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쿤 CEO로서 저는 회사가 돈을 많이 벌어 구성원이 먹고사는 걱정 안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을 내놓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 방법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이끌고 가야 합니다. 회사 목적은 돈 버는 겁니다. CEO는 그 목적을 달성할 방법을 내놓고, 구성원들이 힘을 내서 그 방법을 따라 일하게 해야 합니다.
목표
지도자로서 제가 가장 힘 쏟는 일은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입니다. 저는 늘 목표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목요일마다 중간 정리해서 전언으로 발표합니다. 물론 종종 다른 이야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멀리 보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저는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지난 8년간 먼 목표와 중간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거의 빼먹지 않고 전언을 썼습니다.
회사 운영하기 전에 정치를 하던 30대 초부터 매주 이렇게 글을 썼으니 거의 25년 이상 되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목표를 확인하고 목표를 세웁니다. 더 먼 목표를 세우고 또 중간 목표를 세웁니다. 중간 목표는 더 먼 목표로 가는 수단이기도 하고 방법이기도 합니다.
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는 것만큼은 누구도 이의를 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자가 목표를 잘못 제시하면 조직은 궤멸합니다. 지도자가 올바른 목표를 제시하면 조직원들이 힘을 냅니다. 목표를 제시하는 과정이 독재든 토론을 통해서든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지도자는 어쨌든 목표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걸 부정하고는 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저는 2005~2006년에‘국경을 넘는 오픈마켓’을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국경을 넘는 오픈마켓’이 지금은 ‘외국인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오픈마켓’으로 바뀌었습니다. ‘국경을 넘는 오픈마켓은 국경을 넘어가는 쪽에서 쓴 거고, 외국인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오픈마켓은 국경 안에서 본 입장입니다. 단어가 바뀐 건 개념이 발전한 겁니다. 아무래도 국경을 넘어 저쪽으로 가는 것보다 그 나라 안에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성공만 한다면 규모가 몇십, 몇 백배 큽니다.
2002년에 한국사람들로 하여금 일본 야후 경매를 한국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시아넷’이라는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그 전에는 ‘컴퓨터 바탕화면을 포탈로 쓰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애드게이터컴’에서 전자상거래 코너도 운영했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과 일본 경매 서비스며 전자상거래 동향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가지고 2004년에 한국 택배박스를 일본에 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ㅈ사에 전문경영인으로 취직했습니다. 저까지 포함해서 달랑 4명인 회사였습니다. ㅈ사 사업이 안정되어 가면서 저는 다음 발전 방향으로 택배박스 오픈마켓을 구상하고 제시했습니다. ㅈ사 오너는 택배박스 오픈마켓 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ㅈ사를 떠나 한국 인쇄물을 일본에 파는 티쿤글로벌을 만들었습니다. 티쿤글로벌을 운영하면서 ‘국경을 넘는 오픈마켓’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이리저리 돌아 지금 ‘외국인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오픈마켓’까지 왔습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2005~2006년 무렵 세운 ‘국경을 넘는 오픈마켓’이라는 목표는 아직도 제게 기본 목표가 되고 있고 지금 드디어 두 번째 구축을 시작했습니다.
티쿤글로벌 초창기 핵심 멤버들은 제가 ‘국경을 넘는 오픈마켓’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그 목표는 그냥 목표였을 뿐 실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는 회사가 살아남을지 조차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2009년에 이상민 실장이 합류하고, 그 이후 중요한 분들이 합류할 때도 우리 회사는 월경 오픈마켓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줬습니다.
기본 목표가 있으니까 당연히 중간 목표도 있습니다. 중간 목표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중간 목표가 무수히 많았다는 것은 실패한 게 무수히 많았다는 뜻입니다. 폐기한 중간 목표를 회고하는 건 꽤 괴롭습니다. 물론 저는 폐기한 중간 목표가 많은 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일을 안 하면 폐기할 중간 목표도 없습니다. 일을 많이 하면 실패도 많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긴 해도 폐기한 중간 목표를 보면 계면쩍습니다. 남들이 ‘그때 그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하고 물으면 실패했다고 대답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실패도 많이 했지만 성공도 많이 했다고 자위합니다. 성공한 게 많았으니 지금 티쿤이 그때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명중률이 낮은 건 제 한계입니다. 딱 이 만큼이 제 실력입니다. 실력이 더 좋았으면 명중률이 높았을 거고 티쿤도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했을 겁니다. 회사가 더 크게 성장하지 못한 것은 제가 내놓은 목표 중 틀린 게 많다는 뜻이고 그런 중에도 크게 성장했다는 것은 성공한 계획도 많다는 뜻입니다.
