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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원의 인지 경험을 설계하는 것의 중요성

고령 인력의 인지 자산화를 위한 새로운 HR 프레임

by Kay

이전 글에서 살펴본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의 개념은 단순히 개인의 뇌 건강을 설명하는 의학적 프레임을 넘어, 조직 내 고령 인력의 지속가능한 역량 활용을 고민하는 HR 전략의 키워드로 삼아볼 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지금, 구성원이 단지 오래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일해왔는가’에 따라 인지 기능의 유지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조직 차원에서 생애주기 HR 관점을 다시 설계해야 함을 시사한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성과가 낮아진다는 고정관념이 아닌, 구성원의 인지 전략 자산을 어떻게 축적하고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생겨났다.


시니어 인지 저하, 무엇으로 늦출 수 있을까?
조직 내에서 인지훈련을 진행한다면 도움이 될까?
고용의 지속성과 일하는 행위가 인지 기능 유지에 도움이 될까?
퇴직 후 인지예비능(CR)은 시간이 지나도 효과를 유지할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해 다룬 연구들은 시니어 인력의 인지 기능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Barbados 연구는 직무 복잡성과 교육 수준이 인지 기능과 직결된다는 점을, 슬로베니아의 RCT 연구는 CCT와 같은 디지털 인지훈련이 업무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인지 향상을 유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고용 자체가 인지예비능 유지에 효과가 있다는 체계적 리뷰나, 퇴직 이후에도 직무 경험이 뇌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장기 연구까지 살펴보면, '일을 한다'는 행위의 의미가 단지 생계유지가 아닌 인지 유지의 전략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에 비추어 본다면 HR의 역할은 단순히 퇴직 관리가 아니라 구성원 인지 경험 설계로 옮겨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단기적으로는 반복 업무에도 적정 수준의 인지 자극을 심는 직무 재설계, 중장기적으로는 은퇴 이후까지 연결되는 관계 설계가 중요해질 것이다. 특히 인지예비능이 단기 훈련만이 아닌 누적된 경험의 구조로 형성된다는 점에서, 구성원의 경력을 설계하는 일은 곧 조직의 인지적 경쟁력을 축적하는 일이 된다. 조직 고령화 시대 인력 관리를 위해 구성원 각자를 조직의 전략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인지예비능이라는 키워드를 조금 더 살펴봐야겠다.




“시니어 인지 저하, 무엇으로 늦출 수 있을까?”


조직 내 고령 인력은 퇴직 시점에 가까워질수록 '인지 기능 저하'라는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흐름에 놓이게 된다. 많은 조직이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정년과 함께 조직에서 분리시키는 방식을 택해왔다. 하지만 생애주기 HR 관점에서 던져볼 수 있는 진정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연령 증가에 따라 모든 시니어 직원의 인지 능력이 일률적으로 저하되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요소들을 활용해 인지저하를 늦출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조직이 시니어 인력을 단지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 경험 설계를 통해 그들의 인지 기능을 보호하고 확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성찰로 이어진다.



연구명: The Role of Lifetime Exposures across Cognitive Domains in Barbados

Steffener, J., Nicholls, J., & Franklin, D. (2022). The Role of Lifetime Exposures across Cognitive Domains in Barbados Using Data From the SABE Study. arXiv preprint arXiv:2210.03587.


이 연구는 교육 연수, 직무 복잡성, 성별 등의 요소가 고령자의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 CR)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대규모 관찰연구이다. 60세 이상 고령자 1,325명을 대상으로 한 Barbados 지역 기반 조사로, Mini Mental State Examination(MMSE) 점수를 통해 네 가지 인지 영역(지남력, 작업기억, 지연회상, 시공간 능력)을 측정하였다.

그 결과, 교육 수준과 직무 복잡성이 높을수록 모든 인지 영역에서 MMSE 점수가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특히, 정신적 노동 종사자들은 육체적 노동자에 비해 인지 저하 위험이 낮았다. 이는 단지 ‘교육을 더 받은 사람’이 인지 능력이 높다는 일반적 해석을 넘어, 직무 경험의 복잡성과 정신적 요구도가 인지예비능을 확장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HR 관점의 시사점


이 연구는 HR이 시니어 직원의 ‘퇴직 관리’가 아닌 ‘인지 기능 보호’를 목적으로 한 직무 및 경력 설계 전략을 마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첫째, 직무 재설계(Job Design)가 필요하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도 문서 해석, 문제 해결, 데이터 분류 등 인지적 자극 요소를 점진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이는 단순 업무라 하더라도 인지적 복잡성을 도입하여 뇌 기능 사용을 지속시키는 전략이다.

