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본과 인연

이정호대표는 개발자다. 그런데장사도 잘한다. 대인관계도 좋다. 개발자가 장사도 잘하고대인관계도 뛰어나기는 어렵다. 게다가 선하다. 이대표가 홈페이지를제작하기로 했다. 전자상거래업에서 홈페이지 구축은 모든 일에 기초다.이 점에서 오너인 이대표가 개발자인 건 엄청난 자산이다. 특히 비즈니스 구상자가 개발자이면반 이상 먹고 들어간다.

내가 한국 택배박스를 일본에 판매하는 일에 성공한 건 이정호대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없었으면 이정호대표 혼자 한국 택배박스를 일본에 팔 수도 없었다. 한국 택배박스를 일본에 파는 일은 나와 이정호대표가 절묘하게 결합되어서 할 수 있었다.

이대표가 홈페이지를 만들고 나머지는 내가 하기로 했다. 내가 할 일도 만만하지 않다. 일본에 법인대표를 뽑아 법인을 세우고, 박스를 갖다 놓을 창고를 구하고, 일본법인 대표를 통해 배송 회사와계약하게 하는 등 일본 체제를 구축해야 했다. 팔 박스 크기와 가격을 정하고, 박스공장을 찾아 계약하고, 컨테이너로 일본에 보내는 일도 해야 했다. 이거 하나하나가 다 안 해본 일이었기 때문에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일본법인을 만들 때, 2002년부터 2003년 말까지 운영한 일본야후경매대행업 시절 만난 김주남대표로부터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 일본 야후경매대행업을 하던 회사 이름은 애니유니드였다(anyuneed.com).‘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라는 뜻이다. 애니유니드일본법인대표가 김주남이었다.

어떻게 일본 인맥과 닿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면 애니유니드 시절까지를얘기해야 한다.

2000년에 ㈜애드게이터컴이라는회사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컴퓨터 사용자가 바탕화면을빌려주면 대가로 돈을 주고 대신 그 컴퓨터 바탕화면을 포탈로 쓰는 서비스를 하는 회사였다. 개념은 인터넷에딱 맞았다. 그럴듯했다.

이 비즈니스 개념도 누가 꺼낸 건데 내가 사업으로 만들었다. 개념을 내놓은 다음날 내가 인연을 맺고 있던 인터넷서비스 회사에 프로그램 제작을 맡겼다. 내 성격이 또 드러난다. 이정호대표와 같이 하기로 한 것도 10분만에 결정했는데, 누가 내놓은 안을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결정도하루 만에 했다. 프로그램 의뢰할 때 돈은 없었다. 돈을벌면 주겠다고 했다. 그 회사에서 받아줬다. 그렇게 바탕화면서비스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2000년 봄부터 2001년까지 벤처투자 광풍이 몰아쳤다. 그 세례를 받아 바탕화면서비스 프로그램으로 무려 46억원을 투자 받았다. 이 투자를받는 일은 거의 나 혼자 했다. 그 해 여름 7,8,9월도무척 뜨거웠다. 여러 투자사를 찾아 다녔다. 설명을 마치고나온 플라타너스 길은 처연했다. 기약도 없다. 다니고 또다녔다. 광풍 덕을 봤다. 마침내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6억원을 투자 받았다. 그게 10월이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로 한 게 대략 6월이었으니까 대략 4개월 걸렸다. 서비스는 시작도 안 했는데…….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6억원을투자 받은 후, 2001년 1월에 18억 원, 그 다음에 얼마 식으로 계속 투자를 받았다. 그때 그 투자회사들은 왜 했을까? 광풍 때문이었다. 3차 투자 무렵 일본의 유명한 히카리(光) 통신 자회사였던 일본 회사가 투자했다. 이 히카리통신 자회사가 바탕화면서비스를 일본에 가지고 가서 일본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게 내가 일본과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애드게이터컴은 2001년가을부터 이미 망해가고 있었다. 남의 컴퓨터 바탕화면을 이용한다는 황당한 서비스로 시작도 하지 않은채 투자를 받았고,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서비스를 일본에 수출했고, 시작도하지 않았는데 미국법인을 만들었고, 중국법인을 만들다가 돈을 떼였다.

뭐라고 변명해야 할까? 쓰기도민망한 노릇이다. 그 시절에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옛이야기 매듭짓는 것처럼 얼버무리는 게 차라리나을 것 같다. 또 지금 할 이야기와 연결고리는 설명했으니까.

