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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그반응의아쉬움.

by coldsky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너무 많으니 글이 꼬인다. 짧게 짧게 간다.


하나

여자들이 일상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었다는 말... 나는 이해한다. 왜? 내가 당했으니까....

난 한 때 장발이었다. 키 173, 마른 몸매, 긴 생머리... 뒤태만 보고 여자인 줄 알고 대쉬한 남자들이 있었다.(그중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ㅡ.,ㅡ;)

그리고 어깨빵하는 남자도 있었고, 뒤에서 갑자기 내 어깨를 잡는 남자도 있었다. 취객이 시비를 거는 건 당연.

하지만 그들은 내가 남자라는 걸 알자마자 그 자리에서 사과를 했다.

당시에는 그게 여성을 향한 폭력이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여겼을 뿐...

'만약 내가 그들이 상상했던 여자였다면... 난 과연 그처럼 빠르게 사과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고서야 난 그들의 행동이 여성을 향한 폭력이란 걸 인지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것이 여성 혐오로 기인한 폭력이었냐는 것이다. 아니다. 그냥 약자에 대한 폭력이다.

일반 여성과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고 다니는 남자... 그 마초들이 보기에 뭐가 더 혐오스러웠을까? 아마도 후자였을거다. 하지만 그들은 그 혐오스러운 새끼 앞에서 쉽게 사과를 했다.(취객조차도 사과를 했다)

왜? 자기와 동등한 힘을 가진 생물로부터 어떤 위해를 당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는걸 원하지 않으니까....

강남역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왜 남자는 다 그냥 보내고 여자를 골랐겠냐? 여자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어느 추운 겨울날, 여자 친구와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탈 버스가 먼저 왔다. 여자 친구가 탈 버스는 2분 후에 오고, 이 버스를 보내면 다음 버스는 15분 후에 온다. 잠시 고민을 하던 난, "버스 왔다 나갈게~"라고 말하며 버스를 몸을 실었다.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에게 '비매너'의 딱지를 붙이기 전에 생각해보기 바란다. 저 에피소드에서 '여자친구'를 '남사친'으로 읽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야기란 걸...

만일 나에게 비매너 딱지를 붙인다면 그건 스스로를 '주체화'하지 못하고 '객체화'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성들 중 열에 아홉은 '후자'일 것이다.

물론 '폭력적인 사회에서 좋아하는 사람의 안전이 걱정도 되지 않냐?'라는 '현실성'을 언급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그 '현실성'이다.

'현 사회에 어떤 현상이 있다'는걸 여성도 남성도 알고 있지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현실을 무시한 관념적인 단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악의를 쌓아간다. 그리고 그 악의는 콘크리트가 되어 둘 사이에 놓인 높은 담이 된다.

분명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폭력이 있다. 이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남성들은 그 현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들 역시 그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빈도를 본다면, 남성들이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번 강남역 살인 사건은 분명 여성을 노린 사건이다. 이 역시 사실이다. 근데 여성 혐오범죄는 아니다. 그 사람의 인간관계를 조사해 보면 남성과의 관계도 그리 좋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는 남성이 자신을 무시했다며 남성을 찌르지 않았다. 왜? 그는 동성중에서도 약자에 속하니까... 그래서 자신보다 약한 여성을 타깃으로 삼은 거다. 만일 그 여성이 단단한 근육과 강한 체력을 가진 모습으로 등장했다면, 그래서 자기가 공격했을 때 한방에 제압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래도 그가 그 여성을 찔렀을까? 아닐걸? 그는 더 약한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을 거다. 그 앞에 여섯을 그냥 보낸 것처럼.

현실은 그런 거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그 폭력에 노출된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약자이기 때문이다.(사회적 약자라 서가 아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내가 사귄 여자들은 대부분 나보다 요리를 못했다. 특히 칼질이 서툴렀는데, 옆에서 그 칼질을 보고 있노라면 불안해서 내가 요리를 하겠다고 나선다. (뭐 고집부리다가 결국 손을 베인 친구도 있었지만.... 고집부리다 베어서 화도 못 내더라;)

그리고 요리를 하고 나면 쌓이는 설거지 거리도 못 봐준다. 난 요리를 하면서 짬짬이 설거지를 하기 때문에, 요리가 끝나면 설거지 거리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친구가 요리를 하면 요리와 함께 싱크대 가득 설거지 거리가 나온다.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 거리를 보고 있노라면 '저 설거지는 내 몫이겠지?'라는 생각에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근심과 걱정으로 체하기 일보 직전까지 간다.

