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의 의무

원인 #2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슬픔에 잠긴 국민들에게 일상으로 돌아가 쇼핑을 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미국 내 유명 여행지를 (이때 디즈니 월드가 언급되었다) 놀러 다니며 가족들과 함께 인생을 즐기라는 말도 덧붙였다. 국가의 지도자가 엄숙하고 침통한 분위기의 연설장에서 이런 발언을 한 것은 우리가 소비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나타낸다. 이런 사회에서는 타인의 비극에 공감하고 슬퍼하기보다는 경제 발전을 위해 쇼핑몰에서 신용카드를 긁고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바람직한 인간상이다.

소비 권하는 세태와 관련, 지그문트 바우만은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는데 무척 공감하는 바이다. “지금 우리는 모두 소비자입니다. 다른 무엇이기보다 먼저 소비자며, 소비자로 존재하는 것이 권리이자 의무예요. 실제로 2001년 9월 11에 있었던 대참사 직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국인들에게 다시 쇼핑을 계속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성공 경쟁에서 얻은 점수를 측정하는 주요 척도는 쇼핑 활동의 정도, 그리고 얼마나 쉽게 하나의 소비 대상을 처분하고 ‘더 새롭고 향상된’ 대상으로 대체할 수 있느냐입니다.”


소비가 이토록 일반적인 사회적 규범이었던 적은 역사상 없었다. 사실 인간은 원래 여타의 종들과 마찬가지로 소비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렵채집 시절 인간은 소비자라기보다는 생산자에 가까웠다. 원숭이가 포식자를 피해 바나나 나무를 찾아 영양분을 섭취하듯이, 원시인은 도구를 만들고 이를 활용해 식량을 얻고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켰다. 원시인이 원숭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이따금씩 생존 및 번식과는 무관한 예술 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원시인은 능동적으로 생산활동을 했지만 소비를 할 때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수렵채집 사회에 소비는 단지 기본적인 의식주 욕구의 충족 수단으로만 제한된, 다시 말해 사치와는 거리가 먼 사용가치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농업혁명으로 인해 사유재산과 계급이 생기자 소비자로서의 인간이 본격적으로 출현했다. 노예의 노동력을 착취함으로써 생산의 의무에서 면제된 상류층은 소비로 눈을 돌렸고, 문명은 사치라는 독을 퍼뜨려 이들의 허영심을 자극했다. 문명사회가 형성된 이후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상류층의 사치이다. 로마시대에 과시의 수단으로 사용되던 토가는 오늘날 스포츠카나 명품백으로 그 원형이 바뀌었을 뿐이다. 상류층은 언제나 자신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하류 계층은 감히 넘볼 수 없을 수준으로 낭비한다. 과거 상류층은 진귀한 물품을 모으거나 호화로운 건축물 (심지어 무덤까지)을 짓는 것에 집착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유적지나 박물관에서 접하는 것들은 모두 사치의 유산인 셈이다.


오랜 시기에 걸쳐 소비의 권리는 소수에게만 허용된 은총이었다. 고된 생산활동에 매진해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은 의식주를 벗어난 영역에서는 별다른 소비의 권리를 얻지 못했다. 상류층의 은밀한 사치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고 견고한 신분제는 차별적인 소비의 권리를 정당화했다. 예를 들어, 청나라 지방 농부는 황제의 궁궐에서 벌어지는 사치의 수준을 가늠하지 못했고, 이를 누리지 못한다고 박탈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또한 그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머물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치와 향락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 우리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주위 친구뿐 아니라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누리는 호화로운 생활을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접하며 이따금 헛헛함을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소비의 권리뿐 아니라 소비의 수준에도 제약이 있었다. 과거에 국가가 부를 늘리는 방식은 주로 전쟁을 일으켜 옆 국가를 지배하고 각종 인적, 물적 자원을 약탈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13세기 채권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쟁 자금 조달은 주로 세금을 쥐어짜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과도한 전쟁은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 민심을 잃게 만들 수 있었기에 영리한 지도자들은 이를 경계했다. 또한 창업자는 효율적으로 초기 자본금을 조달하기 어려웠고, 사업을 이미 하고 있는 자도 사업 확장을 위해 자금 조달을 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즉 과거에는 부의 파이가 비약적으로 팽창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비를 과도하게 늘리는 것 역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금융의 발달은 부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특히 신용의 발명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중세 시대 금 세공업자들은 금을 보관해주는 대가로 증명서를 발급하고 보관료를 받았다. 사람들은 무거운 금을 옮기는 대신 증명서를 주고받으며 거래를 했다. 그런데 금 세공업자들은 금고에 보관된 금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들은 고객이 맡긴 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수취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고객들이 항의하자 금 세공업자들은 고객들로부터 보관료를 수취하는 대신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반발을 잠재웠다. 이것이 바로 예대마진으로 이윤을 내는 은행의 탄생이다. 당시 금 세공업자들은 길가에 탁자를 놓고 벤치에 앉아 업무를 보았는데, ‘은행’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방카(banka)’는 테이블을 뜻하는 ‘방코(banco)’에서 유래한 것이다.


금융이 발달하자 돈은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가계는 서로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복잡하게 얽힌 채 돈의 교리를 전파했다. 사람들이 돈을 빌리고 갚고 투자하는 과정에서 부는 쉴 새 없이 덩치를 키워 나갔다. 금융 자본가들은 돈이 밤낮없이 일을 한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그들은 돈의 노예가 되어 일했지만 돈이 자신을 위해 일한다고 평생 착각했다) 돈은 더 많은 돈을 낳았고 자본가들의 금고는 더욱 풍족해졌다. 별 볼 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나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 자본가들은 서서히 종교계와 정치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숨기고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사치를 부리고 과감히 소비하는 것에 몰두했다.


