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극곰의 세계여행, 에콰도르 1편 ]
#01 첫날밤, 사라진 배낭과 공항노숙
여행의 시작인 에콰도르에서는
처음이라 헤매고 돌아가기 일쑤였지만
느리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빨리 서둘러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헤매고 돌아가는 과정조차 나에겐 전부 여행이었다.
사표를 던진 그 순간부터
쫓기듯 달려나가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내 여행은 내 속도에 맞게. 그렇게 가고 싶다.
에콰도르 밤 12시 정각.
나는 지구 반대편에 서 있었다. 꼬박 하루가 걸리는 시간이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의 분신과도 같은 95리터짜리 대왕배낭을 찾기 위해 수화물이 나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컨베이어벨트에서 올라오는 커다란 짐들은 나오기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객이 주인 없이 떠돌던 캐리어를 집어가자 공항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돌던 컨베이어벨트까지 완전 멈추고 나니,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처럼 고요한 공간에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서성거리며 다른 곳들을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대왕배낭과 비슷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수화물 센터에 찾아가 짐을 조회해보았더니 정말로 배낭은 남미에 없었다. 무슨 일일시트콤처럼 그 항공편에서 유일하게 내 배낭만 오지 않았던 것이다. 맙소사! 이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시작부터 배낭분실이라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배낭은 경유지였던 댈러스 공항에 무사히 홀로 있다고 했다.
서류를 작성하고 나니 벌써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며칠 뒤에 짐을 숙소로 배달해주겠다는 답변과 함께 증명서 한 장을 들고서는 터덜터덜 공항을 빠져나왔다. 남미니까 당연히 더울 것이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쌀쌀한 밤공기가 가슴골을 파고들었다. 공항 밖은 한차례 빠져나간 사람들로 한산했고 그 흔한 택시조차 잘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공항에 서서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출발할 때 운이 좋더라니...
애초에 숙소를 잡고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정해진 행선지는 없었다. 세계여행 첫날부터 숙소도 안 잡고 온 것이 조금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 크게 구애받는 타입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더 편했다.
막상 이렇게 짐도 없고 시간도 늦어버리니 정해진 행선지가 없다는 것이 더 좋았다. 힘들게 어딘가로 숙소를 찾아갈 필요도 없고, 무거운 짐을 메고 밤중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어딜 가도 가볍고 자유로웠다.
남미에 커다란 배낭도 없이
달랑 작은 손가방 하나라니,
얼마나 자유로운 방랑객인가.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누가 뭐래도 여긴 남미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