그래서... 요리는 대부분 내가 담당했다.

대신 운전은 그녀가 했다. 난 운전도 서툴고... 결정적으로 길치라서;;;; 어딘가를 갈 때면 운전은 그녀의 몫이었다. 어쩌다 내가 운전을 할 때면 그녀는 칼질하는 손을 바라보는 나처럼 답답해했다. 강변북로에서 엉뚱한 곳으로 빠졌을 때 들렸던 그 깊은 한숨을 난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 부심이 넘치는 건 아니고(그 정도로 잘하진 못한다;) 운전을 못한다고 쪽팔려하지도 않는다.(택시 타지 뭐!!!!)

나에게 있어서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그냥 '능력의 차이'다. 나보다 뭔가를 잘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차라리 내가 해버리는... 그래서 난 가끔 '여성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만약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내가 그 사람을 객체화하고 대상화해서가 아니라, 그나마 그 사람보다 내가 강하기 때문이다. 만약 UFC 챔피언이 내 여자친구고... 길을 가다가 양아치를 만난다면, 난 당당하게 그녀 뒤에 숨을 수 있다.(난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근데....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그 차이를 인정받는 것도 싫어하고, 그 차이가 무시되는 것도 싫어한다.

또 많은 마초들은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그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분명히 차이가 있음에도 성역할을 나눠놓고, 그 안에서 서로의 자존감만을 주장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지금의 헬조선을 만든 건 남성들이다.

단, 사회적 권력을 휘둘러 헬조선을 만든 게 아니라,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슬픈 습성이 헬조선을 만든 것이다.

그 슬픈 습성이란 다름 아닌 '칭찬에 약하다'는 것이다.

과거 20세기에 사회는 남성 위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약삭 빠른 이들은 '칭찬에 약한'남성의 심리를 이용해 착취의 구조를 만들었다.

착취의 구조란 단순했다. 누군가의 성과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보상은 상여금이나 휴가와 같은 단발성 보상에 머물렀지만, 누군가의 칭찬에 약한 남성들은 그 착취의 구조도 모른 체 가끔씩 떨어지는 그 달콤한 포상에 만족하며 뼈가 부서지도록 일했다.

하지만 가정에서 그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냥 냄새나는 아저씨, 돈 벌어오는 기계로 취급받을 뿐이었다. 그래서 남성들은 그나마 자신의 성과를 인정해 주는 회사를 더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집에 가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상사가 되었을 때.... 의미 없는 야근이 반복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었고, 착취가 만연하게 되었다.(야근 많이 하면 칭찬도 따라온다;)

이 견고한 착취의 구조가 드러나고, 헬조선이 이슈가 된 것 역시 '칭찬'과 연관이 있다. 비정규직의 등장과 함께 '보상'으로 대변되는 칭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승진'이나 '보너스'라는 꿀물이 떨어졌지만, 이제는 그런 시스템이 사라진 거다. '숙련된'이라는 말도 사라지고 '단순노동'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이 지나면 부품을 교체하듯 사람을 갈아버렸다.

보상과 연계된 착취의 구조에서 보상이 사라지니 '착취'만 남게 되었고.... 그제야 한국사회의 견고한 착취의 구조가 드러나면서 '헬조선' 이슈가 떠오른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남성들이 칭찬에 약하다'는거다. 이걸 돌려 이야기하면 자존심이 강하다는 건데, 자존심은 쇠와 같아서 두들기고 두들기면 더 강해진다.

지금 여성운동가들은 남성들의 자존심을 더 강하게 두드리며 그 강도를 높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 봐야 남성들은 굽히지 않는다. 오히려 망치를 휘두르는 여성들만 힘이 빠질 뿐이다.

이럴 때는 전략을 바꿔서 불속에 쇠를 넣고 달궈야 한다. 그리고 그 불은 바로 칭찬이다.

지금의 헬조선을 만든 그 칭찬 말이다. 남성들은 다 똑같아서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이다.

자신이 쪽쪽 빨린다는 것도 모르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꿀의 달콤함에 취해 지옥의 불길을 향해 달려가는 게 남성이라는 족속의 슬픈 천성이다.

어떤 페미니스트는 "욕을 먹으면서도 그동안 싸워왔기에 이 정도라도 이룬 거다"라고 말했지만, 전장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전술을 운용하지 않는다면 그 싸움에서 패전을 피할 수 없다.