산업혁명이 발생하고 자본주의가 확산되자 부가 급속도로 팽창했고 소비를 제약하고 있던 안전핀이 풀렸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며 금욕과 검소를 장려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젠 부자가 존경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돈이 출신이나 계급보다 훨씬 공평한 수단으로 인정받자 평범한 사람들은 야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전력을 다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동안 생산자의 역할에만 머물러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소비의 즐거움, 보다 정확히는 사치의 달콤함을 조금씩 맛볼 수 있었다.


또한 도시의 태동 역시 사람들의 소비심리를 부추겼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유일하게 사치를 하는 종이다. 농촌에 살았던 사람들은 경쟁, 욕망, 자극, 허영이 점철된 도시에 모여들었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사치를 학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평범한 사람들도 상류층의 소비 행태를 흉내내기 시작했고 사치품은 점점 대중에게 전파되어 종국에는 필수품이 되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사회>에서 소비의 사회성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설득력 있게 서술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즐기지만, 그러나 소비할 때는 결코 혼자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든 소비자들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 연루되는, 코드화 된 가치들의 생산 및 교환의 보편화된 체게 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것은 자본가들이 소비의 힘을 무척 잘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량생산을 통해 자동차를 싸게 생산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를 판매할 시장이 필요했다. 그는 과감하게 당시 미국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의 2배 수준을 공장 노동자들에게 지급함으로써 자동차의 생산자인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소비할만한 구매력을 갖추게 했다. 그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준 것을 마음씨 착한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가엾게 여겨 한 선의라고 해석하는 것은 다소 순진하다. 이는 단지 성취감을 느끼기 어려운 단순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생산한 제품을 소비할 소비자가 필요해서였다.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은 중산층이 되어 자동차를 구매했고 그 자동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었다. 20세기에는 생산과 소비가 박자를 맞추며 자본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했고 누구나 열심히 살면 출신의 한계를 극복해 중산층이 될 수 있었다. 추후에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현재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데, 이는 앞으로도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광고 산업의 발전도 소비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비가 자본주의라는 열차를 굴러가게 하는 하나의 증기기관이라면 광고는 윤활유다. 광고의 파괴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벨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괴벨스는 나치 정부의 선전장관으로서 히틀러의 두뇌이자 오른팔이었다. 독일 정부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해 보조금까지 줘가며 라디오를 전 국민에게 보급했는데, 당시 라디오는 ‘괴벨스의 입’으로 불릴 정도로 괴벨스의 영향력은 엄청났다. 그는 히틀러를 우상화시키고 나치당 치하 독일 국민들을 효과적으로 선동했는데, 특히나 그는 유대인 박멸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악마였다. 괴벨스는 독일 국민들에게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을 불어넣었고, 이러한 선동 효과는 비극적 홀로코스트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무척 성공적이었다. 괴벨스는 그야말로 선동의 천재였다.


괴벨스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증명하였으며, 이후 그의 선동술은 미디어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괴벨스의 선동술이 가진 파괴력을 목격한 기업들은 “무엇을 팔까?”라는 고민을 넘어 “어떻게 팔지?”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광고는 꽃을 피우게 되었다. 이후 광고기법들이 발달하게 되면서, “이 제품은 ~한 기능이 좋다” 는 식의 제품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구식이 아닌 소비자들에게 은밀히 소비를 권유하는 광고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광고는 이 제품 및 서비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상류층이고,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들이자, 뭘 좀 아는 세련된 기호를 가진 사람들로 포장한다.


광고의 폭격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 소비는 의무이자 규범이고 도덕이다. 온갖 암시적인 기호로 뒤덮인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광고 산업이 조작한 기호를 조건반사적으로 학습한다. 유행은 기존의 것을 폐기하도록 유도하고 매일 진화하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을 만들어낸다. 다시 말해 유행은 창조가 아닌 파괴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상품은 버려지기 위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마치 집단최면에 걸린 환자들처럼 필요하지도 않은 무언가를 사들이는데 열중하고 최신의 기호를 소비하는 것을 경쟁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월든>에서 유행에 휩쓸리는 세태에 대해 지적했는데, 여기에 묘사된 원숭이들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미의 여신’이나 ‘운명의 여신’이 아니라 ‘유행의 여신’을 숭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신은 막강한 권위를 발휘해 실을 잣고 천을 짜고 재단을 한다. 프랑스 파리의 최고 우두머리 원숭이가 테두리 없는 여행용 모자를 쓰면, 미국의 모든 원숭이들이 흉내를 낸다.”


넘치는 낭비와 사치를 에너지원 삼아 문명은 그야말로 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을 찌우며 번성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은 처절하게 파괴되었고, 지구는 이제 문명이 세운 거대한 백화점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넘쳐나는 사물에 질식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사물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소비자이자 상품, 그리고 이를 판매해야 하는 판매원인 셈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상품성으로 변질되었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낸 돈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더 이상 충격스럽지 않다.


문제는 인간의 DNA가 영구적으로 불만족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으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소비하기를 원한다. 문명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입하고 사치를 의무화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기꺼이 삶을 소진하고 여기에서 발생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무언가를 소비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새 것을 소비하기 위해 지출하고 헌 것을 폐기하는데 보내는 것이다. 이것이 문명의 발전을 위해 ‘착취적 노동-스트레스-소비’라는 쳇바퀴 속을 달리는 자발적 노예가 되어, 자신의 존재를 부식시키는 과정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소비에 중독된 채, 부채를 재료 삼아 만든 돈의 신전을 건설하는데 동참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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