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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Jun 15.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기억(16)

[기억 4주차 - 인문사회] 4. 집단기억과 심리학

   지난 시간에는 집단기억이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집단기억이 심리학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집단기억의 성분과 집단기억의 4가지 심리적 기제를 사례와 함께 탐구해보려고 합니다.


집단기억의 성분

   집단기억은 자서전적 기억간접적 집합기억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자서전적 기억은 특정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이며 간접적 집합기억은 국가나 타인에 의해 외부에서 주입된 기억을 뜻합니다. 즉, 집단 기억은 특정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들의 기억과 외부 교육에 의해 주입된 집합기억들을 모두 뜻할 수 있으며, 이 두 기억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엑소더스는 자서전적 기억과 간접적 집합기억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출처 : 르 몽드 세계사, 2008

   이는 팔레스타인의 엑소더스 예시에 잘 드러나는데,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고 국가를 건설하면서, 팔레스타인인이 인근 국가로 대규모로 피난을 가는 엑소더스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자서전적 기억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들의 자서전적 기억에는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을 대표한다는 의식이 없었고, 오히려 왕을 대표한다는 의식이 있었으며, 이스라엘에 대한 적개심이나 정치적,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교육을 통해 엑소더스에 대해 배운 젊은 세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뿌리 깊은 적개심, 이스라엘인에 대한 편견을 주입받아 이와 관련된 간접적 집합기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자서전적 기억과 간접적 집합기억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간접적 집합기억의 경우 정치적 의도의 산물일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집단기억의 오기억

   앞서 살펴보았듯 집단기억은 자서전적 기억과 간접적 집합기억을 모두 이르는 말입니다. 이 중 자서전적 기억은 일종의 개인기억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개인기억이 쉽게 변하고 신뢰하기 어렵듯,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집단기억의 오기억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독일의 덴마크 침공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덴마크 노인들은 독일이 덴마크를 침공한 날의 날씨를 실제보다 더 우울하게 기억하였고, 독일이 항복한 날의 날씨를 실제보다 더 맑게 기억했다고 합니다. 즉, 과거 기억은 그들의 신념이나 태도에 따라서 사실과 달리 부정확하게 재구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해당 날들의 날씨를 사료에 기반하여 정확하게 파악하는 역사가와의 차이점을 보이며, 집단기억의 오기억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집단기억의 심리적 기제

벨기에 남부와 북부의 분열된 정체성의 형성에 4가지 심리적 기제가 영향을 미쳤다 / 출처 : http://study.zum.com/book/12662

   집단기억은 4가지의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벨기에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데, 벨기에의 경우 남북부가 지리, 언어, 경제적인 차이를 지니며 분열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분열된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4가지 심리적 기제가 발동하였고, 이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The efficacy of action입니다. 이는 특정 ‘행동’에 의해 집단기억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벨기에 북부는 1차 대전 당시 남부 사람에 의해 사망한 북부 병사 형제를 추모하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남부 사람에 의해 사망한 것은 형뿐이고, 동생은 다른 이유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북부에서는 두 형제의 죽음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소설을 쓰고, 기념비를 세우는 등의 ‘행동’을 지속하게 되고, 결국 북부 사람들은 두 형제가 모두 남부 사람들에 의해 사망했다는 집단 기억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는 어떤 기억이 공동체의 집단기억이 되기 위해, 꼭 그 기억이 사실에 부합해야 할 필요는 없음을 나타냅니다. 사실에 입각한 기억인지에 여부보다는 형제를 추모하는 등의 특정 ‘행동’이 집단기억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특히 the efficacy of action의 효과를 높일 수 있었던 추가적인 요소를 심리학 이론에 의해 살펴보자면 스키마 이론이 이에 해당합니다. 스키마이론은 '기존 소재와 관련이 있을 경우, 새로운 소재는 더 잘 기억된다'는 이론인데, 특히 두 형제의 이야기가 북부 사람들에게 잘 전파, 각인되어 집단기억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원인은 두 형제가 시골 사람이었고,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 그리고 두 형제의 우애가 좋았다는 점이 '전원', '기독교', '우애'를 중시하는 북부사람들의 스키마에 더 쉽게 흡수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조선시대 사극영화를 서양인보다 한국인에게 보여주었을 때, 한국 문화에 대한 스키마가 있는 한국인이 그 내용을 더 잘 각인하는 것과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Inaction입니다. 이는 특정 기억을 선택적으로 강조하고, 특정 기억을 선택적으로 무시하면 반응 경쟁이 일어나 무시된 기억이 억압되고, 망각된다는 것입니다. 제국주의 시절에는 남부가 벨기에의 정치권력을 쥐고 있었는데요. 이때 벨기에 정권은 잔혹한 식민지배에 대한 정보는 감추고, 식민지배가 자국에 주는 혜택의 측면만 선택적으로 강조하여 국민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결국 남부 사람들은 이로 인해 식민지배를 긍정하고, 식민지배에 대한 윤리적 무감각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남부의 이러한 영향에서 벗어나있었던 북부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되면서 남부의 잔혹한 식민지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게 됩니다.

