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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는 생각이 우리 세대는 참 살기 힘든 것 같다. 과거 어떤 세대가 편했겠느냐만, 현세대가 다양한 패러다임이 변하는 변곡점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끔 현기증을 느낀다. 맞춰야 할 과녁이 여러 개 움직일 뿐 아니라 땅의 근간이 흔들리는 느낌이랄까. 투자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세대가 직면한 패러다임 변화는 다음과 같다.
1. 초 양극화: 중산층 소멸. 부모의 계급이 곧 나의 계급인 역사의 평균으로 회귀. 갈등 심화. 포퓰리즘
2. AI: 산업혁명, 혹은 그 이상의 파급력을 야기하는 기술 혁명이라고 생각
3. 미국에 대한 신뢰 추락: 점진적으로 쇠퇴하는 미국. (아직까지는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달러, (사두면 오르는) S&P500, (절대적 안전자산인) 미국채에 대한 신뢰 하락
4. 자유무역의 종말, 탈세계화, 세계 경제 블록화: 미중 관세전쟁은 시작일 뿐, 보다 근본적인 세계 질서 변화가 생기고 있음
5. 금융 투자의 필수화, 복잡성 증가: 과거에는 투자를 안 해도 근로소득 만으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었으나, 이제 투자는 필수가 되었음. 게다가 그 복잡성과 난이도 또한 현저히 증가
이러한 변화를 맞이하여, 요새 투자 구루들의 견해도 많이 참고하고, 나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는데도 정말 모르겠다. 공격적으로 투자를 해야 할 이유와 방어적으로 현금을 보유해야 할 이유 모두 열 가지는 댈 수 있다. 앞으로 발생할 일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세워보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시나리오가 얼마든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최선이 뭘까.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유연하게 생각하고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으면서 (충동적으로 의사결정하기, 큰 금액 레버리지 매매, 필요하지 않은 것을 위해 필요한 것을 베팅하기 등등) 분산 투자 & 리스크 관리하는 것. 특히 유연한 생각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틀렸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거나,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에 개방적인 태도로 접근하는 것.
실제로 나는 요새 평소에 안 하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회의적이었던 중국, 유럽 증시에 분산 투자하거나, 다소 재미없다고 여겼던 금, 채권과 같은 자산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적당한 금액대에서 (팔기 아까운) 비트코인을 팔고 현금을 늘리거나, 다소 회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알트코인 생태계에도 지속적으로 씨를 뿌리며 새로운 먹거리를 탐색하고 있다. 부동산의 경우에는, 당분간 현재 거주하고 있는 자가 1채를 유지하면서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할 계획이다. 다만, 만약 다음 대통령 임기에 서울 부동산이 기대 이상으로 급등한다면 매도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물체가 변화는 환경에 맞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생존할 수 있듯이, 투자자 역시 변하는 패러다임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필수적이다. 과거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우리가 살게 될 세계는 더 이상 과거의 그것이 아니다. 익숙한 투자 자산, 전략을 버리고 새롭게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해야 앞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익숙한 것과 제때 결별하지 못해 낭패를 본 사례는 무척이나 많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지 못해 낭패를 본 사례
- 미국 주식은 묻어두면 무조건 오른다는 주린이와 FIRE 족: 주린이는 미주 중에서도 특히 M7 테크주식, 레버리지 상품에 몰빵 하는 경향. 22년 하락장에 큰 손실. 25년 증시 하락과 원화 대비 달러가치 하락으로 현재 고생 중. FIRE족의 경우, 연 10% 수익률의 S&P500에 묻어두고 조금씩 꺼내서 쓰면 노후 보장된다는 말이 있었으나 더 이상 유효한 명제가 아님
- 워런버핏 찬양하는 국장 가치 투자자: 워런버핏 st 가치투자 찬양하면서, 저렴한 밸류에이션 주식을 선호하고 국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는 투자자. 전통적인 방식으로 밸류에이션이 안 되는 코인이나 테슬라, 팔란티어 같은 테크주를 싫어하는 경향. 2022-24년 미장, 코인 랠리에서 철저히 소외되면서 "국장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조롱까지 들음
- 무지성 가즈아를 외치는 코인러: 보통 코인이 첫 투자이자 유일한 포트폴리오인 경우가 상당수. 투자 성과가 모 아니면 도인 경우가 많고 부를 지키는데 취약함. "비트코인 -> 이더리움 -> 메이저 알트 -> 잡알트" 순환 공식이 깨졌고 비트코인을 비롯한 아주 선별적인 알트에만 유동성이 몰림. 대부분의 알트투자자들은 24-25년 비트코인 ETF, 트럼프 랠리의 수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음
- 부동산 불패를 외치는 한국인: 부동산에 대한 한국인의 믿음은 종교에 가까운 것 같음. 부동산 불패는 강남 기준 아직까지는 유효한 명제이지만, 지난 수 십 년간 주식의 수익률이 높았음. 타 지역은 전고점을 회복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 달러를 가격 기준으로 변경하면 하락추세인 곳이 대부분.
두서없이 글을 썼는데, 결론은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요즘. 별다른 자산 배분 없이 특정 자산에 (부동산, S&P500) 올인해도 괜찮은 성과를 보거나, 6:4 주식 채권 분산 투자가 통하던 시절은 얼마나 투자하기 편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