐! 오냐! 내 새끼! 알았다. 이 할미가 꼭 보내 주마” 그러자 이번에는 막내 쌍둥이 고모들이 몸을 굽혀 하늘이에게 눈높이를 맞췄다.

“아휴! 요 얄미운 귀염둥이! 이러다간 하늘이 때문에 심장이 남아나지 않겠어. 나도 얼른 시집이나 가서 귀여운 딸이나 하나 낳을까 보다!”

“아니! 언니, 왜 하나만 낳아? 하늘이 같은 아이라면, 엄마처럼 열하나는 아니더라도, 난 많이 많이 낳을 거야”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나도 많이 낳을 거야!”

다산하려는 의견일치를 본 막내 고모 쌍둥이들이 하늘의 궁둥이를 한차례 두들긴 후, 제 방으로 올라갔다.

태희와 앵두도 시할머니를 반갑게 맞으며, 그녀에게 고개 숙여 꾸벅 인사를 했다. 머리카락이 일제히 찰랑거리는 그 모습이 꼭 일란성쌍둥이 같았다.

이어 태희와 앵두는 부산을 떨었던 주방을 정리하고, 상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왕할머니는 머슴 아들사위가 좋아하는 닭대가리와 닭똥집 조리를 한다며 하늘이와 함께 주방을 점령하였다.

그제서야 비지땀에 절어 꿉꿉했던지, 두 손자며느리들은 씻으려고 서둘러 주방을 떠났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주태민네도 밀어닥칠 것이고, 공주와 이 집 머슴의 쌍둥이들 중, 가장 어여쁜 3번째 쌍둥이인 우연과 우화도 귀신같이 밥상머리를 찾아들 것이며, 3층의 제일 큰 방인 책과 컴퓨터가 있는 천재의 일터에서 일 하고 있는 남편 홍우영도 내려와 저녁을 같이 할 것이다.

하늘이와 우진이, 은하는 닭다리를 두고 다툴 것이고, 이 집의 젊은 여자들은 다이어트에 좋다는 닭가슴살을 차지할 것이다.

천재 우영과 우주의 남편인 태민이는 형님 동생 하며 울대와 닭날개, 생선가스에 손이 갈 것이며, 이 집의 가장인 데릴사위 머슴은 장모님 겸 엄마가 조리한 닭대가리와 닭똥집, 닭발에 소주를 곁들일 것이다.

하늘이는 할아버지의 입속에 들어가 있는 닭대가리와 자신의 아빠인 천재 홍우영을 바라보며 불현듯 떠올랐다는 듯이, 할아버지 입을 가르키면서 아빠에게 장난을 치며 놀릴 것이다.

“아빠! 진짜엄마하고 키큰엄마가, 두 분이서 그러셨는데 아빠가 몇 시간만 일찍 태어났다면, 아빠는 검둥개 시리우스가 아니라, 저 닭이 될 뻔했대요”라고 쫑알대며 놀려댈 것이다.

그렇다.

소천재 하늘의 아빠 홍우영은 음력 1982년 정월 초하루, 설날 새벽에 태어났다.

육십갑자 중, 1982년은 임술년 검은 개띠의 해였으며 1981년은 신유년 흰 닭의 해였던 것이다. 그 이치를 고작 네 살배기인 소천재 하늘이는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2011년 서울의 어느 여름날, 밤이 깊어갈 것이다.


2011년 서울의 여름은 기록적인 폭우와 습한 날씨로 기억되는 해였다.

그해 서울의 끈적한 여름, 사냥감을 찾아 ‘푸른 행성’에 불시착한 프레데터는 역대급 폭우로 음울한 회색 빌딩 숲의 콘크리트에 갇혀 버린 연약한 서울시민들을 방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잦은 집중호우로 1994년과 같은 살인적인 도시 열섬 폭염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으며, 여름 내내 기승을 부리던 극심한 열대야도 7월 중순 이후, 잠시였을 뿐이었다.

2011년의 여름은 무더위보다 기록적인 폭우로 한국 기상사에 길이 남았다.

7월 26일부터 28일 사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는 50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것이다.

이로 인해 강남 일대에 동시다발적인 여러 산사태와 “서울이 잠겼다!” 할 정도로 도심 곳곳이 침수되어 인명과 큰 재산 피해를 입었다.

이미 6월부터 시작된 긴 장마로 인해 지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서, 단시간에 연간 강수량의 약 20%에 달하는 집중호우는 대규모 산사태로 이어졌다.

