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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밀린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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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토끼 Apr 05. 2018

뉴욕으로 가는 시간

밀린 일기 #1


  고달픈 삶을 벗어난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확신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떠난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기보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 확신도 없지만 더 이상 지금 삶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떠나는 이의 발걸음은 가볍다.

  은희경, <새의 선물>


  시차적응에 완벽히 실패했다. 오전 11시 비행기를 탔으니 비행기를 타자마자 잠이 안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차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힘들었다) 10시간 이상의 비행이나, 하루가 넘어가는 거리의 장거리 비행이라면 아무래도 오후 혹은 밤 비행기를 타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결국 나는 뜬눈으로 12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1시간정도 잠이 들기도 하긴했지만, 길어야 1시간이었으니 졸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안대는 필수다.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좌석 스크린의 불빛 또한 잠을 아주 매우 방해한다.



가는 날 미세먼지 쩔었던 한국


떠나는 이의 가벼운 발걸음

  

  약 12시간을 깨어있었다는 고통 빼고는 비행에 불편한 점은 없었다. 백만년만에 타는 비행기였는데, 요새는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고 좌석을 선택할 수 있어서 2층 창가쪽 자리를 택했다. AA나 델타같은 숨막히는 좌석도 아니었고(그래도 엉덩이가 조금 많이 배겼다) 슬리퍼, 담요, 베개 등 제공품들도 요긴했다.


  비행동안 2번의 기내식, 1번의 간식이 나왔다. 한식과 양식을 고를 수 있게 하는데, 한식은 쌈밥과 해물덮밥이었고 양식은 치킨스테이크와 치킨파스타였나 그랬다. 이왕이면 한식을 두번 먹을 걸 그랬다. 쌈밥이 땡기지 않아서 치킨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소스가 크림이라 한 서너 번 먹고는 후회했다. 미국으로 가면서 이런건 줄기차게 먹을텐데, 생각이 짧았다. 해물덮밥은 맛이 없었다.




  간식타임에는 치킨브리또랑 콜라나 커피, 차, 와인, 맥주 등 마실 것을 줬다. 기내에서는 더 빨리 취하기 때문에 (이유는 이과가 아니라 모른다) 술은 자제하는게 좋을 것 같다. 앞좌석 중년부부가 와인을 마셨다.(중년이란 표현도 그들에게 붙이기엔 굉장히 점잖은 표현이다) 그들이 와인을 시킨 것 까지는 별 생각없었는데 그 후에 벌어진 일들이 짜증났다. 아저씨가 술에 취해서 주정을 부리는 모습이 너무나도 불쾌했다. 승무원분이 웃으면서 도와주는데 진짜 극한직업이겠다 싶었다. 왜 창피함은 내몫인지. 가관인건 부인이 그걸 자제시키지않는다는 것이었다. 진짜 꼴불견이었다. 아아 지금 떠올려봐도 극혐이었던 사람들.

  좌석 스크린에는 별별게 다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라 그런지, 최신영화들도 많고 최신 드라마 다큐멘터리들도 있었다. 최신이라고 해봤자 그래도 1-2달은 된 것들이지만. 내 대각선 앞으로 2번째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는 도봉순 드라마를 거의 정주행하다시피 하더라. 나는 마침 내가 보고싶었던 ‘블레이드 러너’가 목록에 있어서 반가워서 보려고 했다. 그러나 기내에서 심오한 영화는 그닥 집중이 되지않는다.  다키스트 아워도 있었던 것 같다. 보고싶었던 영화들을 접어두고, 보기 편한 영화를 켰다.



네 번째 보는 햄식이


  카드게임도 해보고 영화도 보고 다큐멘터리도보고 이것저것 눌러보고 12시간을 그렇게 버텨서 굉장히 피곤한 상태로 뉴욕 JFK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11시쯤 출발해서 같은날 정오에 도착했다.


  종종 생각하는 거지만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해 허무함이 느껴질때가 있다. 시간은 흘러가기만 할 뿐이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지금이 12시, 1시, 1분, 1초를 정해놓은 것 뿐인데, 그 시간을 지키려고 아등바등 무리하는 것을 생각할 때면 허무해진다.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흘러가서 돌아오지 않는 속성은 진리니까 아쉬운건 어쩔 수 없으려나.



맑은 하늘의 뉴욕


  입국 줄은 매우 길었다. 까다롭다기보다는 오래걸렸다. 도착해서 30분 이상은 기다렸던 것 같다. 사람도 많고 줄도 많아서인지 공항 보안직원은 매우 예민해보였다. 수많은 외국 사람들이 말도 잘 안듣고 그래서인가, 그는 친절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나는 따라가는 줄대로 착실히 따라가서, 여행왔냐, 어디가냐, 며칠있냐 등 한 3가지 질문정도를 받고 통과했다. 엄지, 검지를 찍고 사진도 한번 찍었나 그리고는 짐을 찾으러갔다. 짐이 좀 많아서, 캐리어를 담는 카트 하나 가져오려고 하는데 카트도 돈내고 써야 했다. 자세히 못봐서 기억이 잘 안나지만 한 $4정도 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그냥 널렸었던 거라서 무심코 하나를 집었는데 한 여성분이 "그거 제꺼에요."라는 소리에 죄송하다고했다. 그랬더니 어떤 다른 남자분이 이거쓰라고 줬다. 자기는 필요없다면서. 미국 땅에 와서 받은 첫 호의였다.



사진이 무지 한가하게 나와서 당황;_;


  숙소는 뉴저지에 있었다. 사정상 뉴저지에 짐을 놓고 집을 구하러 다녀야했는데, 뉴욕에서 뉴저지까지는 무료셔틀버스들이 있다. 한국에서 사전에 예약해놓고 갈 수 있다. 무료라고 하지만 팁을 $5정도 받았고 한남체인과 Tenafly까지 간다.


  날씨가 금세 흐려졌다. 가는동안 허드슨강도 지나고 양키스타디움도 지났다. 허드슨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널때는 한강을 건너는 느낌이었다. 아마 실감이 잘 안나서 그랬던것 같다. 한남체인은 이름에서 느껴지듯 한인마을이 있는 곳이었다. 나는 한남체인에서 또 Hasbrouck heights까지 가야했다. 짐이 워낙 많아서 (20키로짜리 캐리어 4개...ㄷㄷ) 우버를 부르기는 미안했고, 한인콜택시를 이용했다. 처음엔 한인콜택시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비싸긴했지만 짐도 들어주시고 도와주시니까. 그치만 한 5분?정도 거리에 $30가 든다.



공항에서 한남체인까지 셔틀버스


  Hasbrouck heights까지 40kg씩을 옮기며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숙소에 도착하고나서는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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