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흔든 당신이 아닌 그것에 흔들리는 나에게
'사람들을 향한 나의 분노와 짜증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 그들이 나를 흔들어서 변화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갈길을 가는데 빨간불을 켜서 멈추게 만든 그들을 비난했고, 내가 먹고 싶은 치킨을 두고 족발을 시켜버린 그들이 죽도록 미웠다. 난 지금 멈추기 싫고, 내가 먹고 싶은 건 족발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 와서 닿으면 불쾌한 것은 나의 온전한 상태를 변화시키려는 외부의 침범이 본능적으로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타락한 결과이다. 그것을 침범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나는 아주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내면이 불안한 상태였기에, 이로 인한 분노 게이지가 아주 높은 편이었다. 그리고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분명 그들 안에도 분노가 존재한다. 초 단위로 공격해오는 외부로부터의 변화에 완벽히 차단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즉시 아주 간단한 해결책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나를 흔드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어도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컨트롤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부분의 인간은 흔들려 버린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반대로 자신을 흔든 상대방을 비난하기로 한다. 자기 부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딱 한 번만 눈을 감고 자신에게 솔직해져 본다면 온전했던 내가 흔들려서 불안한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이 바로 상대방의 자극에 흔들려버린 '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천천히, 그리고 곰곰이 나를 화나게 했던 그 상황을 되짚어보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심장이 뛰며 다시 화가 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엔 그 상황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 아직도 내 온전했던 마음을 흔든 게 상대방의 행동인가? 아니면 그의 행동에 반응을 해 버린 내 마음인가? 그래도 인정하기 힘들다면, 내가 아주 꼴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을 내 자리에 놓고 바라본다. 나랑 똑같이 화가 난 그 꼴도 보기 싫은 사람에게 나는 무어라 말했을까?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버드나무 가지를 보며 제자가 말했다.
"스승님, 저기 저 흔들리는 것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입니까, 아니면 바람이 흔들리는 것입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흔들리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며 바람도 아닌 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