당시 서울에서는 서초구 우면동 형촌마을과 방배동 전원주택 및 래미안 방배아트힐 아파트, 임광아파트, 그리고 개포동 구룡산 구룡마을 등 1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산사태가 발생해 큰 피해를 입었다.

여름날이면 으레 뜨겁게 타오를 서울 하늘의 태양은 그해에는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좀처럼 기세를 펴지 못하였다.

잦은 집중호우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고 습기가 가득한 우중충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당시 7월 26일 ~ 28일, 3일간의 기상청 관측 지점별 누적 강수량은 서울 서초구 남현 관측소가 595.0mm로,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그 뒤를 종로구가 587.5mm로 바짝 쫓았고, 관악구 531.0mm, 강남구 463.0 mm로 도시 전체가 물바다로 변했다.

이 3일 동안 내린 비의 양은 최고 595mm에 달했으며, 이는 서울시 연평균 강수량인 약 1,450mm의 40%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 단 사흘 만에 쏟아진 것이었다.

특히 서울시의 비 피해가 컸던 것은 단순 누적 강수량도 하나의 원인이었겠지만, 주요한 원인은 시간당 강수량으로, 집중 호우의 강도였다.

7월 27일 오전, 관악산 인근에는 시간당 최고 113.0mm의 비가 내렸고,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에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져, 설계된 도시 배수 용량을 완전히 초과해 버렸다.


2011년 7월 27일 오전 9시 5분 전, 서울 우면산, 서초구 방배동 일대와 강남구 송파구 개포동 인근 구룡산 산사태의 뉴스 속보를 알리는 자막이 티브이 방송 화면 아래에 떠 지나갔다.

딸기는 6월부터 연이은 궂은 물폭탄 세례로 인해, 꼼짝없이 집에 발이 묵인 남편과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남편은 딸기가 중2 때부터의 오랜 오빠였다.

‘오늘 같은 장대비엔 파전에 막걸리가 최고 아니겠어!’ 라는 생각에, 딸기는 ‘침대 속 사랑꾼’을 위하여 술안주로 해물파전을 지지고 있었다.

33살의 농익은 딸기는 4년 연상의 좀 미련스러운 오랜 오빠와의 사이에 10살, 7살의 자기주장을 또박또박 해 대는 계집아이 자매와 , 순둥한 성격의 네 살배기 막둥이를 두고 있었다.

그녀의 ’ 침실 속 대못쟁이‘ 남편은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나와 재수를 했지만 대학 진학을 포기했었다.

그렇지만 그의 힘과 손재주는 기가 막혀, 37살임에도 불구하고 어엿한 도편수가 되어 주위에서 대목수님으로 불렸고, 딸기는 그런 재주꾼 순둥이 남편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딸기는 스카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재원이었지만 가정주부로서 집에서만 지냈다. 남편 이외의 남자들이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집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로서 콕 박혀 있었지만, 밖으로는 수많은 팔로워를 가진 뷰티 인플루어서로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큰딸 희영과 둘째 딸 순영은 건넌방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던 티아라의 롤리폴리를 크게 틀어놓고 안무를 신나게 따라 하고 있었다.

막둥이 화영은 제깐에는 누나들과 맞춰 춤을 춘답시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두 손을 활짝 펴 애꿎은 허공을 무턱대고 찔러대고 있었다.

딸기는 프라이팬 안의 해물파전을 조금 쭉 찢어 맛을 보았다.

향긋한 파향과 함께 부드러운 갑오징어의 하얀 속살이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큼직한 해물파전 세 장과 젓가락, 대접과 아이들 물 잔을 소반에 차린 딸기는 남편을 불렀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 앞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해왔다. 그러나 단 둘이 있을 때는 오랜 오빠 동생처럼 편하게 반말을 했다.

나아가, 딸기네는 침대 이불속에서는 남녀의 비소를 빗댄 성스런 야한 말이나 야썰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주위의 다양한 환경에 즉각 반응하는 카멜레온이었다.

“오빠! 이것 좀 가져가. 티브이 끄고 어서 애들 좀 불러, 파전 먹으라고 해“

딸기는 먹성 좋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또 해물파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묽은 밀가루 반죽을 묻힌 쪽파를 프라이팬에 깔고, 그 위에 직접 손질한 해물을 듬뿍 얹었다.

