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람은 왜 희망에 중독되었나? (도박·로또·코인)
어디선가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을 거야. "나만 돈을 못 버는 것 같아." 이 문장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2020년대 한국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심리 상태를 대변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던 그 시기에, 주식 시장으로의 대탈주가 시작되었다. 2019년 619만 명에 불과하던 개인투자자는 2021년 연말 1,384만 명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한국의 가구 대부분이 투자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경제 현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희망을 갈구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그 희망이 어떻게 중독으로 변모해가는지에 관한 비극적 초상화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열풍의 주역이 기성세대가 아니라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를 어린 시절에 겪었고,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마련해야 했으며, 졸업 후에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세대다. 이들 앞에 펼쳐진 미래는 밝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의 파도 속에서 고용 불안정성은 일상이 되었고, 자산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 시장은 마치 구원자처럼 나타났다. "평생 월급쟁이로는 불가능하지만, 투자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희망으로 변신했다. 2020년 개인투자자의 거래 회전율은 연 1,600%에 달했으며, 3월 이후 신규 진입 투자자 중 60%는 손실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으로의 진입은 계속되었다. 손실을 입고도 계속 돌아오는 사람들. 이것은 도박이다. 그런데 이 도박이 특이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투자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뇌의 신경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현상은 매우 설명가능하다. 도박이나 투기적 투자에서의 불규칙한 보상 시스템은 우리 뇌를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자극한다. 특히 도박의 특성인 불확실성이 오히려 뇌를 더 강력하게 활성화시킨다. 주식이 오를까봐 밤잠을 설치는 당신의 뇌에서는 도파민이 흘러넘치고 있다. "혹시 이번에 대박이 날까?"라는 기대감 자체가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실제로 수익이 나면 엄청난 양의 도파민이 쏟아진다. 그리고 거의 이길 뻔했을 때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아깝다, 다음엔 꼭 이길 거야!"라는 생각이 계속 참여를 유도한다. 이것은 더 이상 의지력 문제가 아니다. 뇌의 신경생물학적 구조 자체가 당신을 중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뇌의 메커니즘을 더욱 교묘하게 활용하는 것이 바로 FOMO(Fear of Missing Out)라는 심리 상태다. "희망을 놓칠까 봐 느끼는 두려움"이라는 뜻인 이 단어는 2020년대의 정서를 정확히 포착하고 있다. 2024년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의 조사에 따르면, 암호화폐 보유자의 81%가 감정적인 결정을 내렸고, 84%가 FOMO가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나도 코인으로 대박 났어"라는 글들이 쏟아진다. 그 글들이 사실인지 과장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것을 본다는 것이고, 당신이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상대적 박탈감이 생긴다. "나만 돈을 못 벌고 있나?"라는 질문이 당신의 뇌를 점령한다. 이제 당신은 이성적 판단 따위는 집어치우고 충동적으로 투자에 뛰어든다. 자산의 가치나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말이다.
한국 시장에서 관찰되는 현상은 이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2020년 한국 주식시장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나타난 네 가지 행태적 편의는 흥미롭다. 첫째, 과잉확신. 자신의 투자 역량을 과대평가한다. 둘째, 처분효과. 손실 회피 심리로 인한 비합리적 거래다. 셋째, 복권형 주식 선호. 높은 위험-높은 수익 종목에 집중한다. 넷째, 군집거래. 다른 투자자들의 행동을 따라한다. 이 모든 것들이 한국 투자자들의 뇌에서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개별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심리에 휩싸여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러한 투기적 투자 행태가 더 이상 성인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청소년 온라인 카지노 불법도박 이용이 14배 폭증했다. 14~16세 이용자는 2020년 165명(12.8%)에서 2024년 550명(20.6%)으로 급증했다. 어린 세대가 도박에 중독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뇌는 아직 발달 과정 중인데, 도파민 보상 회로가 자극당하고 있다. 불법 온라인 카지노는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접근 가능하며, 빠른 결과 확인으로 인한 높은 중독성을 가진다. 부모 세대는 주식으로, 자녀 세대는 불법 도박으로 희망 중독에 빠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의 근저에는 구조적 절망이 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으로 인한 노동시장 유연화는 청년 세대에게 고용 불안을 초래했다. 안정적인 임금 노동과 사회보장이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투기가 유일한 부의 추구 수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철학자 마크 피셔가 말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이 정확히 이 상황을 설명한다.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상태 말이다. 당신은 투기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체제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다른 방식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면? 그럴 때 투기는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라 필연이 되어버린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심리적 토양에 특히 취약하다. 높은 교육 수준과 빠른 정보 전파 속도는 FOMO를 더욱 심화시킨다. 소셜 미디어에서 성공 사례(혹은 과장된 성공 사례)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나만 뒤처질 수 없다"는 강박 관념이 형성된다. 한국인이 "물질적 풍요"를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국가라는 세계 가치관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부는 곧 존엄이고, 존엄은 생존 자체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포기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이 희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가 추구하는 희망은 무엇인가? 투기로 대박 나는 것? 한 번의 행운으로 인생을 뒤바꾸는 것? 이것이 정말 희망일까, 아니면 희망에 대한 환상일까? 희망의 진정한 의미는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도 미래가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하지만 투기의 희망은 다르다. 그것은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에 모든 것을 거는 방식이다. "지금은 견뎌내야 한다. 대신 언젠가 부자가 될 거야"라는 심리. 이것이 우리를 지쳐가게 만든다.
흥미로운 것은 초반에 큰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들도 계속 시장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다. 이것은 다른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투기의 희망 외에 다른 옵션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손실은 참기 어렵지만 시장을 떠나는 것은 더욱 참기 어렵다.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돌아온다. 마치 중독자가 계속 약물을 찾듯이.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개인의 재정 관리나 의지력 강화 같은 차원의 해결책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피셔가 제시하는 방향은 상상력의 회복과 집단적 주체성의 형성이다. 다른 사회적 대안을 상상하는 것. 투기적 성공이 아닌 안정적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 고용 불안정성을 해소하고, 공정한 임금을 보장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연대하는 것.
희망 중독은 비극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희망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이 아니라 환상에 중독된 상태에서, 우리는 현재를 살지 못한다. 항상 미래의 대박을 꿈꾸면서. 항상 남과 비교하면서. 항상 불안해하면서. 이것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대 전체의 문제다. 2020년대의 새로운 도박판은 주식 시장도, 암호화폐도, 불법 온라인 카지노도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근본적인 절망의 표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인식한다면, 변화는 가능하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아마도 자신의 희망을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투기적 성공이 아닌, 더 소박하지만 더 확실한 희망을 찾는 것. 남과의 경쟁이 아닌, 함께하는 삶을 상상하는 것. 그리고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모든 사람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중독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안에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희망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린다면...
<이러니 사람이지> Being Human: The Things We Can’t Escape
1장 사람은 왜 희망에 중독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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