둘째, 시니어 대상 업스킬링 프로그램의 설계가 요구된다. 문해력, 수리 능력, 디지털 리터러시를 중심으로 한 업스킬링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나이 들어도 배운다’는 메시지를 실천 가능한 형태로 구현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시니어 인력은 경험 축적의 상징일 뿐 아니라, 조직 차원의 적절한 자극을 제공할 경우 조직 내 고성능 유지 가능 인재로 전환될 수 있다.



“조직 내에서 인지훈련(CCT)을 진행한다면 도움이 될까?”


조직이 고령 인력의 인지 기능 유지에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그럼 우리가 인지훈련 프로그램을 직접 도입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특히 제조, 서비스, 단순관리 직무를 중심으로 시간 대비 효용업무 연계성을 중시하는 HR 실무자들에게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뭐든 배워두면 좋다'는 수준을 넘어, 조직 내에서 실행 가능한 형태로 인지훈련이 실제 효과가 있고, 업무 중 제공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증거를 필요로 한다.



연구명: Effects of Computerized Cognitive Training in the Workplace

Milič Kavčič, Z., Kavcic, V., Giordani, B., & Marusic, U. (2024). Computerized Cognitive Training in the Older Workforce: Effects on Cognition, Life Satisfaction, and Productivity. Applied Sciences (2076-3417), 14(15).


이 연구는 실제 직장 내 환경에서 실시된 RCT(무작위 대조군 실험)를 통해 인지훈련의 효과를 실증적으로 평가하였다. 슬로베니아 내 전통 제조 기업에 근무 중인 중년~고령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12주간 Computerized Cognitive Training(CCT) 프로그램을 주 2회, 각 45분씩 수행하게 했다. 이후 실험군과 대조군의 인지 기능 및 업무 성과를 비교했다.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인지 기능: 실험군은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 특히 Verbal Fluency(언어 유창성)에서 유의미한 향상을 보였다.

업무 성과: CCT 참여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지지 않음을 확인. 실험군은 대조군 대비 처리량, 정확도 등에서 손실 없는 유지 수준을 나타냄.

즉, 이 연구는 인지 훈련이 단기적으로 실제 인지 능력을 향상시킬 뿐 아니라, 업무 효율을 해치지 않는 실용적 개입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HR 관점의 시사점


이 연구는 인지 훈련을 별도의 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실제 업무 내 훈련 전략으로 흡수하여 진행하는 것에 대한 방향성을 제공한다.

첫째, 구성원 웰빙의 범위를 정신적 영역까지로 확대한 온더잡러닝(OJL) 형태로 시도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 2회, 45분 내외의 인지 훈련 스프린트(CCT Sprint)를 8~12주 단위로 설계해 업무시간 내에 진행하는 형태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시니어 직원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연령대 직원을 대상으로 구성원 인지 유지/강화 프로그램으로도 확대 적용할 수 있다.

둘째, '팀원의 인지 부하 관리'와 같은 주제를 리더십 교육 과정에 포함시켜 관리자들이 팀원의 상태를 살피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구성원의 업무 몰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지적 번아웃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이처럼 인지훈련은 더 이상 추상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업무와 병행 가능한 전략적 실험으로 구성원을 정신적으로도 지원하는 HR의 실행 포트폴리오 안에 포함해 볼 수 있다.



“고용의 지속성과 ‘일하는 행위’가 CR 유지에 도움이 될까?”


많은 조직은 ‘퇴직’ 혹은 ‘은퇴 전 환승’을 전제로 시니어 인력 전략을 설계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질문은 그것보다 앞서 있다.

"일한다는 행위 자체는 시니어 구성원의 인지예비능(CR)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고용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인지적 이점이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일’이라는 활동이 단지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뇌와 신경을 자극하는 활동으로서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연구명: The Impact of Employment on Cognition and Cognitive Reserve

Vance, D. E., Bail, J., Enah, C. C., Palmer, J. J., & Hoenig, A. K. (2016). The impact of employment on cognition and cognitive reserve: implications across diseases and aging. Nursing: Research and Reviews, 61-71.


이 연구는 ‘고용 상태(employment)’가 인지 기능과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고찰한 체계적 문헌 리뷰(Systematic Review)이다. 다양한 연령층과 고용 유형을 포함한 기존 연구들을 종합 분석하여 다음의 결론을 도출하였다.