찌익 하는 소리와 코끝을 찌르는 파기름 냄새가 남편을 재촉했지만, 그는 왠일인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평소와 달라도 사뭇 달랐다.

침실 속 대못쟁이 남편은 아내의 부름에도 꿈쩍도 않고 거실 벽면의 방송 화면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빠! 안 들려? 식으면 맛 없대도, 어휴, 티브이 좀 꺼! 애들 좀 부르라고!”

딸기의 신경질적인 성화에도, 욕쟁이 대목수는 여전히 산사태를 알리는 티브이 속에 쏙 빠져 있었다.

티브이에 빠져있는 늘낙지 남편보다는 냄새가 오히려 빨랐다. 아이들이 우르르 거실로 몰려왔다.

큰딸 희영이는 엄마가 주방 식탁 위에 준비해 놓은 파전 소반을 가져다 거실 탁자에 상을 차렸다.

작은 딸 순영이는 쫄랑거리며 언니를 따라가,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기다란 거실 탁자에 가져다 날랐다.

“여보! 딸기님아! 당신도 이리 와서 같이 먹어요! 술은 같이 주거니 받거니 해야 제 맛이 나요!“

“오빠 먼저 드세요! 이거 부치던 것 마저 부치고 갈게요. 너희들도 먼저 먹어라 “

엄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 하고 한입씩 오물거렸다. 이를 지켜보는 엄마아빠는 무척 흐뭇하였다.

아침 9시, 정규방송인 아침마당은 흘러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KBS 뉴스특보를 알리는 붉은색 자막이 화면 하단을 가로질렀다.

막둥이 화영이는 파전을 입속에 넣고 오물거리며,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의 바지자락을 잡고 응석을 부렸다.

“아이고! 이거 이거! 큰일 났다! 잘 안 들린다. 희영아, 소리 좀 켜 봐!”

“예! 아빠“


“긴급 속보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현재, 400밀리가 넘는 폭우로 우면산과 구룡산에서 동시다발적인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 산사태로 인해, 서초구 우면동, 방배동, 서초동을 비롯하여 여러 곳이 매몰되었으며,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등 서울시의 여러 곳이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남부순환로에 나가있는 저희 중계차량을 연결하겠습니다“

노란색 우비의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을 정면으로 받고 있는 현장 리포터가 긴박한 목소리로 현장 소식을 전했다.

“오늘 오전 8시 50분경 , 서울 서초구 우면산에서 큰 산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이 산사태로 인하여 무너져 내리는 토사가 인근 주택가를 덮치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TV 화면에서는 현장의 취재 중계차가 당시의 아비규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방배동 일대는 허리 높이까지 차오른 흙탕물과, 뿌리가 뽑히고 부러져 떠내려 온 나무들로 인해 도로가 완전히 마비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태령 인근의 방배동 전원마을과 우면동 형촌마을을 포함한 주택가로 엄청난 양의 토사와 나무가 밀려 내려왔습니다.

이 사고로 인근 래미안 방배아트힐아파트와 임광아파트의 저층부가 매몰되었으며, 주택들도 파묻혀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긴급한 현장 상황을 알리는 취재기자의 목소리가 딸기네의 거실에 울려 퍼졌다.

거실에서는 모두가 숨을 죽이며 티브이 화면 속으로 들어가 있을 때, 딸기는 한 손으로는 엄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롤리폴리를 추고 있는 화영이와 실랑이를 하며 전을 부쳤다.

마지막 전을 부치고 있는 딸기만이 티브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다른 세상에서 생활 전선의 일상과 싸우고 있었다.

TV에서는 산사태 목격담들과, 집안에 남겨진 가족들을 찾는 애타는 소식도 잇따랐다.

우면산에 이어 개포동 인근 구룡산 산사태 속보가 계속해 전해졌다.

"희영아! 리모컨 이리 줘 봐. 빗소리 때문에 통 잘 안들린다"

속없는 아빠가 쐬아 하는 빗소리 때문에 안 들린다며 티브이 소리를 더 크게 높이자, 그제야 딸기는 비로소 구룡산 구룡마을이라는 앵커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무심코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넋이 나가 버렸다.


TV속 개포동, 시커먼 구룡산 아래 구룡마을을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1992년 어느 늦은 봄날 밤, 어린 딸기는 그곳에서 집단 강간을 당했다.

