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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jette May 03. 2016

절에서 쉬어가다

개인적인 소소한 이야기들

 회사를 관두고, 잠시 쉴 겸 해서 절에 다녀왔다. 템플스테이는 거의 매년 하는 것 같지만 며칠을 쉬다 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간 곳은 골굴사라는 절로, 올 초에 사실 템플스테이로 다녀왔던 곳이다. 좀 힘들기는 하지만 산 속이라 공기도 좋고 몸을 움직이면서 좀 정신없이 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다시 다녀왔다. (골굴사는 불교 무술인 선무도의 총본산으로, 절에 머무르면 오전 오후로 선무도 수련을 받을 수 있다.) 머리를 비우기에 좋은 것 중 하나가 몸을 움직이는 건데, 워낙에 게으르고 운동을 싫어하는 인간이 되어놔서 이런 데 안 가면 운동 같은 거 알아서 할 리가 없다. 

(이건 지난 번에 갔을 때 찍었던 선무도 공연 및 수련 사진임)


어딘가를 체험하기 위해 1박 2일은 사실 정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경우 이번에는 정말 '쉬자'는 목적이 뚜렷했기 때문에, 예정으로는 좀 오래 쉬려고 간 것이었는데...


그렇다 내가 간 기간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놀러다니는 기간 중 하나인 4월 말-5월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orz (사람 많은 것을 매우 싫어함) 그래서 결국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말합니다. 그래 사람들 많이 찾아오는 건 좋아요. 그래야 이런 템플스테이도 흥하고 오래 가고 하니까...다 좋은데, 왜 대체 회사 수련회로 템플스테이를 오는거죠? 단체로 왜 오죠? 왜왜왜왜. 단체로 이런 데 와서 참 정신수양 되겠어요. 특히 회사에서 와서 참 좋겠어요. 네에.)


그래도 확실히 하루 이틀 있는 것과는 또 달랐고, 편안했고, 약간의 생각을 했다.

소소한 일화들은 몇 가지 재밌을 지도 몰라서 남겨두기로 한다.


묵었던 방사. 거의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1. 힘든 건 알고 있었지만 힘들었다. 일단 한동안 정말 긴장상태였는지 첫날 저녁수련 하자마자 몸이 쫙 풀리면서 여기저기가 쑤시기 시작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자마자 언덕 꼭대기 대법당에 예불 드리러 가서 예불 드리고 좌선 하고 오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그 상태로 오전수련 받고 하니...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역시 108배. 예전에는 별로 안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한 번 하고 나니 며칠을 다리가 땡겨서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선무도 자체가 별로 힘들지는 않다. 우선 호흡과 명상, 요가(?) 가 주로 되어 있고, 약간의 무술동작 기본기를 가르쳐 주시는데 초보들에게 어려운 동작을 요구하거나 하지 않는다. 네 그냥 제가 운동 부족인거죠)

운동 꾸준히 해야겠다... ....


2. 역시나 사람이 은근 많아서. 한 3일 정도는 방사를 다른 분과 같이 썼다.

첫 날 온 룸메이트는 나와 띠동갑으로 어린 여자분이었다. 유치원 교사를 하다가 안 맞아서 못해먹겠다고 그만두고 쉬러 왔다는데, 처음에는 힘들다고 하면서도 하루 더 있을까...하고 고민하셨다. 그러다 다음 날 아침, 

"언니 저 그냥 갈래요."

"아 그러시려고요? 그런데 왜..."

"고기분이 부족해서 안되겠어요."

(수긍)


3. 한 이틀 정도 흐렸다. 가뜩이나 피곤한데다 날도 흐리니 더 카페인이 땡겼다. 간혹 어떤 절의 경우는 다실을 열어두고 차를 맘대로 마실 수 있게 하는데 여기는 다실을 차담 시간 외에는 계속 잠궈둔다. 낮에는 거의 방에 있으면서 낮잠을 자거나 이것저것 간단한 볼 일(메일이나 은행 업무 등)을 처리하거나 책을 읽었는데, 방사 담당하시는 보살님이 들어오셨다가 책보다 졸고 있는 나를 발견. 

“피곤하신가봐요. 새벽에 일어나셔서 그러신가보네요.이따 잠깐 주무세요.”
“네 그러려고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니에요. 낮잠도 적당히 자고 있는데. 이건 날씨도 흐린데 카페인이 부족해서라고요! 카페인!!

(그리고는 결국 몰래 가방에 챙겨온 인스턴트커피를 타 마셨다)


4. 무도관은 앞면에 부처님을 모신 부분을 제외하면 벽 4면 전체가 윗부분 반은 유리로 되어 있고, 산 속에 있어서 문 쪽을 제외하면 모두 나무와 하늘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비오면 비오는 대로 운치 있고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환하고 예쁘다. 그런 데서 수련을 하고 있으려니 정말 로망 중 하나. 

