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니, 그래서 안다는 겨, 모른다는 겨?
출연했던 영상의 조회수가 올라가면서 각종 커뮤니티와 온라인 카페, SNS 등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주변인들에게 '보았다'라는 연락을 종종 받게 되었다.
사랑스럽게 보아주고 입양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감사한 댓글들 가운데 '결혼 생각이 없었는데 가정을 갖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아직 어리지만 나중에 꼭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내용들의 댓글은 큰 보람이 되었다.
'입양'보다 '가정'에 대한 건강한 가치관이 결국 친권이 포기되어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궁극적, 잠재적으로 줄일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입양가정이 많아지는 것보다 입양을 가야만 하는 상황이 줄어드는 것이 훨씬 좋다고 믿는다.)
물론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어여쁜 가족사진 한 장을 위해서도 부모들은 참을 인 일곱 개를 건 도박을 해야 하는 것.
그 영상 속 첫째 동하와 나의 모습은 그간 우리가 지지고 볶으며 쌓아온 시간의 일부인 셈이다.
그리고 전문가의 멋진 기획은 낯설고 어색한 카메라 앞에서 그 시간이 드러나도록 우리를 톡-하고 건드려주었다.
입양,
아이를 둔 생모와 양모의 대립구도로 표현하는 사설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솔로몬 앞에서 아이를 놓고 다툰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생후 6개월이 되도록 가정을 찾지 못해 마지막 기회였던 '남아 입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당시 예비양부모 교육을 받던 나와 A4용지에 인쇄된 모습으로 조우한 동하를 두고 누가 다투었다는 말인 걸까?
처음에 손녀를 원하셨던 우리 친정 엄마는 "동하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해외로 가게 된대"라는 나의 말에 동하를 만나보기로 마음을 바꾸셨다.
(물론 만나자마자 손주사랑에 푹 빠진 외할머니가 되셨지만)
그래서 말인데 나는 새로이 가정을 찾아야 하는 입양 대기 아동이 없는 세상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들이 낳아준 부모 아래서 자신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부모의 헌신으로 올바르게 성장하고 그 자신도 미래의 자녀에게 그렇게 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세상.
만약 하나님께서 그런 세상으로 갈 수 있게 시간을 되돌려주겠다 하신다면 난 기꺼이 우리 아이들과 손을 잡고 그 과거의 문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게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임을 모르지 않으니.
그렇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기에 주어진 기회를 통해 전 세계적 변화에 희석되어가는 가정의 의미, Home sweet home을 기억하게 해 줄 콘텐츠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러운 것을 넘어 영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물만 들이킬 순 없지.
댓글들 중 보람을 떠나서 가장 눈과 가슴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코 악플 또는 아이를 걱정하는 듯 에둘러 부모인 나의 출연 결정을 비판하는 것들이었다.
몇 개를 함께 볼까?
이 외에도 머릿속을 스쳐가는 각종 댓글들이 기억나지만 우선 찾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았다.
어차피 노골적이던, 돌아 돌아오는 걱정 어린 비난이던 내용은 다 비슷하다.
고마운 건, 하나같이 우리 아이를 너무나 생각하고 걱정해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까?
우리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입양'이라는 그 개념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오늘 아침, 아이에게 물었다.
"동하야, 우리 작년에 함께 사진 보며 찍었던 유튜브 영상 있잖아. 그거 찍을 때 엄마가 이걸 동하와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설명해줬는데 뭐였는지 기억나?"
"아니, 난 그때 엄마가 사진 고르느라 오래 걸린 게 너무 지겨워서 집에 가고 싶었던 생각밖에 안나."
"동하 동주처럼 엄마 아빠를 만나서 즐겁게 사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 친구들이 빨리 부모님 만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고 했었는데......"
"아, 맞다. 기억나."
"그래? 그럼 그 영상에 출연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봤는데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
"좋아. 나 좋아해 주고 좋은 말도 써주고...... (갑자기) 동주야! 우리 아직 부모님 못 만난 친구들 위해서 하나님한테 기도해야겠어. 우리처럼 엄마 아빠 만나서 재밌게 지내게 해 달라고"
아빠 엄마는 물론이고 만날 때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영혼을 충만하게 해 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할머니(그리고 지금은 천국에 가신 증조할머니와 이모부 할아버지까지)를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서 매일매일 조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흥분하며 뛰노는 내 아들들에게 입양은 '가족’이라는 흙으로 매일매일 덮어주는 작은 구덩이일 뿐이다.
최근 우연히 만나거나 대화를 주고받은 선배 가정들의 성장한 입양인들은 부모님들과 함께 어려서부터 동하와 같은 활동을 하고 자랐기에 더욱 본인 스스로 입양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방향으로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20대의 젊음 들이었다.
물론 입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애도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입양인들의 숙명일진대 입양된 아이들이 일찍부터 철든다거나, 부모의 눈치를 보는 것 같다는 시선, 어딘가 슬퍼 보인다는 착각은 그야말로 철 모르는 미디어가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입양에 대한 막장 드라마를 그대로 수렴한 대중의 신파적 상상일 뿐이다.
동하가 슬퍼 보인다, 엄마 눈치를 보는 것 같다, 일찍 철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라는 말은 억울함마저 들게 하였다.
동하가 입양 사실을 의식해서 철이라도 들었다면 나와 매일같이 "빨리 (밥 먹게 / 씻게 / 자게)와~", " 잠깐만~ 1분만! 5분만!", "어서 오라고!", "뿌엥! 엄마 미워!"를 일과처럼 반복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난 그저 '사랑이 줄 수 있는, 가정만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응당 내 자녀에게 하는 본능이 가까운 일이 왜 입양가정에겐 인격과 도덕성의 문제로 귀결되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이해할 뿐이다.
'애가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아서 주눅이 든 것 같다.'는 말과
'애가 지금은 부모가 시키니까 나왔지 뭘 알겠느냐, 커서 상처 받을 거다'라는 말.
나 한마디만 해도 될까?
"그래서 우리 애가 뭘 안다는 겨, 모른다는 겨?"
그 물음에 대한 대중의 답을 듣고 싶어 계획에 없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입양 이야기를 거의 뺀 일상을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유튜브의 주제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입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어 브런치 작가지원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자, 다음부턴 진짜 재밌는 얘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