앵커의 숨 넘어가는 산사태 속보와 함께, 화면 하단에는 계속해서 [호우경보, 강남역 침수, 우면산, 구룡산 산사태 발생]의 빨간 자막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아픈 기억이 떠올라, 멍해진 딸기에게는 이미 아무 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긴급 속보입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조금 전 오늘 오전 8시 40분경, 서울시 강남구 개포동 구룡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계곡의 제방을 넘친 흙탕물과 토사는 산기슭에 있는 판자촌 구룡마을을 그대로 덮쳤습니다“

바로 저곳에 버려졌었다.

딸기는 어렸을 적에, 처참하게 짓이겨져 개포동 남부순환로 도로변에 알몸 상태로 버려졌었다.

집단 강간을 당했을 때의 소름 끼치는 아픈 기억과 TV속 긴박한 속보가 머무려 져, 딸기의 망막에 함께 투영되어 일렁거렸다.

딸기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딸기는 여중 2학년 어느 밤중에, 대치동에서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벤츠 500E 스포츠 세단에 강제로 태워졌었다.

개포동 남부순환로 구룡산 구룡마을 진입로 근처 고물상의 철판 담벼락에 멈춘 차 속에서, 딸기의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꽃봉오리가 무참하게 꺾였다.

뒤로 한껏 젖혀진 조수석에서, 엄마가 오래 입으라고 사준 약간 큼직한 딸기 면팬티가 여물지 않은 엉덩이에서 떨어져 나갔었다.

사내들은 딸기를 배 위에 올린 후, 자신들의 발기한 시커먼 만딩고를 그녀의 질구에 정조준하고는 그녀의 허리를 아래로 잡아끌어내렸었다.

그렇게 강제 삽입을 당하지 않았던가.

빠지직 하고 지축이 뒤흔들리는 산사태의 기괴한 굉음이 딸기의 버자이나 속에서 들렸었다.

흑인과 아시아인, 네 마리 짐승들의 만딩고가 딸기의 여린 밑과 입속으로 뱀의 혀처럼 쉴새없이 들락날락거리며 그녀의 어린 육체와 영혼을 찢어발겼던 그날 밤이 화면의 흙탕물에 투영되고 있었다.

사내들은 실신한 딸기의 음모를 면도시키고 거기에 이렇게 적었지 않았던가.

"강간을 한 건 바로 너야! 우리가 아니라고! 너는 우리를 강간했어"

자신들은 옷을 벗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는데, 위에 있는 딸기가 내리 박아, 자신들의 성기를 그녀의 질속에 스스로 넣었다는 것이었다.

몸속의 정액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짜내, 모조리 사정한 그들은 정신을 잃은 알몸의 딸기를 버렸다.

악귀들은 딸기를 으깨어, 지나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도록, 버젓이 오늘 산사태가 발생한 개포동 그 도로변에 버렸었다.

뒤집개를 들고 서있는 딸기의 망막에, 발가벗겨져 망신창이가 된 자신의 몸뚱이가 흙탕물에 둥둥 떠내려 가고 있었다.

딸기의 눈물이 프라이팬에 장대비처럼 뚝뚝 떨어졌다, 치익 하는 비명과 함께 팬에서는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1992년의 어느 봄날 밤, 열네 살의 칼단발, 파츤 히메컷의, 뒷머리가 아슬아슬하게 교복에 닿을 듯 말 듯한 귀여운 딸기가 그렇게 짓이겨졌었다.

그일이 있은 후, 딸기는 실어증으로 벙어리가 되었고, 딸기의 어머니는 벙어리가 된 딸을 위하여 대치동을 버리고 평택 비전동으로 이사를 갔었다.

딸기는 그렇게 한동안 벙어리의 삶을 살았다.

그런 딸기에게도 진실한 사랑의 햇볕이 들었던 것일까. 옆집의 고 3 남학생이 딸기의 으깨어진 영혼을 치유해 준, 친오라버니 같은 그 오빠, 바로 현재의 남편이었던 것이다.

옆집 막노동 오빠는 상처 입은 딸기를 위해 대학 졸업까지 10년의 세월을 기다려 첫사랑을 완성하였다. 그 후 그들은 곧바로 혼인을 했다.

이제 오늘 밤, ‘침실속 대못쟁이’는 남편으로서, 어린 시절의 오빠로서 의무를 다해야 했다.

