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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싸인 Jun 14. 2017

[코싸인의 인지과학 이야기]
기억(15)

[기억 4주차 - 인문사회] 3. 집단기억의 역사학과 정치학

    우리는 앞서 개인의 기억 형성에 사회적 틀이 작용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집단기억은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집단의 역사와 정치에는 어떻게 작용할까요?



집단기억의 정체성 형성

    기억이 집단적이며 사회적이라는 것은 어떤 사회가 기억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는 기억이 만들고 전승하기 위해 상징, 텍스트, 그림, 의례, 기념비, 국경일 등의 각종 장치를 활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억이 만들어질 때에 특정 집단의 의도가 들어갈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억은 선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특정 의도에 의해 파편화되어 있던 기억 조각들이 맞춰지고 재구성되며,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재해석됩니다. 이렇게 기억이 특정 집단에 의해 의도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면 그 기억은 권력적, 혹은 정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집단기억 중 특정 기억들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사용되며, 역사학과 정치학까지 차용되기도 합니다. 


집단기억 / 사진출처: The oxford centre for the mind



독일의 나치와 홀로코스트 기억

    여기에 구체적인 사례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독일의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억입니다.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한 기억은 전후 독일의 정치인들을 비롯한 모든 국민들에게 집단기억으로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에 독일은 가해자로서 과거를 반성하고 화해를 향해 나아가는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데요, 독일의 기억과 정체성은 전쟁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빌리 브란트 수상의 사과를 이끌어내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독일은 전체주의와 집단주의에 배격하는 정책과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의 반성적인 기억을 교육하고 주입하는 것이 다분히 정치적 계산에 의한 행위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독일은 지리적으로 네덜란드와 프랑스 등 여러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고,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으면 정치적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시각에 의하면, 개별 독일인들의 2차 대전에 대한 기억 배후에는 권력계층의 정치적 계산이 작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 홀로코스트 기념관 / 사진출처: 국제신문



야스쿠니적 기억과 히로시마적 기억

    두 번째 사례로는, 일본이 2차 대전을 기억하는 방식과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일본이 2차 대전을 기억하는 방식과 정체성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는 바로 ‘히로시마적 기억’과 ‘야스쿠니적 기억’입니다. ‘히로시마적 기억’은 일본의 전쟁의 가해자 측면에서의 기억입니다. 자신들이 한국과 중국에 가했던 잘못들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과정에 대한 일본의 기억인 것이죠. 일본은 히로시마 평화 박물관과 고노-무라야마 담화 등의 기억 상징물을 통해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반성하고 핵무기의 사용에 반대하며 공생과 화합, 평화를 강조하는 정체성을 갖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본은 원자폭탄 및 전쟁 패배자로서의 기억을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갖기보다는 전쟁의 보편적인 피해자 입장을 취함으로써 평화주의자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본의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는데요, 자신들에게 가해한 미국을 배격하는 것보다, ‘히로시마적 기억’을 통해 전쟁의 보편적인 피해자 입장이 되는 것이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사진출처: 시사뉴스투데이


    또한 일본은 ‘야스쿠니적 기억’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억울하게 당한 피해에 대해 강조하며 기억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최초의 핵 공격 피해국가로서 이후 미군정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들을 기억하며, 과거 일본의 영광스러운 모습들을 전쟁으로 사망한 자들을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욱일승천기 등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현재 일본 정권의 우경화와 같은 정치적 스탠스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기억을 통해 일본은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보이게 되는데요, 이는 일본이 지리적으로 고립된 국가이기 때문에 주변국의 눈치를 보며 반성적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개별 일본인들의 2차 대전에 대한 기억 배후에도 권력계층의 정치적 계산이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예에서 살펴보았듯 집단기억은 단순히 개인의 기억 형성에 작용하고, 우리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역사와 정치적인 문제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코싸인 인문사회팀] 


참고문헌

[1] 김상준. (2005). 기억의 정치학: 야스쿠니 vs. 히로시마. 한국정치학회보, 39(5), 215-236.

[2] 安秉稷. (2008). 동아시아의 역사 갈등과 한국사회의 집단기억. 역사학보, 197, 197-228.

[3] 崔豪根. (2003). 집단기억과 역사. 역사교육, 85, 159-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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