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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슬 May 01. 2020

바이오 스캠에 속지 않는 방법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이 아직도 수그러들고 있지 않아, 세계 각국이 난리인 요즘입니다. 마땅한 치료제가 아직도 나오지 않았고, 유력한 치료제 후보로 기대를 받던 길리어드 사의 Remdesivir(렘데시비르)는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여주며 실망을 안겼죠.      



따라서 앞으로 몇 달간은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 후보가 언론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개될 텐데,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독자들이 제약-바이오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소개하는 기자들 역시 그런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OOO, 코로나 치료 효과 확인”이라는 식의 부정확한 제목만 넘실대고 있지요.      



그냥 ‘그런가보다’하면 될 일이긴 하지만 이런 기사에 낚인 분들이 이상한 회사 주식을 샀다가 피해를 보고 있기도 하여, 속성으로나마 관련 정보를 파악할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글을 씁니다. 몇 퍼센트 치료 효과, 개선 효과? 이런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당 결과가 나온 연구가 ‘어떤 종류’의 연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단독] 코딱지 성분, 코로나 치료 효과 확인     


설명을 위해 임의의 기사 제목을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코딱지에 코로나 치료 효과가 있다고 믿진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이런 류 기사들의 본문은 대략 이런 식으로 구성됩니다.     


서기꾼 박사 연구팀이 코딱지 성분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코딱지는 전임상 연구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생장을 72% 억제했고, 코딱지 추출물을 농축한 용액을 세포에 주입한 경우 코로나바이러스가 90% 사멸되는 효과를 얻었다. 서기꾼 박사는 “현재 스캠제약(8926974)과 협업을 통해 동물실험을 진행 중”이라며 “연내에 관련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혼

그럴듯해 보이죠? 이런 수치 자체도 엄청 좋아 보이고, 전임상 연구에, 세포가 어쩌니 하는 전문용어도 나오고, 동물실험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이렇게 해서 코로나 치료제가 개발된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생활에 조금 더 익숙한 예시인 ‘결혼’에 비유해서 설명드려 볼게요.



앞서 ‘서기꾼 박사’의 연구 결과는 전임상 단계, 그중에서도 세포실험 단계였습니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잘 감이 안 오시겠지만, 소개팅 나가서 삼프터까지 했다는 소리랑 크게 다르지 않은 얘기에요. 친구가 삼프터했다고, 곧 결혼할 것 같다고 하면 미친놈이라는 소리가 나오겠죠? 세포실험 연구로 약을 개발한다는 소리가 나오면 믿고 걸러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동물실험입니다. 세포 수준에서 진행하는 실험은 뉴스화면에서 자주 보는 둥그런 접시(패트리접시라고 합니다)에 세포를 넣고, 여기다가 약을 넣어서 세포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실험입니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의 몸에 들어갔을 때는 상황이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세포에서는 효과를 봤는데, 동물 몸에 넣었더니 꽝인 경우가 많거든요. 소개팅 때는 멀쩡해 보였는데, 막상 연애해보니 대변 패티시가 있더라 하면 곤란하겠죠? 동물실험에서 효과를 확인했다는 뜻은, 일단 연애는 할 수 있는 상대라는 뜻입니다.     



한국적인 특성이겠지만, 누구나 결혼할 나이가 다가오면 연애 중인 상대를 각자 부모님께 소개하게 됩니다. 나는 콩깍지가 단단히 쓰인 상태라 몰랐던 상대의 이상한 단점이 부모님 눈에 보일 수도 있고,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하면 “너는 내 불륜의 증거가 아니냐”라는 막장 상황이 나올 수도 있죠. 실제로 동물에게는 안전해 보였는데, 사람 몸에 넣었더니 갑자기 이상이 생기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임상시험 1차, 다른 표현으로는 제1상 임상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은 일단 부모님께 소개했더니 ‘그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 정도에요. 실제로 1상 임상시험은 환자가 아니라 ‘건강한 사람’에게 약을 일단 넣어보는 시험이거든요.     



그러면 이제 2상 임상시험이 진행됩니다. 한국에서 결혼은 둘이 하는 것이지만, 두 집안이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양가 부모님도 서로를 뵙고, 친척 어르신들과 형제자매들을 모두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그냥 만나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을 같이 가야 할 사람’인지를 보는 것이라 어느 쪽이건 무척 신중하게 보기 시작합니다. 비슷하게 제2상 임상시험은 드디어 ‘환자’에게 실제로 약을 투여해서 그게 효과가 있는지를 보는 단계입니다. 부모님 평생의 휴먼-빅데이터 딥러닝 결과가 자녀 배우자와 사돈 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무서운 단계죠. 2상 임상시험을 통과했다면, 일단은 ‘결혼하게 됐다’는 얘기를 꺼내도 이상하지는 않겠죠?     



마지막 3상 임상시험은 더 대규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결혼 준비가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결혼 과정에서 각자 집안의 재력과 자존심 싸움, 그리고 현실적인 혼수와 집 구하는 문제가 엮이기 때문이죠. 트리플 스드메 코스를 거치고, 결혼식장 예약에 혼수, 전세까지 다 구하면 이제 청첩모임까지 진행하며 본격적인 결혼 준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식장에서 손잡고 나와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다음 여전히 ‘혼인신고’를 할 마음이 바뀔 결정적인 하자가 없어야 결혼을 하게 되는 거죠. 3상 임상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은 법적으로 혼인신고만 안 했다뿐이지, 이미 결혼을 한 상태라고 봐도 됩니다.     



제약-바이오 관련 기사가 뜬다? 그러면 항상 저 표를 떠올려 주세요. 입으로는 못 할 소리가 없습니다. 결과를 말해주는 것은 데이터이고, 그 데이터가 어떤 유형의 연구를 거쳐서 나온 건지를 알면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실제로 약이 시장에 나온다는 예측을 하려면 최소한 2상 임상시험은 끝나야 하고, 그 전 단계는 ‘희망적 예측’이라고 쓰고 ‘흑우모집’이라고 읽는 별 영양가 없는 찌라시성 정보 유포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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