   결국 남부에서 식민지배와 관련한 혜택만이 강조되어 기억되고, 식민지배의 폐해에 대한 기억은 무시, 억압되면서 망각되어 inaction 현상이 나타났고, 그 결과로 남부에서는 식민지배와 관련된 혜택이 집단기억으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 번째로, Lived pasts입니다. 이는 기억이 용이한 100년 이내의 집단기억만 대화의 형태로 전승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벨기에 북부 사람들의 경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에 협력했던 벨기에 북부 여성들의 머리를 밀어버렸던 집단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100년 이내의 최근기억이기에 지금까지도 자연스럽게 대화의 형태로 이 집단기억이 전승되어 형성될 수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네 번째로, Presentism입니다. 이는 집단기억이 종종 과거의 산물로 인식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현재를 반영하며, 오히려 사람은 현재의 태도 및 감정상태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재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집단기억을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벨기에 북부는 부유하고, 남부는 빈곤한 상태에 놓여 있는데, 벨기에 북부와 남부의 사이가 좋지 않다보니 북부는 인구 및 기여도에 따른 재화 분배를, 남부는 필요에 따른 재화 분배를 주장하는 등 경제제도에 대해 날카로운 대립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에는 반대로 벨기에 남부가 부유했으며, 북부가 빈곤한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현재 이러한 과거 상황과 관련하여 북부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이 과거에 부패하고 무능했다고 기억하고 있으며, 남부사람들은 과거 북부가 가난했던 시절 남부에서 북부를 도와줬던 것을 배신한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결국 현재의 극렬한 남북부의 대립이 과거에 대한 각자의 집단기억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 때 집단기억은 오히려 각자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감정적, 경제적 대립이 과거에 대한 그들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억 세션을 마무리하며

   이로써 기억을 주제로 구성한 인문사회팀 세션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기억에 관해서 역사적으로 진행된 인문사회학적 논의들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집단기억과 개인기억의 정의, 집단기억과 사회적 틀, 정체성의 형성, 그리고 심리적 기제까지 알아보았습니다. 집단기억이 사회적으로 발현될 때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은 각각의 역사적 사례들에 따라 다르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기억에 관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지만, 다양한 사례를 통해 검증하고 토론해볼 수 있다는 것 또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이번 세션에서는 '기억'이라는 주제 아래에서도 '집단기억'이라는 일부 현상만을 설명했지만 또다른 기억요소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를 통해 인문사회학적 현상을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로써 인문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코싸인 인문사회팀]

     

참고문헌

[1] Rafi Nets-Zehngut. (2011). Palestinian Autobiographical Memory Regarding the 1948 Palestinian Exodus. Political Psychology, 32(2), 271-295.

[2] William, H., & Ioana, A. F. (2011). Psychological perspectives on collective memory and national identity: The Belgian case. Memory studies, 5(1), 8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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