게다가 무도관 앞 야외에 넓게 마룻바닥도 있어서, 날이 맑아진 다음에는, 아침 수련은 거의 반은 야외에서 했다. 햇살은 따사롭고,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고, 공기는 깨끗한 데에서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것은 다른 데서는 하기 힘든 굉장한 경험이었다. 

어느 날은 법사님께서 '이런 날은 광합성 좀 해야죠? 거기 매트들 들고 나가시고요...' 해서 '누워서 하는 명상'이라는 이름 하에 바깥에 요가매트 깔고 1시간 동안 잤다. (...) 사실 잠은 그리 잘 오지 않았다만, 산 속에서 날씨 좋은데 평화롭게 누워있으려니 정말.

호흡은 편안했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완벽했다. 아마도 잊기 어려운 시간일 것이다.

5. 108배로 뻗은 다리는 끝까지 안 낫더라. 그래서 그 이후로 108배는 삼배 + 절로 때우고 수련도 살살했는데도 다리가 우지끈. 이제서야 좀 괜찮다. 하아.


특히 내리막길이나 계단 내려올 때가 죽을 것 같은데;; 이튿날은 새벽예불 드리고 내려오다가 길에 주저앉을 뻔 했다. 와 진짜...

하지만 보통 새벽예불 드리고 내려올 때쯤 동이 트기 시작하는데, 그 때 하늘이며 붉게 변하는 나무들이며 경치가 너무 예뻐서 모든 게 용서되었다.(...)

6. 두 번째 룸메는 3일 있다가 갔다. 나와 나이가 동갑인 여자분이었는데, 몸이 약해서 몇 년간두 번 정도 수술받고 좀 살 만 하니까 교통사고 나서 반쯤 폐인이 되어 있다가 몸도 좀 낫고 해서 정신 좀 차리려고 오셨다고.

하지만 몸이 워낙 약하신데 여기는 템플스테이 중에서 체력 강도 최상을 요구하는 곳인데 어째서 여기...라고 했으나 그 분은 집에서 너무 안 멀고 사람 적을 것 같은 곳을 고르셨을 뿐이고...결국 예불도 못 가시고 뻗으시더라. 

계속 나를 잡고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하소연하시고 하는 것은 조금 적응이 안 되었지만(원체 내가 낯가림이 심한데다가 말을 잘 안 한다), 워낙 새로운 경험들으 하고 계시니까 신기한데 물어보거나 토해낼 사람은 없고 하니까..앞으로는 많은 좋은 일이 있으셨으면 좋겠다. 

7. 저녁 먹고 방에서 쉬면서 저녁 수련 갈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거의 이런 일이 없다.) 문을 열어보니 같이 템플스테이 하는 학생분.

"법사님이, 6시까지 종무소로 오시래요."

"왜요?"

"연등 만든대요."

"네? 갑자기 웬 연등..."

"몰라요.저도 들은 거라..이따 뵈어요-"

 

그래서 팔자에 없는 연등을 만들어 보았다. (실제 내가 만든 것들이다)

연등 만들기는 원래 프로그램에 없으나, 여기가 선무도 때문에 은근 방송 촬영이 들어오는 편인데(지난 번에 왔을 때도 촬영에 동원되었지...) 이번에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또 방송 촬영이 오는 바람에 이런 것도 했다. 물론 나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도망다녔으므로 상관없고, 덕분에 평소에 못하는 이런 것도 해 보고, 일석이조.

 

8.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사람의 생 역시도 자연의 일부라서, 계속 이어지고 반복되면서도 그 것 역시 구름 같은 것이며 바람 같은 것인지라, 한 번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어쩌다 생겨나서 조용히 사라지기도 하는 그런 것이다. 

지난 번에 왔을 때 이 곳에 대한 기억이 좋았던 이유는 사람들이 좋아서였다. 은근히 챙겨주시는 법사님도 좋았고, 인상 좋다고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보살님도, 그리고 그 때 왔을 때 막판에만 조금 친해진 외국인 여자분A도 좋았다. 그래서 사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조금은 있었다.

(참고: 이 절에는 선무도 수련하러 장기로 머무는(특히 외국인) 사람들이 몇 분 계신다. 친해졌던 분은 1년 넘게 있으실 거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때 세지 않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고, 저 법사님은 인사를 드리자 '혹시 전에 들르셨던 분 아닌가요?' 정도로 낯익은 정도로만 기억하셨다. 보살님은 얼굴 보니까 생각이 난다고 했고, A는 계시지 않았다.

각자의 기억과 마음은 저마다 다를 수 밖에 없고, 연이란 것도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그냥 스쳐가는 순간을 소중히 하고 거기에 감사할 뿐이다.

단체 손님들이 들이닥친다는 이야기에 일정보다 일찍 짐을 꾸리고, 마지막날 새벽 예불을 들어갔는데 A를 만났다. 이 분은 나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예불과 참선이 끝나고 A가 와서 말을 걸었다. 다시 온거냐고, 반갑다고, 언제 왔냐고, 얼마나 있냐고, 자기는 비자 연장 때문에 일본에 간 김에 1주일 정도 여행하고 왔다고.

