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강신주 인터뷰를 보다가.
Q : 왜 사람들은 메르스 사태에 더 분노 하나? (프레시안 강신주 인터뷰 중에서.. )
질문이 틀렸다.
아무도 분노하지 않았다. 분노한 '척'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메르스보다 공권력에 더 두려움을 느낄 리가 없다.
지금이 분노한 상태라면, 대한민국은 늘 분노한 상태일 거다. ("난 늘 화가 나있어"라고 말하던 헐크도 아니고..)
솔직히 우리는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않는다. 위기를 느끼지 못하니 분노가 표출되지 않는다.
뭐, 이 위기에 대한 무감각은 오랜 시간 쌓여온 경험의 결과다.
그중 하나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논, 진보 정권의 경험이다.
김대중 정권의 구제역 관리, 노무현 정권의 사스 관리, 연평해전의 확전 방지, 일본과 독도 해상 무력 충돌 회피 등등, 다른 나라였다면 최소한 사재기 열풍이 일었을 사건에서도 한국은 일상의 한 과정으로 흘러 지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기억도 못하는 사건으로 말이다.
두 번째 경험은 보수정권이 남발한 과대한 뻥이다.
서울 불바다설을 비롯하여 평화의 댐과 같은 과장된 위기감 고조가 결국은 공갈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우리는 거짓말쟁이 양치기가 사는 마을의 주민이 되어,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세월호 당시 첫 오보(전원 구조)를 아무 의심 없이 믿었던 것도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였고, 메르스 초기, 방역 당국의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지 않게'라던 헛소리를 믿었던 것도 모두 경험에 의한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였다.
재미있는 건 메르스 감기설을 믿는 이들의 신뢰도 역시 과거 진보정권이 쌓아 올렸던 국가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뀐 건 '위기감 = 공갈'이라는 등식이 과거에는 정부의 발표였다면, 이제는 '인터넷 루머(?) = 공갈'이라는 형식으로 바뀌었다는 거다. 물론 그 논리에는 현 정권의 '유언비어' 발언이 크게 작용했지만, 그 기저에는 오랜 기간 정부가 남발했던 '위기감 = 공갈'이라는 경험이 깔려 있다.
핵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위기설을 그냥저냥 살아온 사람들에게, 치사율 40%라는 수치는 체감상 전혀 와 닿지 않는 또 다른 공갈에 지나지 않았고, 그 외에 소위 전문가들이 말하는 가족간 전파 가능성, 특정 환경에서의 공기간 전파 가능성 등은 깡그리 무시되었다.
뭐 김문수 눈에는 그조차 과했는지 '핵보다 메르스를 겁내는 나라'라며 분통을 터트렸지만, 그것도 결국은 공갈의 일환일 뿐이다.
암튼 덕분에 우리는 위기나 분노를 느낄 수 없는 국민이 되어 버렸다.
나의 이런 주장이 공감이 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난 지금 이렇게 무서운데, 매일 마스크 하고 다니고 방콕 하면서 사는데라고... 그거 착각이다. 그냥 뭐라도 해야겠다는 자기 만족과 자기 최면에 빠져있는 거다.
진짜 무섭고 위기감을 느꼈다면, 가장 먼저 뭘 했을 것 같은가?
사재기다. 우선 특정 기간을 버틸 식량과 음료를 확보하는데 우선순위를 두었을 것이다.
사재기는 공동체가 공포와 위협을 느꼈을 때 합법적인 수단 안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집단적 행위다. 여기에 분노를 더하면 폭동이 포함된다.
솔직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재기'라는 단어가 뉴스에서 사라진 게 언제인지 말이다. 외국은 무슨 일만 일어나면 폭동이니 사재기니 하는 뉴스가 넘치는데, 한국은 매일매일이 국가 위기고, 전쟁 위기인데 그런 사재기 현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늘 평온하고 늘 평화로웠다.
분노? 우리는 분노를 잊은 민족이다.
분노를 잃은 민족에게 시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쥐와 닭을 주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