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동물농장입니다. 마당에는 오리 네 마리, 닭장엔 어미닭과 병아리가 일곱 마리, 뒤뜰엔 토끼들이 스물다섯, 아니 스물여섯인가?... 아 모르겠어요 아무튼 엄청 많은데 수를 셀 수가 없어요. 그 이유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참, 저는 셰퍼드종의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귀염둥이 강아지랍니다. 동물들이 이것뿐 이냐고요? 아니죠. 외양간엔 소도 일곱 마리, 그 옆 돼지우리에 돼지도 다섯 마리나 있어요. 이만하면 우리 집이 왜 동물 농장인지 알겠죠?
예전에 우리 집에 동물이라고는 우리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제 외할머니 개만 있었대요. 우리 외할머니는 족보도 있는 품격 있는 개였다네요. 셰퍼드종이었는데 우리 집주인 누나의 이모네 집에서 왔대요. 이모님 큰 딸이 미국 사람이랑 결혼을 해서 이민을 가게 되었고 그 미국 사람이 키우던 셰퍼드는 서울에 있는 이모가 키우게 되었대요. 그런데 큰 셰퍼드인 우리 외할머니는 미국 사람과 살 때 마당이 넓은 집에 살았는데 새로 이사 온 집은 아파트였던 거예요. 셰퍼드는 워낙 집을 잘 지켜서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아주 큰 소리로 컹컹 짖어대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개 짖는 소리를 싫어해서 우리 집으로 내려오게 된 거래요. 족보까지 있었던 외할머니는 같은 동네 살고 있는 바람둥이 검정개와 결혼을 해서 엄마를 비롯해 9마리의 강아지를 낳았대요.
그런데 시골 사람들도 족보 있는 개는 알아보았는지 강아지들이 크기도 전에 점찍어 놓았다가 우리 엄마만 남겨놓고 모두 가져가 버렸다는 거예요.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를 닮아서 셰퍼드의 기품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제가 봐도 우리 엄마는 등이 미끈하고 다리가 길쭉한 것이 참 멋있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는 키도 작고 털은 누런 빛깔인 우리 아빠랑 결혼을 해서 저를 비롯해 6마리를 낳았어요. 저는 그중 막내로 태어났지요. 누나와 형님들은 엄마와 비슷한 잿빛과 검은색이 많고 셰퍼드처럼 키도 커서 사람들이 많이 좋아했어요. 그래서 자고 나면 하나씩 사라지는 거예요. 점찍어 놓은 사람들이 데려갔대요.
저는 아빠를 닮아 누런 색깔에 다리도 짧아 아무도 데려가지 않았답니다. 사람들은 나만 보면 못생긴 똥개라고 불러요. 저는 똥도 안 먹고 분명히 토미라는 이름이 있는데 말이에요. 이름이 저랑 잘 안 어울린다고요? 암튼 주인집 누나가 나를 그렇게 지어주었다고요. 누나가 학교에 갔다 돌아올 때면 동구 밖에서 저를 부르곤 하죠 “토~~ 미” 하고 말이죠. 그러면 저는 낮잠을 자다가도 빛의 속도로 달려가서 누나에게 안기곤 해요.
주말이면 누나랑 산책도 하고 공 물어오기 놀이도 해요. 비록 다리는 짧지만 공을 얼마나 잘 찾아오는지 우리 누나는 저에게 항상 최고라고 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요.
