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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튼튼한 토마토 Aug 02. 2018

빈둥빈둥

"요즘 집에서 놀아?"

"응. 펑펑 놀고 있어"

"부럽다"


퇴사를 하고 내가 가장 많이 듣게 된 말은 "부럽다"였다. 느긋하게 일어나서 내킬 때 운동을 하고 에어컨이 없는 방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카페로 피신하는 이 게으르고 빈둥거리는 하루를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부럽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의레 뭐가 부럽냐는 대답을 하며 가볍게 웃는다. 마치 정해진 대답처럼 늘 한결같이 그렇게 말했다. 오랜만에 수박을 먹으면서 여름방학을 흥청망청 보내는 학생이 된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혹은 자주 빈둥거리는 나의 일상에 불안함이 찾아온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나 너무 빈둥거리나. 뭐 그런 당연하고 불편한 감정들이 평온한 일상을 흔들 때 조금 우울하다. 퇴사를 후회는 하지 않지만 퇴사를 한 뒤 삶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을 늘 직면하게 된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시간을 잘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와 같은 공교롭게도 피하고 싶은 생각들을 자주 하게 된다. 옛날 같으면 바쁘다는 핑계로 직면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그런 질문들을 피할 수 없어 조금 괴롭다. 


"역시 인생은 너처럼 살아야 해. 멋있다"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은 내가 멋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전혀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한참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나란 사람은 회사를 다니는 삶을 버티다 버티다 견디지 못한 것뿐인데 멋있다는 말을 듣다니 조금 쑥스럽고 민망해 애꿎은 빨대만 만지작 거린다. 삶에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새로운 선택지가 늘 옳지는 않다. 그렇다고 틀린 것도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내 주변에서 처음으로 퇴사한 사람은 첫 회사의 인턴 동기였다. 회사 일은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했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좋은 상사를 만나지 못해 느끼는 고통이 가장 컸다. 정규직 전환이 어려울 수 있다고 일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으며 늘 가슴 조리던 그때 동기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입사 후 세 달만의 일이었다. 너무나 홀가분하게 회사를 떠나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았고 그 용기가 부러웠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 세 달 만에 그만둘 수 있냐. 원래 회사 생활이 그렇다. 조금 더 다니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는 주변의 설득이 있었지만 동기는 가차 없이 회사를 떠났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동기가 퇴사한 후 아주 가끔 소식이 들려왔는데 대부분 좋지 못한 이야기였다. 아직까지 취직을 못했다는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아주 가끔 올라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취직이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대책 없이 퇴사를 하면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쉽게 꺼냈다. 그 이야기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위로를 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생활들이 서글프고 안타까웠다.


몇 년 후 그 동기가 공무원 시험을 합격했다는 소식을 선배를 통해 들었다. 


"나는 그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는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했어. 조금만 버티면 적응할 텐데 뭐하러 퇴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 근데 회사 다닐 때 보다 편안한 그 친구의 얼굴을 보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 일수도 있겠더라. 회사 다니는 게 꼭 답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회사 그만둔 사람들이 잘됐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퇴사를 할 때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모든 퇴사한 사람들이 만족스러운 삶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삶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하며 산다면 퇴사 후 삶이 그렇게 무섭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여러 가지 삶 중 조금 빈둥거리는 것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렇게 좀 빈둥거리면 어때라는 뻔뻔한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조금 더 빈둥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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