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자는 AI로 뭘 할까?

김상균이 AI로 하는 것들

by 김상균

예전에 조교에게 랩톱을 맡기고 작업을 시켰다가, 내 급여 명세까지 털린 적이 있다. 요즘은 비슷한 정리 작업을 AI에게 맡긴다. 그런데 이게 편리한가 싶다가도, 문득 신뢰의 무게가 어디로 움직였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AI를 갖고 실제로 뭘 하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으셔서 정리해 봤다. 이 질문도 함께 얹어서.


STAR 프레임웍 기준으로 설명한다. STAR 프레임웍에 관한 상세 설명은 <두 번째 지능>책에 나온다.


전체 사례는 아니고, 지금 생각난 것들 위주로 정리해 봤다.


1. Start, 시작 (시간,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던 것을 시작하는 접근)

1.1 수업계획서를 다양한 버전으로 올린다. 학부생들이 수업계획서를 잘 안 읽어서 시작했다.

50대 남자 교수의 언어로 쓰인 하나의 수업계획서가 아니라, 다양한 버전을 제공해서 그들이 선호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혀준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 버전, 한국어가 어려운 중국인 유학생을 위한 버전, 스레드 말투의 버전 등


1.2 아침마다 해외 최신 뉴스를 내 취향에 맞게 받아본다. AI, 휴머노이드, 메타버스, 생명공학, 뇌과학 영역에서 8개만 뽑아서, 한글 요약, 원문 링크를 받는다. 생성된 뉴스 레터에 내 피드백을 더할수록 그다음 레터가 내 취향대로 온다.


1.3 오지 탐방, 데일리 캠핑을 즐겨서, 방문할 곳을 찾아달라고 한다. 내 취향을 학습할수록 성공률이 높아진다.


2. Try, 도전 (역량이 없어서 포기하고 있던 것을 도전하는 접근)

2.1 소설 작업에 도움받는다. 최근에 집필 중인 ‘나는 매일 지옥으로 출근한다’에서 드라마 대본 작가 관점, 30대 팔로워 직장인 관점, 리더 관점, 드라마 PD 관점, 20대 말투 전문가 관점 등을 에이전트를 통해 피드백 받으면서 작업한다.

이 모든 관점은 기존 내 역량을 넘어선 영역이다. 엄청나게 든든하다.


2.2 내 분야가 아닌 논문을 볼 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토목, 농업 관련 논문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나를 중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전문 용어를 풀어서, 전체 흐름을 설명해 줘’라고 부탁한다.

이렇게 접근하면, 아예 보지 못할 논문은 없어진다.


2.3 학교에서 우리 전공 홈페이지 제작을 안 해줘서, 바이브 코딩 형태로 만들어 보고 있다. 생각보다 아웃풋이 괜찮다. 아직 완성은 아니다.


2.4 AI에게 내 지메일, 캘린더, 폴더 등을 다 오픈해 주고, 나에 관해 분석 작업을 시킨다. 교육자, 철학자, 기업 CEO, 소설가, 영적 지도자, 예술가 등의 관점에서 내 궤적, 작업을 살펴보고 피드백해달라고 한다. 한 번에 다 해달라는 게 아니라, 각 관점을 들이대고, 그 관점으로만 얘기하게 한다. 이 작업을 거치면서, 자기 이해가 높아지고, 내 비전도 좀 더 선명해졌다.


3. Amplify, 증폭 (하던 것을 더 잘하기 위한 접근)

3.1 신문 칼럼, 잡지사 원고 보낼 때, 마지막에 AI에게 피드백 요청한다. 예를 들어 HRD 관련 글이라면, “현업 HRD 담당자가 이 글을 읽고, 스레드에 악플을 남긴다면, 뭐라고 남길까? 감동을 받는다면 어떤 포인트? 실제 실천을 시도한다면 어떤 포인트? 이런 질문을 해보면, 글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3.2 300명이 넘는 학부생 수업평가(서술형 정성 평가)를 AI로 분석한다. 피드백을 클러스터링하고, 내가 꼭 읽을 부분을 짚어주고, 개선 방향을 함께 논의한다.


3.3 나와 세대, 전문 영역, 직무가 크게 다른 이와 대화 후에, 혹시 대화에서 내가 맥락을 잘못 이해하거나 전달한 부분이 있을지 확인해 본다. 대화를 이메일, 카톡으로 했을 때는 긁어 넣고 물어보면 되니까 참 편하다. 우리가 같은 한국말을 쓴다고 해서, 서로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니까.


3.4 내 강의 교안을 에이전트에게 다 보내놓고, 디자인 개선을 해보라고 시킨다. 근데 결과물은 늘 ‘판교 디자인’ 비슷하게 나온다. 난 그게 싫다. 그래서 디자인 개선을 아직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3.5 명함을 추가로 찍어야 해서 AI와 의논했다. 통상 10개월에 500장 소비. 근데 결과적으로 AI의 의견을 안 따르기로 했다. 영문법, 미학, 문화적 표현 차이 등, AI 의견이 맞는 부분도 있지만, 내가 바라본 개선 포인트가 아니었다. 그래도 AI의 의견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4. Recover, 회수 (하던 것을 시간, 돈, 노력을 줄여서 같은 성과를 내는 접근)

4.1 거절 메일 쓸 때 이용한다. 예를 들어, 학점 정정해 달라는 학부생들의 반복 요청에 관한 답변. 내가 기본 가이드를 잡고, AI가 쓰게 한다. 핵심은 요청받은 이메일과 대비해서 충분히 길고, 친절하고, 상세하고, 다른 해결책을 제공해야 한다.


4.2 요청, 섭외 이메일을 보면, 메일 본문만 5천 자가 넘는 경우도 있다. 상대 입장에서는 배경 맥락을 자세히 소개하려는 것인데, 내 입장에서는 핵심 파악이 너무 힘들다. 이때 AI에게 내용 재구성을 시킨다. 내게 요청하는 내용의 개요, 내 입장에서 결정해 줘야 하는 항목, 내가 결정할 때 고려할 요소 등으로 나눠서. 인지적 자원이 훨씬 덜 쓰인다.


4.3 ~~ 관련 자료, ~~ 이력, ~~ 데이터 등을 달라는 경우, 에이전트에게 정리해서 달라고 시킨다. 조교에게 이걸 맡기는 건 좀 애매하다. AI는 내가 허용한 것에만 접근해서, 시킨 것만 하지만, 인간 조교는 내가 준 권한으로 뭘 할지 더 예측 불가다. 실제 예전에 내 랩톱주고 작업 시켰다가, 급여 명세까지 다 털린 적이 있다.

고민 포인트이기는 하다. 조교에게 단순 정리작업을 안 시키는 것은 그에게도 좋은 것이지만, 신뢰의 무게가 움직인 것도 같아서.


일단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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