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한국 택배박스를팔려고 하는데 사장님께서 CEO를 맡아주시겠어요?”
전에 운영하던 ㈜애드게이터컴 구성원이었던 이정호가 제안했다.
“재미있겠다. 하자. 내일부터 하면 되나?”
“네. 내일, 화성 봉담에 있는 저희 회사로 오세요. 융건릉에서 보통리 저수지쪽으로 오다 보면 왼편 언덕바지에 있습니다.”
“그래. 내일 보자”
대치동 은마아파트 부근 빵집에서 만나 10분도 안 되어서 결정했다. 그때는 백수였다. 직업이 없었으니까 몸도 가벼웠다. 이정호는 선한 사람이다. 믿었기에 일하는 조건을 전혀 따지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사장이두 명이고, 총무부장 한 명, 배달 사원 한 명인 회사에 세 번째 사장이자 전문경영인(?)으로참여한 셈이다.
다음날 봉담에 있는 이정호가 운영하는 ㈜지즐로 출근했다.
2004년 4월 25일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날짜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되고 있다. 그다지 기억될 이유도 없는데.
지즐이란 이름은 그 전에 내가 사놓은 zizle.com에서 따왔다. 그 무렵에도 이미 두 음절 도메인을찾기 힘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지즐이란 단어가 생각나서 구매해 뒀다.지즐은 ‘새가 소리를 내어 자꾸 크게 울며 지저귀다’는단어에서 따왔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표준어는 ‘지절’이었다. 내가 사둔 그 도메인을 이정호가 쓰고 있었다. 지금 ‘지즐’에서는 이걸‘지구를 즐겁게’를 줄인 말이라고 뜻을 갖다 붙였다. 인터넷 시대 작명법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회사 이름은 ‘티쿤글로벌’이다. 원래이름은 ‘여수룬’이었는데 발음도 힘들고 영어표기가 나오지않아서 개명했다. ‘여수룬’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라는 뜻이다.교회 목사님이 지어주셨다. 티쿤은 아무 뜻이 없다. 개명할무렵 여수룬 직원이었던 이찬희 과장이 제안했다. 아무 뜻은 없지만 부르고 기억하기 쉽고, tqoon.com이라는 도메인이 살아 있으니까. 그래서 회사 이름을티쿤글로벌이라고 지었다.
그렇게 짓고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유대교 사상에 티쿤올람(Tikkun Olam)이라는 게 있는데, ‘티쿤’은 <고친다>는뜻이고 ‘올람’은 <세상>이라는 뜻이어서 ‘티쿤 올람’은‘세상을 개선한다’, 또는 ‘불완전한 세상을 완성한다’는 뜻이라는 게시물이 있었다. 이걸 활용해서 티쿤글로벌은 ‘인터넷을 이용해서 불완전한 무역을 완성한다’는 뜻으로 갖다 붙여 쓰고 있다. 인터넷 시대니까 회사 이름을 지을때는 도메인을 생각해야 하고,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외우기 쉬운 게 좋다. 뜻은 나중에 갖다 붙여도 된다. ‘지즐’이 ‘지구를 즐겁게’가되고, ‘티쿤’이 ‘불완전한것을 완성 시키다’가 되는 것처럼.
지즐은 인터넷으로 소파 파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정호와 동업하는 안사장, 그리고 총무일을 맡는 안사장의 친구, 그리고 배달 사원 한 명 해서 총4명이었다. 여기에 나도 전문경영인으로 참여하니 사장만 셋이다. 사장 셋에 총무부장한 명, 배달 사원 한 명. 좀 웃긴 구조다.
한달 매출이 얼마인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회사는 도시 외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립식 건물. 대략 60평이나 되려나. 창고 안에 2층사무실을 만든 구조다. 2층은 그나마 넉넉히 넓었다. 사장이셋인데 이제 소파 팔아서 버는 돈으로 한국 택배박스를 일본에 파는 일을 성공 시켜야 한다. 다섯 명이먹고 살면서. 지즐은 소파 팔아서 나를 빼고 네 명이 간신히 먹고 사는 구조다. 일본 일을 할 돈은 은행에서 조금 빌렸다. 거의 자금이 없었다.
첫날, 근무조건을협의했다.
“잘 되면 그때 나누는걸로 하고요……”
“그러지”
“월급은 얼마로 하죠?”
“휴. 내가 정해야 하나? 여기도 어렵지?270으로 하자. 밥은 먹어야 하니까.”
이렇게 말로 계약했다. 말로한 계약이지만 나중까지 다 지켜졌다. 이렇게 해서 그야말로 ‘사장인듯, 사장 아닌, 사장 같은’ 사장이 되었다. 지분도 없고, 등기상대표도 아니다. 그냥 말만 사장이다. 2004년이어도 나이가마흔 후반인데 월급 270만 원이면 너무 했다. 그 전에회사 하다 망해서 살림도 엉망인데. 그러나 사정이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지분도 없었지만 그냥 사장이라고 생각해버린 거다. 웃기지만.
이 모든 일이 아무 생각 없고,둘 다 돈 따지는 데 익숙하지 않은 어수룩한 나와 이정호가 맺은 계약이다. 그 점에서 둘다 선했다. 이정호는 이후에도 끝까지 선했다.
4월 25일부터 일본에 택배박스 파는 일을 준비했다.
나는 택배박스가 뭔지도 모른다.어떻게 만드는지, 시장은 어떤지, 아무 것도모른다.
이정호는 왜 나에게 제안했을까?한두 사람에게 제안해봤지만 그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또 좀안다는 사람은 택배박스처럼 투박하고 아무 특징도 없는 물건을 일본에 팔 수 있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거다.
그나마 나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일본야후옥션경매대행업을 했다. 일본야후옥션경매대행업은나중에 티쿤에 합류하는 이석주가 하다가 안 돼서 버린 건데 내가 주워서 했다. 그때는 내가 하던 회사가망해갈 때였고 뭔가 하기는 해야 했다. 이 일은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키워서 다른 사람에게팔았으니 실패는 하지 않은 셈이다. 그 무렵에 한국 사람이 일본 야후옥션에 참가할 수 있게 했고, 그 거래를 대행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다. 이런 경험이있었으니까 이정호가 나에게 제안했다.
이정호는 인터넷으로 소파를 팔고 있었는데 2004년 당시에도 이미 오픈마켓은 피 튀기는 경쟁 때문에 앞날이 캄캄했다. 이정호가한국 내 전자상거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택배박스를 일본에 팔기로 결심한 건 탁월했다.
이정호가 택배박스를 선택한 것은 그 당시 이정호의 친구가 한국에서택배박스를 인터넷으로 파는 일을 해서 성공한 것을 봤기 때문이다. 이정호의 친구는 공장에서 물건을 받아다가인터넷으로 팔았다. 이걸 이정호는 일본에 적용할 생각을 한 거다.
나는 아무 생각 없었다. 좀웃기지만 나는 뭐든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렇게 해서 실제로 성공한 건 거의 없지만. 아마 그때 일본 야후경매 대행업을 했기 때문에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깊이 검토하지도 않고 된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우연으로 점철된다. 우연히누구를 만나고, 우연히 그와 일하게 되고, 우연히 생각하지못한 아이템을 취급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한국 택배박스를 일본에 파는 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