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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네시 Jun 12. 2020

신입 직원의 존재감

너도 이제 다 컸구나.

 입사한 지 햇수로 9년차인 나는, 지점의 막내 생활을 오래 한 편이다. 나보다 입사가 늦은 후배와 일한 기간이 3년이 채 되지 않는데, 그것도 업무를 직접적으로 함께 했던 건 최근 10개월 간 근무한 신입 직원이 처음이다. 그래서 좀 더 각별한 건 사실이다. (딱히 잘 해준 게 없어 조금 찔린다)


 올 상반기에는 이슈가 다양했다.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근무지역 전체가 뒤숭숭했고 집단대출 등의 업무와 정부가 시행한 '소상공인 긴급지원 대출'이 겹쳐 매우 정신없는 상반기를 보냈다. 그럼에도, 나름 뛰어난 팀워크를 자랑하는 우리 창구 직원들 덕에 큰 어려움 없이 헤쳐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상당히 좋은 실적으로 상반기를 마감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다.


 막판에 몰아치기를 해서 대역전극이 벌어지곤 하기에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여태껏 근무하면서 이 시점에 이 정도까지 지점 실적이 좋았던 적은 처음이라, 살짝 실감이 안난다. 어찌 보면 지점 간 경쟁이 아니라 커뮤니티 간 경쟁(지리적으로 가까운 3~4개의 지점끼리 팀을 구성해서 경쟁하는 구도)이라 더 실감이 안났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나의 지분이 딱히 많지 않아 그럴 수도 있겠다. (아냐 짜샤, 너도 열심히 잘 했어)


 6월을 잘 마무리해야 0.5년 농사를 잘 짓게 되는데,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손님이 줄어든 것이다. 돌이켜보면, 1월, 6월, 7월, 12월 등은 그렇게 바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는 이사철도 아니기 때문에 대출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손님이 적어지니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 딱히 우리 지점만 그런 것도 아닐테니 크게 걱정할 부분은 아니지만, 막상 성적이 좋은 상황이 되니 이러다 뒤집어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음, 나 원래 이렇게 지점 성적을 고민하는 직원이 아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긁적긁적)


 그렇게 손님이 뜸해져 상대적으로 한갓진 객장을 앞에 두고 쌓인 일들을 처리하던 요즘, 옆 자리가 썰렁해졌다. 나의 오랜 막내 생활을 종식시켜준(코로나도 종식시켜주라!) 고마운 후배 직원이 팔로우업 연수(신입직원들의 업무역량 강화를 위한 입사 후 1년간 실시하는 A/S 연수)를 떠났기 때문이다. 고작 2일일 뿐인데, 가는 김에 휴가까지 붙여서 총 3일을 안나올 뿐인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신입 직원이 자리를 비우면 오히려 일하기 수월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건 그 직원이 제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혹을 붙여줄 때의 이야기다. 내 옆자리를 지키던 이 직원은 입사한지 겨우 10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상당한 자기 몫을 하고 있었던 듯 하다.


 처음 신입 직원을 봤던 날이 기억난다. 상당히 큰 키에 조금은 깍쟁이처럼 보였던 외모의 여직원이었다. 까탈스러워 보였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털털했던 성격에 왠지 안심이 됐던(?) 그 때가 생각난다. 나이 차이가 8살이나 나다 보니,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재채기처럼 '세대 차이'는 숨길 수 없었다. 나름 잘해주려고 했지만, 성별도 다르고, 아재스러운 개그를 좋아하는 내가 '요즘 아이들'에게 어필하기란 쉽지 않은 과제였다. 회사 몰래 하고 있는 유튜브 영상이라도 확 공개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더 멀어질지도 몰라 참고 있다. 그래, 유튜브는 나의 평생 취미이니 아껴두자.


 고작 3일이지만 그녀의 빈자리가 조금은 티가 났던 것은 우리 지점 모두에게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어엿한 사회인이자 은행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부족한 선배이지만 그 사람(나)으로 하여금 하루를 돌아보며 끄적이는 글의 소재가 되었다는 것이 그녀가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너무 내 위주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내 브런치니까.


 언젠가 나의 브런치가 직장 동료들에게도 공개되는 날이 오겠지만, 그 때 그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OO야, 잘 하고 있어. 근데 밥은 좀 잘 챙겨먹고 다녀라. 안그럼 나처럼 병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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