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뜨거웠던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차가운 모래만이 가득했다. 마치 뜨거운 사랑이 식어버린 여인의 마음처럼 냉소적으로. 하지만 시원한 모래알들이 체중에 눌려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감촉은 나쁘지 않았다. 작은 모래알갱이를 품은 바람도 불쾌하기보다는 살랑살랑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모래들은 몸에 달라붙지도 않고 두 팔과 양 볼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도시의 조명 아래서 희미하기만 했던 모래언덕이 거대하고 또렷하게 나타났다. 도시의 들썩이던 음악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이제는 바람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많이 올라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뒤를 돌아보니 겨우 절반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모래산을 오를수록 점점 경사가 가팔라졌고 모래는 더 고와졌다. 끝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발을 굴렀지만 어느 정도 올라가자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았다. 부드러운 모래는 발가락에 힘을 줄수록 힘없이 흘러내리기만 했다. 앞쪽 허벅지 근육이 당겨올 만큼 열심히 움직여도 더 미끄러지기만 할 뿐. 눈앞에 고지가 보였지만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제 이만하면 됐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풀썩 앉아버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등에는 서늘할 정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대충 닦고는 그대로 모든 것을 모래에게 내려놓았다.
모래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었다.
나는 그런 모래가 좋아 등에 땀이 식자 자연스레 어깨동무하듯 모래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자 무수한 별들이 내려와 서서히 눈에 박히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한 편의 파노라마 영화처럼, 아주 생생하고 또렷하게.
‘시내에서는 몰랐는데 사막의 밤은 별이 정말 많구나.’
모래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온 세상이 거꾸로 보인다. 머리맡에는 모래구름이 피어나고 발아래엔 은하수가 흐르기 시작한다. 우주 어딘가에는 별을 밟고 걸으면 모래가 눈처럼 내리는 행성이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머리카락 사이로는 바람을 타고 간지러운 ‘모래눈’이 흘러내렸다. 온몸이 모래에 젖어드는 비교적 따듯한 겨울이었다.
여행을 하면 세상 모든 것과 친구가 된다더니.
길가의 강아지도, 커다란 나무도, 그리고 시원한 바람도.
이제는 사막의 모래와도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퇴사를 하고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온 이유를 이곳, 와카치나에서 처음 찾은 것 같다. 그것은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랐던 것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았던 어두컴컴하고 쓸쓸한 사막을 무모한 용기 하나로 걸어 올라온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