애드게이터컴은 불치병으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죽어가는 애드게이터컴 안에서 애드게이터컴 부사장이었던 이석주가개인사업으로 일본야후경매대행업을 하고 있었다. 이석주부사장은 1988년부터한국김치를 인터넷으로 일본에 팔았던 기발한 아이디어 소유자다. 그러나 이석주가 하던 일본야후경매대행업도돈이 없고, 경험도 부족해서 하자마자 버려졌다. 나는 뭐라도해야 했기에 이석주부사장이 버린 일본야후경매대행업을 다시 살려보기로 했다.

애드게이터컴 때 인연을 맺은 일본 인맥이 일본쪽 일을 맡았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내가 병역특례자 두 명을 데리고 일을 했다. 기가막히게도 일이 늘어났다. 죽은 녀석을 내가 살렸다.

일본야후경매대행업은 한국 사람이 일본 야후경매에 입찰 신청하면그걸 대행해주는 거다. 나중에 자동프로그램으로 발전했지만 초기에는 전부 수동으로 했다. 손님이 신청하면 내가 직접 들어가서 입찰해주는 식이다. 출품자가경매 마감 시간을 새벽3시로 해놓을 때도 있다. 그걸 낙찰받아 달라고 하면 나는 새벽3시까지 기다렸다가 입찰해야 했다. 그러다가경매에서 지면 고객은 난리다. 자기는 자고 있었는데. 정산처리 프로그램이 되어 있을 리가 없다. 토요일, 일요일도엑셀로 정산해야 했다. 거래가 늘어나면 정말 쉬지도 못했다. 정산이아니라도 입찰 마감이 토,일요일인 경우도 많다. 어쨌든 나는했다. 직원들이 하지는 않는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먹먹해진다.

월급을 못 가져간 지도 한참 되었다. 일본야후경매대행업도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지 월급을 가져갈 형편은 전혀 못되었다. 이렇게 2003년까지 버텼다. 거래는늘어났다. 뭔가 될듯했다.

현대백화점에서 10년간 사장을 역임한 김영일 회장님을 찾아갔다. 김회장님이 현대백화점에서 은퇴한 직후였다. 김회장님은 애드게이터컴 시절에 인터넷 강좌를 듣는 모임에서 만났다. 이비즈니스를 설명했다. 김회장님이 이 비즈니스에 큰 관심을 보였다. 투자했다. 그때 회사 가치를 6억으로 치고,김회장님이 51% 지분을 갖는 것으로 했다.

김회장님이 합류하면서 비즈니스를 제대로 하려고 이 사업을 애드게이터컴에서분리하여 애니유니드를 만들었다. 애니유니드라는 이름도 김회장님이 지었다. 그리고 일본에 법인을 냈다. 일본 법인 이름이 애니유니드재팬이었다. 애니유니드재팬 법인대표는 김주남이라는 사람인데, 김주남 대표가 이후지즐 일본법인 만들 때 어마어마한 힘이 되어 주었다.

지즐 일본법인은 김주남 대표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애니유니드에는 2003년까지부사장으로 있었다. 애니유니드는 생각보다 성장이 느렸다. 그리고경매대행이라는 비즈니스는 지나치게 복잡했다. 반면 진입장벽이 높지 않았다. 성장이 느리면서 내가 김회장에게 부담을 갖게 되었다. 또 김회장이계신데 부사장으로 할 일이 없었다. 내가 가졌던 49% 지분을드리고 퇴사했다.

김회장님은 대단한 분이다. 나는2000년 이전까지 정치를 했기 때문에 기업 경영은 전혀 모른다. 그때문에 애드게이터컴도 망하게 했지만. 김회장님과 대략 6개월같이 했다. 그때 기업 경영의 기본을 배웠다.

퇴사 직후 2005년~2007년 엔저시대가 왔다. 100엔-730원이다. 엔저시대에는 일본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이 확 늘어난다. 애니유니드는 때를 만났다.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반대로 엔고시대가 왔다. 100엔-1530원까지 갔다. 애니유니드는 엔저시대에 엔고를 대비하지 못했다. 김영일회장님은 2010년 무렵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김영일회장께서 투자해주셔서애드게이터컴을 마무리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마음에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애니유니드 시대는 끝났다. 나는김주남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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