애써 다 죽였건만 이 산사태 뉴스로 인해 되살이 해서, 아내 딸기의 몸속 깊이 숨어 꿈틀거리기 시작한 흑인과 아시아인들의 나쁜 만딩고들을 오늘밤 대못질해 다시 확실하게 토막쳐 죽여야만 했다.


아빠와 하늘이는 건넌방에서 방바닥에 나란히 배를 깔고 무엇인가 열심이었다.

태희와 앵두는 천재 아빠에게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소천재 딸 하늘이와, 그런 딸에게 푹 빠져 있는 남편에게 조금 이른 굿나이트 볼키스 인사를 했다.

태희와 앵두는 딸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안방으로 돌아와, 밤 루틴을 시작하였다.

“오늘 밤도 글렀네! 님을 봐야 뽕이든 별이든 딸 것 아니냐고! 채앵아 미안해”

“머가요? 언니! 난 괜찮아요”

“하늘이 때문에 네가 아기를 만들 수 없어서. 아빠에게 딱 달라붙은 하늘이 때문에, 미안해, 채앵아!”

“딸이 공부한다는데 미안하긴 머가 미안해요? 언니. 하늘이는 언니 딸이기도 하고, 내 딸이기도 하고, 걔는 우리들 딸이라고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아요”

“고마워, 채앵아!“

“언니, 같이 샤워나 해요”

“그럴까?”

한 방을 쓰더니 사이가 부쩍 좋아진 태희와 앵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후다닥 샤워를 끝내고, 오손도손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참새 새끼들 같았다.

그녀들은 서로에게 피부 보습을 해주면서, 장난을 치며 도란거렸다.

오늘밤에는 키득거리며, 아무리 유별나게 소란을 피운다고 한들, 쉴 새 없이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그녀들이 일으키는 소음을 완벽히 차단해 주고 있었다.

빗소리는 자신들을 딸로서, 며느리로서 끔찍이도 사랑과 관심을 기울여주는 1층의 시부모와 시할머니의 귀를 막았다.

지금은 오직 침실의 유리창을 때리는, 콩 볶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솥뚜껑 안에서 뜨겁다고 아우성치며 튀어 오르는 콩처럼, 유리창에 부딪혀 쪼개지는 빗방울은 비 오는 여름날, 밤의 운치를 더했다.

아까 굿나이트 인사를 건넨 그녀들의 남편, 천재 홍우영은 지금쯤은 건넌방에서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은 딸 하늘이와 함께 꿈나라로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1층의 초저녁잠이 많은 어른들도 자리에 들었을 터였다.

하루 종일, 그렇게도 아래층으로, 위층으로 나대던 ‘에헴삼촌’ 우진이도 왕할머니 품에서 세상 모르게 새근새근 곯아 떨어졌을 것이다.

앵두의 손길에 태희의 젖가슴 위에 걸쳐있던 배스 타월이 방바닥에 떨어졌다. 앵두는 정성스럽게 태희의 온몸 구석구석까지 피부 보습을 했다.

태희도 손이 닿지 않는 앵두의 몸 곳곳에 피부 보습을 해주었다.

태희의 볼이 발그레 붉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방그레 미소를 지었다.

태희는 자신의 벗은 몸을 이리저리 돌려 살펴보았다.

아이를 둘이나 낳은 젊은 엄마인 자신이 이토록 부풀어 봉긋한 가슴과 튼실한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흡족하였다.

젖이 든 가슴을 자신 있게 두 손으로 받쳐든 거울 속의 태희의 젊은 미소에는 젊은 엄마로서의 뿌듯한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평소에 자주 입는, 입고서 근처 모퉁이 편의점에 가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편한 라운지웨어 잠옷을 꺼냈다.

태희는 슬로기 라운지웨어 투피스를 가슴에 이리저리 대어 보았다. 그리고는 앞주머니가 두 개가 달린 모달 혼방 소재의 활동성 있는 티셔츠와 밴딩 팬츠 스타일의 잠옷을 다시 옷장에 걸어두었다.

“채앵인 머 입을 거야?”

“난 평소대로 인티미시미 슬립 걸칠 건데”

“그래? 오늘 밤은 아래층에 내려갈 일도 없고, 나도 그래 볼까“

태희는 분위기에 동화되었던지, 이번에는 인티미시미 실크와 새틴 소재의 우아한 누드 톤의 로즈 베이지 슬립을 꺼내 자신 있게 입었다.

앵두도 그런 태희에게 홀딱 반하여 , 같은 브랜드의 샴페인 골드 색상 슬립을 언니처럼 맨몸 위에 걸쳤다.