토끼 녀석들이 우리 집에서 살게 된 것은 우리 엄마가 막 태어났을 때래요. 그때 주인집 누나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학교에서는 상품으로 토끼 한 쌍을 주었대요. 우리 주인 누나는 공부를 아주 잘했거든요. 뒤뜰에 심긴 밤나무도 1등 상으로 받은 거래요. 누나는 학교 갔다 오면서 매일 풀을 한 아름씩 뜯어다가 토끼를 정성껏 키웠대요. 토끼는 새끼도 금방금방 낳는대요. 그 토끼가 5마리의 새끼를 낳고 새끼들이 또 새끼를 낳고... 그래서 뒤뜰 옆에 울타리를 치고 방목을 했대요. 그런데 토끼들이 땅에 굴을 파고 그 안에서 자꾸만 번식을 하니까 토끼들의 수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하네요. 누나가 뜯어다 주는 풀이 금방 없어지는 걸 보니 아마 40마리쯤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오리도 그 무렵 들어온 것 같아요. 나라에서는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가에 오리 열 마리를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대요. 주인집은 오리 농사를 지어서 논에 풀어놓고 키워요. 오리들이 논에서 돌아다니며 개구리며 벌레들을 잡아먹는 동안 논은 자연스레 잡풀들이 자라지 못하게 되고 해충을 제거해 농약 없이 농사를 짓는 거래요. 그런데 오리 대장이 낮잠 자는 동안 어린 오리들이 다른 집 논에 들어갔다가 모두 죽고 말았대요. 그 논은 오전에 농약을 뿌린 논이라 들어가면 안 되는데 호기심 많은 오리들이 들어갔다가 몰살을 당한 거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대장 오리는 물만 보면 기겁을 하고 뛰쳐나온대요. 주인집 어른들은 오리가 너무 가여워서 큰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거기에 미꾸라지며 물고기들을 풀어놓고 대장 오리를 넣어주었죠. 그런데 물에 들어가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그 대야에서 뛰쳐나온대요. 항상 고개를 숙이고 병든 닭처럼 구는 대장 오리 때문에 오리 세 마리를 더 사 오셨어요. 그 덕분인지 대장 오리는 다시 힘을 얻어서 아기 오리들을 잘 데리고 다녀요. 신기하게도 농약 친 논을 잘 알고 새로 온 오리들이 절대로 그리로 가지 못하도록 늘 교육을 시킨다고 하네요.
그럼 병아리와 닭은 어떻게 같이 살게 되었냐고요?
우리 주인집 누나가 학교 수업이 끝나고 교문을 나서는데 병아리 파는 할머니가 있었대요. 노란색 병아리들이 꼬물꼬물 삐악삐악 거리는 게 너무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보며 주머니에 있는 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대요. 그 돈은 노트를 사야 했거든요. 할머니는 한 마리 가격에 두 마리를 준다고 했다는 거예요. 할머니의 말씀에 얼른 병아리 두 마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정성 들여 키웠대요. 하지만 그렇게 사 온 병아리가 잘 클 수 있겠어요? 이틀째 되는 날부터 병아리는 눈도 뜨지 않고 꾸벅꾸벅 졸다가 하늘나라로 가 버렸지요. 다음날도 또 한 마리마저 가버리고 말자 우리 주인 누나는 밥도 안 먹고 병아리를 묻어 준 곳에 가서 울기만 했어요. 거기에 민들레꽃을 심어놔서 지금도 봄이 되면 그 주변엔 노란색 민들레가 잔뜩 피어 병아리들의 유치원 같아요. 이런 동생이 불쌍해 보였는지 주인집 누나의 오빠가 튼튼한 병아리 한 쌍을 사다 주었대요. 생기를 찾은 누나는 얼마나 정성을 다해 키웠는지 그 병아리가 커서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돼서 또 병아리가 되고... 아무튼 우리 집엔 병아리들이 삐약거리며 돌아다녀서 제 낮잠을 망치곤 하죠. 제가 자고 있으면 고 작은 병아리들이 제 코를 콕콕 쪼는 거예요. 놀아달라는 거지요. 우리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잡기 놀이를 하면 오리들도 다가와 꽥꽥거리며 끼워달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옆집 고양이가 문제예요. 아무도 모르게 살금살금 다가와서 고렇게 예쁜 병아리를 놀라게 하는 거예요. 저는 원래 고양이랑 친하지는 않았지만 잘 지내고 싶어서 꼬리를 흔들면 등에 털을 잔뜩 치켜세우고는 저를 노려보는 거예요. 그 모습도 귀여워서 살금살금 다가가면 앞발로 제 코를 할퀴고는 도망을 가 버려요. 나쁜 고양이... 다시는 안 놀아줄 거예요. 그런데 가끔 우리 집을 기웃거린다니까요. 우리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면 셈이 나는가 봐요. 그 고양이 집에는 동물 친구들이 하나도 없거든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것은 친구가 없다는 거예요. 제 코를 할퀴지만 않는다면 제 밥도 나눠주고 같이 놀아 주려고요.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겠지요?