고용 상태 유지는 인지 기능 유지에 다차원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 신기술 학습 기회: 업무를 지속하는 동안 새로운 도구, 기술, 환경에 적응하며 인지자극 제공
. 사회적 상호작용: 동료 및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언어/기억 기능 자극
. 일상 루틴: 규칙적인 일과 패턴이 인지적 안정성 제공
. 심리적 의미 부여: 일에 대한 정체성, 성취감 등이 인지적 활력에 기여
. 경제적 자원: 건강 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뇌 건강 간접 보존

반대로 실업, 조기 퇴직, 질병으로 인한 일탈은 인지적 위축, 사회적 단절, 감정적 박탈감을 통해 인지 기능 저하를 가속화할 수 있음이 나타났다.



HR 관점의 시사점


이 연구는 재배치 및 내부 이동 활성화가 단순히 개인의 경력 개발을 돕는 차원을 넘어, 핵심 시니어 인력의 이탈로 인한 암묵지 손실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조직의 지식 연속성을 확보하는 지식 경영의 핵심 수단임을 시사한다.

첫째, 재배치 및 내부 전환을 적극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시니어 구성원이 질병, 번아웃, 기능 저하로부터 일시적으로 업무에서 이탈하더라도, 인지적 부하를 재조정한 형태로 다시 조직 안에서 재배치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

둘째, 경직된 평가 시스템을 보완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예를 들어, 직접적인 성과 창출 외에 후배 육성이나 기술 자문에 기여하는 '기술 고문(Technical Advisor)' 또는 '사내 코치(Internal Coach)'와 같은 직책을 공식화하고, 그에 맞는 별도의 성과평가 기준을 수립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조직이 시니어 인력에 대한 단순 보호를 넘어 지속 가능한 지적 자산으로 인식을 전환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퇴직 후 인지예비능(CR)은 시간이 지나도 효과를 유지하는가?”


시니어 인력의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HR은 ‘지금의 고용 관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시점에 진짜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직무를 통해 축적된 인지예비능은 퇴직 이후에도 유효한가?”
“만약 유지된다면, 조직은 그 잔여 효과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지 퇴직자의 복지 문제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경험을 지닌 퇴직자가 조직에 머무는 방식”,
“은퇴 시점 전후를 연결하는 전략”이 인지 자산 관점에서 왜 필요한지를 묻는 출발점이다.



연구명: Educational and Occupational Attainment and Cognitive Aging

Pool, L. R., Weuve, J., Wilson, R. S., Bültmann, U., Evans, D. A., & Mendes de Leon, C. F. (2016). Occupational cognitive requirements and late-life cognitive aging. Neurology, 86(15), 1386-1392.


이 연구는 인지예비능(CR)이 퇴직 이후에도 장기간에 걸쳐 인지 기능을 보호하는 효과를 가지는지를 평가한 코호트 기반 연구이다. 스웨덴 인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교육 수준과 직무 복잡성을 독립 변수로 삼아, 시간이 흐른 후 인지 기능 유지와의 관계를 다층 회귀분석으로 검증하였다. 핵심 발견은 다음과 같다.

높은 교육 및 직무 복잡성 경험은 은퇴 이후에도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유의하게 지연시킴.

특히, 복잡한 문제 해결을 요구했던 직무에 오래 종사한 개인일수록 퇴직 이후 수년이 지나도 인지예비능의 완충 효과가 지속됨.

즉, 직무로 인해 축적된 인지적 경험은 단기 효과를 넘어서, 퇴직 이후에도 뇌의 회복탄력성(신경가소성)에 기반한 보호 역할을 수행한다.



HR 관점의 시사점


이 연구는 은퇴 직전부터 퇴직 후 초기까지를 인지 전략의 시간적 연장선으로 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퇴직 전후 연계 프로그램의 전략적 가치는 조직과 개인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을 넘어, 조직 내부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발생 시 즉시 동원 가능한 외부 전문가 풀을 저비용으로 확보하는 데 있다. 이는 퇴직자의 경험과 지혜를 조직의 문제 해결 능력과 민첩성을 높이는 데 활용하는 혁신적인 인재 관리 전략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막연한 네트워크가 아닌 구체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선 퇴직자 대상의 알럼나이(Alumni) 플랫폼을 구축하여 지속적인 소통 채널을 확보하고, 나아가 신규 프로젝트 기획 시 자문 역할로 참여할 수 있는 퇴직 전문가 리스트를 인재 DB와 연동하여 필요할 때 즉시 검색하고 연락할 수 있는 체계를 고려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퇴직=종료’라는 관행을 넘어, “인지예비능이 지속되는 기간만큼 시니어 자산도 연장 가능하다”는 조직 철학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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