그녀들에게서 광택이 극대화된 화려하고 귀족적인 분위기가 차르르 흘러내렸다.

키가 큰 앵두는 언니의 허리를 껴안고, 살짝 고개 숙여 태희에게 딥키스를 했다.

평소라면은, 앵두가 이런 환한 불빛 아래에서 훅 하고 들어온다면 분명히 도리질을 해 거부했을 언니 태희였지만, 오늘은 그녀의 혀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오히려 언니 태희가 더 적극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앵두는 태희언니의 슬립의 어깨끈을 내렸다. 그리고는 묽어져 가는 젖이 들어 있는 젖가슴을 쥐었다.

“오래간만에 한번 시식해 볼까나!”라고 말하며 앵두는 눈을 살짝 치켜떠 언니의 허락을 구했다.

“묽어져서 맛이 없을 걸! 정 먹고 싶으면 조금만 먹어, 채앵아! 우진이도 먹어야 한단 말이야”

“작년에 태어난 우리 시호는 벌써 엄마 젖을 떼어 가는데, 만 3살이 되어도 우진삼촌은 언니 젖을 놓지 않다니, 언니 젖이 좋긴 좋은가 봐“

“우진이는 갓난아기 때부터 내가 젖 주니까, 형수인 나를 자기의 엄마로 생각하나 봐. 그래서 내 가슴에 더 집착하는지도 몰라. 요즘은 젖 먹는 것보다 가슴을 가지고 노는 것을 더 좋아한다니깐!”

태희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엄연한 시동생임에도, 아이가 자신을 엄마로 생각하고 있는 이 상황이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녀에게 있어 우진이는 자기 배를 아파 낳은 친자식과도 같은, 사랑스럽고 귀중한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였다.

“우진이는 좋겠다! 엄마가 둘이라서! 내가 언니를 또 한 사람의 엄마로 만들어 버릴 거야“

앵두는 태희를 부러워하면서 야무지게 언니의 한쪽 유방을 베어 물었다.

“아야! 아파! 가시나야! 그렇게 세게 물면 어떡하니? 그러다 젖꼭지 떨어져 나가면 채앵이 네가 책임질 거야!“

아팠던지, 태희는 앵두가 입안에 물고 있는 자신의 유방을 꺼내, 젖꼭지를 살펴 보았다.

“미안해, 언니! 아팠어? 내가 호 해 줄게”

앵두는 자신의 침이 번드르르하게 묻어 있는 태희의 탐스런 젖가슴을 다시 움켜쥐고 정성껏 호호 불기 시작했다.

앵두의 그런 행동이 어찌나 귀엽고도 사랑스러웠던지, 태희는 돌연 자신의 유방을 쥐어짜, 젖꼭지를 호호 불고 있던 앵두의 얼굴에 그대로 물총을 발사해 버렸다.

비너스의 유방에 달린 젖꼭지처럼, 태희의 젖줄기는 앵두의 얼굴에 흩뿌려져 은하수가 되어 흘러내렸다.

젖줄기가 눈에도 들어갔는지 이번에는 태희가 앵두의 눈까풀을 두 손가락으로 까고서 호호 불었다.

그러자 갑자기 앵두가 태희의 겨드랑이 간지럼을 태웠다.

티격태격! 둘은 깔깔거리면서 장난치다가 그만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 바람에 슬립 안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들의 아래가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너희들 머 하니? 다치진 않았어?“

대자로 방바닥에 누운 두 사람이 깜짝 놀라 위를 쳐다보니, 시엄마인 공주가 자신들이 좋아하는 간식인 마카로니를 버무린 샐러드가 담긴 소반을 들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아이, 엄마도! 인기척 좀 하시지 그래요. 깜짝 놀랐잖아요”

“이 것들아! 도대체 무얼 하고 놀길래, 노크 소리도 안 들린다는 거냐. 덩치들은 남산만 해가지고서는, 다 큰 것들이 하는 짓들은 꼭 철부지 애들 같다니까!“

공주는 어깨끈이 가슴 아래로 내려가 있는 태희의 슬립을 올려주면서, 태희와 앵두의 머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공주의 눈에서는 한없는 사랑이 쏟아졌다.

