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에서 신뢰로, 돈의 이동

by 리딩더리치

옛날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다. 조개껍데기부터 시작하여 금, 은, 쌀, 소금 같은 것들이 돈처럼 사용되었다. 손에 잡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금반지는 녹여도 여전히 금이다. 쌀 한 포대는 사람의 배를 채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진짜 가치’라고 여겼다.


지금 우리가 쓰는 돈은 어떨까. 5만 원짜리 지폐는 사실 종이 한 장에 불과하다. 먹을 수도 없고, 옷을 만들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종이를 믿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모두가 “이 종이는 5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약속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기 때문에 종이는 단순한 종이를 넘어 화폐가 된다. 중요한 것은 재료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약속과 믿음이다.


그 약속과 믿음으로 인해 요즘은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도 믿는다. 은행 앱 화면에 표시된 “10만 원”은 종이돈이 아니다. 단지 디지털 숫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숫자를 믿고 물건을 산다. 배달앱 포인트도 마찬가지다. 게임 아이템도 그렇다. 손에 잡히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함께 사용하면 가치가 생긴다. 즉, 가치는 점점 물질에서 신뢰와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비트코인이 등장한다. 비트코인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컴퓨터 속에서만 존재하는 디지털 데이터일 뿐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이 디지털 데이터에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바로 희소성 때문이다.


운동회에서 1등 상장을 100명에게 나눠 준다면 상장의 의미는 사라진다. 1등 상장은 1장뿐일 때 가치가 생긴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대규모로 통화를 공급했다.이 과정에서 통화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졌다.위기 상황에서 ‘돈을 더 공급하는 방식’이 반복되는 구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등장했다. 이러한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비트코인은 “아예 발행량을 바꿀 수 없게 하자”는 정반대의 철학을 제시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처음부터 2,100만 개만 존재하도록 정해져 있다.


비트코인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이 ‘정해진 숫자’ 즉, 희소성을 믿었다. 정부가 인정하지 않아도, 희소성을 바탕으로 비트코인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값을 매기기 시작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믿는 사람이 늘어나자 네트워크는 커졌고, 일부 국가는 비트코인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하거나 자산의 한 형태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비트코인은 가치가 물질에서 신뢰와 네트워크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하자 말이 많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가짜 돈이라는 조롱을 받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대 사회는 점점 신뢰와 네트워크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치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함께 믿기로 했는가에 달려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믿고 지키는 약속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가 된다.


나는 비트코인 투자자다. 신뢰와 네트워크라는 거대한 변화에 투자했다. 단순히 가격을 보고 투자했다면, 1억 7천만원할 때 팔았을 것이다. 하지만 팔지 않았고, 오히려 가격이 과열되었다고 판단해 매수를 경계해야 한다고 썼다. 여전히 그 글들이 내 블로그에 남아 있다. ( https://brunch.co.kr/@coincoach/87 ) 지금은 어떠한가. 가격은 조정을 받았지만 네트워크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희소성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비트코인을 사기 시작했다. 가격이 내려온 지금이 위험이 아니라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현대 경제에서 돈의 모습은 분명 달라지고 있다. 돈은 금속에서 종이로, 종이에서 숫자로, 숫자에서 코드로 변해 왔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같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믿고 지키는 약속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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