참 며칠 전에 우리 집에 강아지가 한 마리 더 생겼어요. 그 애는 저랑 나이가 같은 여자아이인데 저랑은 안 친해요. 뭐 자기는 우리와 격이 다르다나요? 주인에게 버림을 당해서 우리 집에 온 주제에 말입니다. 그 애의 이름은 프린세스라서 공주라나... 사실 예쁘긴 하더라고요. 귀와 꼬리엔 핑크색으로 염색도 하고 털도 단정하게 잘라줘서 진짜 공주님처럼 예뻐요. 그런데 겉모습만 예쁘면 뭐해요? 그 애는 항상 주인집 마루에 쪼그리고 엎드려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데요. 그리고 웬일인지 컹컹 짖지도 못해요. 주인이 아파트에서 짖으면 안 된다고 성대 수술도 했대요. 그런데 바닷가로 놀러 갔다가 프린세스만 남겨 놓고 가 버린 거예요. 프린세스는 주인이 자기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며 매일 그 자리에서 기다렸대요.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프린세스는 비쩍 말라만 가고... 그 바닷가에 친구들이랑 놀러 갔던 우리 주인집 형이 그 사연을 듣고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데리고 왔대요. 우리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프린세스는 밥도 안 먹고 계속 잠만 자고 있어요. 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켄에 들은 밥을 주었는데 말이죠. 사실 전 주인집 누나가 저를 제일 귀여워하는 줄 알았는데 프린세스에게 잘해 주는 걸 보고 속이 상했거든요. 그래서 텃세도 부리고 다른 친구들을 모아서 왕따를 시켰지요.
어느 날 프린세스가 한눈을 파는 사이 프린세스 밥을 훔쳐 먹기로 했어요. 봉지에 담긴 바삭 거리는 과자와 캔에 들은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우엑~~ 어떻게 저런 걸 매일 먹고 살죠? 느끼하고 맛도 없고... 전 저런 걸 매일 먹으라고 하면 차라리 들판의 풀을 뜯어먹고 사는 게 낫겠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안 보려고 해도 자꾸만 프린세스의 모습이 제 눈에 아른거리는 거예요. 머리를 흔들어 보아도 자꾸만 그 얼굴이 떠올라요. 그래서 일부러 마당 밖으로 나가서 병아리, 오리들과 뛰어놀았지만 재미가 없는 거예요. 오리 아줌마는 저를 보고 막 놀려요. 뭐 제가 사랑에 빠졌다나요?
“아니거든요. 프린세스 같은 스타일은 저랑 안 맞거든요.” 라며 항변을 했어요. 그런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은 왜일까요? 그리곤 툇마루에 죽은 듯 누워있는 프린세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거예요. 에구 이런 진짜 사랑에 빠졌나 봐요.
하루는 제가 용기를 내서 프린세스에게 동네 산책을 하겠냐고 물어봤어요. 늘 흘겨보던 프린세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거예요. 전 어깨를 딱 펴고 앞장서서 걸었어요. 가다가 뒤를 흘끔 보니 프린세스도 저를 따라 나오는 거예요. 가장 먼저 병아리 남매가 묻힌 민들레 꽃밭에 데리고 갔어요. 그런데 프린세스가 화들짝 웃으며 좋아하는 거예요. 이렇게 아름다운 꽃밭은 처음 본다고요. 저는 희망이 생겼어요. 우리 동네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참 많거든요. 집집마다 노란색 개나리 울타리는 얼마나 예쁜데요. 그런데 개나리꽃은 지고 초록 잎이 산뜻하게 춤을 추고 있네요. 마을 공원에는 장미꽃이 수줍은 듯 피어 있어요. 프린세스는 이제 팔짝팔짝 뛰기까지 하는 거예요. 연신 코를 벌름거리면서 꽃향기를 마시더니 힘이 솟았나 봐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제 밥을 정신없이 먹는 거예요. 하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프린세스가 밥을 잘 먹고 다른 동물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제 마음도 행복했거든요.
옆집 고양이도 살며시 다가와 프린세스에게 관심을 보이네요. 우린 곧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햇볕이 참 따스하네요. 함께 봄 산책하러 가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