“으이구! 너네들은 팬티도 안 입고 자는 거냐?” 공주는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휴, 엄마도! 이 실크 새틴 혼방은 맨살이 진리예요. 맨살에 착착 감긴다니깐요“

언니 태희가 얼버무리자, 앵두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엄마. 이 광택 좀 보세요. 차르르 흘러내리죠. 이 건 노팬이 답이라니깐요!“

앵두의 장단에 고무된 태희가 한술 더 떴다.

“엄마는 정말 고우세요! 엄마가 이렇게 예쁜 포켓 잠옷을 입으시다니 아빠는 좋으시겠어요. 난 이쪽에 들어가야지, 채앵이는 요기 주머니에 들어가!”

태희는 앵두에게 엄마의 모달 혼방 잠옷의 포켓을 가리키며 쫑알거렸다.

“아이고! 말씀들도 참 잘하셔요. 엄마는 너네들에게는 도저히 못 당하겠다. 그만하고 이거나 좀 들어라“

공주가 그녀들에게 포크를 하나씩 쥐어 주었다.

”요게 엄마표 마카로니! 언니는 젖이 많이 나와야 하니까 많이 먹어 둬야 해“ 하고 앵두가 키득거렸다.

태희도 이에 질세라 마카로니를 하나씩 콕콕 찔러가면서 재잘대었다.

“이건 마요네즈 듬뿍! 연유에, 허니 머스터드! 약간 톡 쏘면서도 달콤한 허니 머스터드! 시큼한 레몬즙에 소금, 후추 간이라니, 어휴! 이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 엄마, 맛이 정말로 기가 막혀요!“라고 하면서 자신의 입안에 든 공주의 마카로니를 찬양해 댔다.

그렇게 입 안의 마카로니를 우물거리면서 이상한 발음을 해대는 태희와 앵두의 아양은 그후로도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공주가 1층으로 내려간 후, 두 사람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들킬 뻔했다!”

“누가 아니래. 채앵이 넌 이제부터 딥키스는 금지야! 가벼운 뽀뽀는 괜찮아. 만약에 우리 둘이 깨 홀라당 벗고 엉켜 있는 거, 들켰으면 어쩔 뻔했어! 창피해서 어떻게 살아!”

“그러게요, 들키면 우린 쫓겨나게 되겠죠. 이제부터 불 끄고, 한밤중에 침대 속에서만 해요, 언니야!“

“안 해요! 안 해! 넌 빨리 아기 만들어야 하니까, 저 방에 가서 오빠랑 실컷 하세요. 하늘이는 내가 데려올게”

“아이, 언니! 언니도 내 남편이예요! 우리 같이 가서 오빠랑 셋이서 해요”

“난 무서워. 내가 타락할까 봐 무섭고 걱정돼”

“언니, 우린 1부 2처의 부부예요. 부부끼리 성관계를 하는 것은 사랑이지 타락이 아니라고요, 언니!”

“나도 안다고 알아! 그리고 나도 채앵이, 널 사랑한다고! 그러나 왕할머니나 엄마, 아빠께 들키면 우린 끝장이야!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해”

“알았어요. 언니 말대로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요”

밤이 깊어가자, 빗소리만이 두 사람의 귓전에 떨어졌다. 말똥말똥 네 개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반짝였다.

“채앵아! 자?”

태희는 나지막이 앵두를 불러 보았다.

“아니요”

태희는 앵두의 몸에 올라갔다.

그녀는 앵두가 여자인 자신을 또 하나의 서방으로 일편단심 섬기고 있으니 태희는 우쭐하기도 하고, 밀려드는 정복감에 행복하였다.

앵두는 앵두대로, 묘한 소속감과 소유욕에 휩싸였다.

언니 태희는 앵두에 대한 욕정과 함께 이제는 오빠대신 앵두라는 자신의 아내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껏 남편이자 천재 오빠, 한 남자밖에 몰랐던 얌전한 태희는 앵두의 슬립을 벗기고 사랑의 부뚜막 위에 올라간 것이다.

장대비가 억수로 퍼붓던 어느 여름날 밤, 1부 2처의 혼인이 유발시킨 동성애의 합리화와 묘한 쾌락이 그녀들을 집어삼켰다.

태희의 배 아래에 깔린 앵두는 언니의 목덜미를 껴안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다리를 활짝 벌려 언니가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태희의 허리를 단단히 감았다. 태희의 매끈한 맨살 피부에 닿은 앵두의 밑은 언니 태희의 숨결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느 여름날, 그렇게 사랑의 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