난 지난 주에 왔고, 예정이 바뀌어서 오늘 가게 되었다고 했다. 


반가웠고 아쉽지만, 아마도 다시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사람들도, 이번에 새로 친해진 분들도, 다른 사람들도. 그냥 좋았던 때를 기억하고 각자의 시간을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이란 건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9. 차담

이 곳의 템플스테이는 아무래도 수련 중심으로 꾸며져 있어서, 법사님이 아닌 스님을 뵐 시간은 예불 시간과 차담 시간밖에 없다. 특히 스님과 담화를 나눌 시간은 차담시간 뿐이다. 이전에 왔을 때는 출장;가셔서 안 계시던 큰스님께서 계셔서, 큰스님을 뵐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여기저기 템플스테이를 다니고 절은 참 좋아하고 최대한의 예의도 갖추려고 노력하지만, 많은 스님들의 이야기에(특히 언론에 많이 나오시는 스님들) 공감을 하지는 못하는 편이다. 뭐랄까, 속세를 떠나서 수련하시는 분들과 실제 생활에서의 어쩔 수 없는 격차 같은 것이랄까. 물론 깨우침을 얻으면 다르게 보이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아마도 평생 깨우침은 얻지 못하고 이대로 살 것이다보니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9-1. 그래도 불교의 기본 사상은 좋아한다. 

'행하는 것'. '백견이 불여일행'. 

항상 생각만 많이 하거나 말만 많이 하는 것(물론 이 것은 약간 애매하다. 말 하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말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을 말로 하는 것은 역시 행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에 대해 껄끄러움이 있고, 어쨌든 무언가를 '직접 해봐야 한다' 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던지라, 이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었다.


9-2. 나는 거의 질문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별로 질문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지(...) 스님도 나에게는 거의 질문을 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스님은 분명 카르마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아득하게 나의 생각은 제멋대로 퀀텀 점프를 하다 못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에 대한 생각에까지 미쳤다. 요즘 정말 아무런 생각은 없고 무작정 회사는 관둔(...) 나의 최대의 화두.

그러다 머릿속이 맑아졌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결국 일어나야 할 일들만 일어났을 뿐이다. 그냥 나는 내가 해 오던 것을 천천히 꾸준히 하면 된다. 늘 그랬듯이.'


9-3. 마지막날은 큰스님께서 바쁘신데다 통역(외국인이 많아서 통역이 필요하다; )해주시는 보살님도 안 들어오시고 대신 법사님이 들어오셨다. 나를 잘 기억도 못 하시고 좀 말 많으신(위에서 언급한 분과 다름) 법사님. 그리고 졸지에 내가 어설프게 통역을 해주게 되었는데(반쯤은 그냥 안 했다(...)). 그러다보니 졸지에 법사님 말씀을 한 번 더 곱씹게 된 효과도 있다.

그리고 솔직히 스님의 대부분의 말씀보다 법사님 말씀이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다.

불교에서는 선을 행하라고 하고 이것저것 관련된 이야기는 많이 들으셨겠지만…모두가 수련을 하고 스님이 되는 세상은 이상이죠. 이상과 현실은 다른 거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으니까… 현실에서의 불교란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을 행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유가 없다면 그냥 한 번 더 웃는 것으로라도 하면, 그게 선이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도를 행하는 거죠.
설탕물에 설탕이 보이지 않아도 설탕이 녹아있고, 그 전체 물에서도 단 맛이 나잖아요. 뭐 명상을 해서 자신을 찾고 깨달음을 얻고 한다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그건 그런 거에요. 내가 우주에 녹아있고, 우주 안에 작은 내가 있다는 걸 깨닫는 거, 자신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 

10. 진정한 자신을 찾는다거나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순간순간의 내가 거짓된 나라고 단 한 순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실수하는 나도, 술 마시고 정신 반쯤 나간 나도, 뭔가 매우 잘 한 나도, 어설픈 나도 모두 다 나 자신이고, 이런 것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이루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지 진정한 나는 어디 다른 데에 숨어있어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한 순간도 해 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이렇게 잠시 일상을 떠나 본 것도, 단순히 머리를 식히고, 지금의 local minimum에 빠진 '나'라는 유전체 구성에 조금 새로운 돌연변이체를 넣어서 다음의 나를 만드는 데에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하여(왜 여기서 GA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내가 다 그렇지 뭐(...)) 좀 더 나은 해를 찾기 위함일 뿐이지 어디 묻혀있던 진정한 자신을 찾거나 하는 오그리토그리한 수식어를 갖다붙일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부담을 최소화하며 푹 쉬다 왔다. 

생각보다 조금 일찍 오게 된 것은 영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11. 그리고 일단, 지금도 여유롭게 쉬고 있다. 생각과는 좀 다른 쉼이기는 하지만.

즐겁게 지내고 있고, 좀 더 활기차고 신나게 될 것이라고 그냥 좋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모든 것은 아름다웠고, 아무 것도 상처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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