이번 강남역 살인이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내가 여성이었다면 여자 친구를 잃은 남성에게 주목했을 거다. 그리고 그 남자 친구의 슬픔을 부각하고 '여성이 당하는 폭력은 결국 남성의 상처'라는 점을 강조했을 거다.

그렇게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에 더 이상 침묵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부동층의 남성들을 포섭했을 거다.

내가 앞에서 여성이 생물학적 약자(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를 위한 포석이다.
여혐이 만연한 현시점에서 '사회적 약자'라는 정치적 스탠스는 남성들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니 '생물학적 약자'의 메시지로 접근해야 한다.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걸 '여혐'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로 몰아가는 건, 그들을 순교자로 만드는 효과만 가지고 온다. 그들을 순교자로 만들지 말자. 그들의 위치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이 게만 폭력을 휘두르고 강자에게 굽실거리는 지질한 양아치가 어울린다.

그래서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결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를 때, 남성들이 나서서 그 양아치들을 단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메시지는 그 살인자를 '순교자'처럼 만들고 있고, 많은 부동층 남성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다.

물론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나의 의견에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의 목적이 뭔가? 남녀평등인가? 아니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인가?

남녀평등이라면 지금처럼 하면 된다. 남성을 죄인으로 만들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해 남성과 여성이 동등해지는 '하향평준화'를 통한 평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권리를 빼앗긴 남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박탈할 것이고 여성은 다시 남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다 같이 지옥에 떨어지면 된다.

만약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라면, 남성들을 우쭈쭈 해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여성을 옹호하는 게 남성의 권리를 빼앗기는 게 아니라, 함께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을 선봉에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쉽다. 왜? 남성은 '칭창만 해주면 짚을 메고 불속으로 뛰어들 족속'이니까....


다섯

드디어 마지막 글이다.(이걸 한큐에 쓸려고 했으니;;;)

난 페미니스트들이 '잘못된 승리의 기억'을 버렸으면 좋겠다.

그 잘못된 승리의 기억은 바로 '공무원 시험 가산점 위헌 판결'이다.

이 판결은 한국 여성 운동사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문제는 이 승리가 '하향평준화'를 통한 승리였다는 거다. 앞서도 말했지만 하향평준화를 통한 남녀평등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하는 것보다 쉽다.

이 판결 이후 페미니스트들의 운동 방향이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에서 '하향평준화를 통한 남녀평등'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그와 함께 한국사회에는 본격적인 여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 근데 군가산점이 폐지된 2000년 이후 여성들이 원하는 평등권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2016년 대한민국의 여성인권은 여전히 OECD에서 뒷자리를 다투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여성 혐오가 몇 배나 강해졌다.

이런 결과가 그 알량한 공무원 자리 몇 개 하고 바꿀만한 가치가 있던가?

강남역 살인사건을 대하는 여성들의 메시지는 1999년의 논란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당위성을 옹호하기에 바빴고, 남성들은 의미 없는 권리를 빼앗긴데 분노했다. 어느 한쪽도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극한 대립의 길을 걸었다.

17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다. 여성들은 여전히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며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알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남성들은 그녀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며 그 목소리를 폄하하고 있다.

여성들의 이런 전략의 문제는 전선을 확대한다는데 있다. 전선을 확대한다는 건 그만큼 더 많은 적을 상대한다는 거다. 지금 한국의 여성들에게는 이렇게 전선을 확대할 만큼 전력이 충분한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적을 만들기보다 아군을 더 많이 모아야 하는 시기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적의 무기로 적을 치는 거다. 그 적의 무기는 바로 침묵하고 있는 남성들이다.

명분? 그 따위 먹지도 못하는 건 남성들에게 줘버려라.
명분 한두 개쯤 나눠 준다고 해도, 여성들에게는 차고 넘치는 게 명분이고 당위다. 그리고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쟁취해야 하는 건 '실익'이다.

남성들을 적으로 만들어 자신들을 공격하게 하지 말고,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들을 공격하는 적들을 상대하게 해라. 여성들에게는 그런 명분도 있고 능력도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하향 평준화된 남녀평등'의 쟁취가 아니라 '실질적인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이다.

그러니 제발 망령 같은 그 '잘못된 승리의 기억'을 버리고 전략을 좀 수정해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남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함께 가는 상향 평준화의 길이라는 걸 좀 알리고, 홀로 그 길을 가지 말고 남성들과 함께 싸워라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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