성공과 실패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저는 지도자니까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조직을 운영할 겁니다.
중간목표들
2010년 2월에 마쿠마쿠 사이트를 애드프린트에서 분리해서 열었습니다. 그런데 마쿠마쿠를 열 준비를 언제부터 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실사출력물을 애드프린트 안에서 팔았습니다. 그런데 신생 ㅅ사가 애드프린트를 완벽히 벤치마킹해서 일본에 실사출력물을 파는 전문 사이트를 열어 단기간에 급성장했습니다. 이걸 보고 배가 아팠습니다. 이상민 실장이 실사출력물 사이트를 애드프린트에서 분리시키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을 받아들여 무려 다섯 명을 투입하여 실사출력물 사이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회사 총인원이 스무 명 정도였으니 엄청난 투자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팀 구성부터 열기까지 9개 월정도 걸렸던 것 같으니까 시작은 아마 2009년 4월 정도 아니었을까요? 하여간 그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투자였고 어마어마한 목표였습니다. 마쿠마쿠는 성공했습니다. 이후 사이트 분리는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애드베스트, 애드플래그, 애드사인, 요키, 티쿤-보틀 등전문 사이트를 만들게 된 배경입니다.
2011년 3월에 동경 영업소를 열었습니다. 2011년 3월 2일 전언 제목은 ‘신주쿠점 오픈’이었습니다. 왜 동경 영업소 오픈이 아니고 신주쿠점 오픈이었을까요? 이 당시에 이미 저는 지역 책임 영업제라는 개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념이 견고하지 않아서 신주쿠점이라는 개념을 그 이후에 유지하지는 못했습니다. 동경 영업소 안에 신주쿠점을 두기는 했지만 흐지부지하다가 나중에 그냥 동경 영업소로만 남았습니다. 신주쿠점 오픈 이전에 이미 오사카에도 영업 사원을 뽑았습니다. 이때 티쿤은 온라인이 주력이지만 오프라인 영업으로 보조한다는 개념을 분명히 했습니다. 2011년이면 회사가 생기고 겨우 3년 반 되던 때니까 동경 영업소를 열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목표를 세우고 강력하게 밀었습니다. 동경 신주쿠에 채 두 평이 안 되는 공동사무실을 얻었고 쿠보타 님이 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창문도 없어서 아주 답답한 사무실입니다. 이 사무실을 대략 6개 월 정도 쓴 것 같은데 그 정도 쓰면 폐쇄공포증이 생길만했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를 구보타 소장이 잘 버텨줬습니다. 이것 역시 중요한 중간목표였습니다.
동경 영업소 오픈은 중국 법인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중국 법인은 2012년 10월 무렵 고성석 대표를 만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012년 10월부터 갑자기 엔저가 시작되어서 12월에는 도저히 중국 법인 설립을 계속 추진할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대표가 이미 합류를 하기로 해서 그냥 억지로 진행했습니다. 저로서는 고대 표한 테 정말 미안한 시기였습니다. 다행히 고대표도 잘 버텨주었고, 회사도 억지로 버티면서 중국 법인이 살아남았습니다.
제가 내놓은 제일 황당한 목표는 2013년 3월에 월 매출 1억 5천만 엔 시대를 열자는 것이었습니다. 1억 5천만 엔은 2013년으로부터 3년이 지난 2016년 3월에 겨우 달성한 목표입니다. 물론 2013년에 그런 계획을 내놓을 때도 수단은 있었습니다. 영업점 유치였습니다. 영업점은 일본에서 애드 프린트 상품을 파는 사람을 모집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것도 상당히 공들여 준비했습니다. 최동호 님이 이 일을 맡아 애드프린트 복제 사이트를 만들어서 영업점에 나눠주었습니다. 이때 몇 개 영업점 사이트를 열어주고 나서 곧바로 접었습니다. 영업점 사업은 2012년 10월부터 매출이 급감하면서 타개책으로 내놓은 것이었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은 나쁘지 않았지만 구현하려면 전혀 다른 방식이어야 했습니다.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영업점이 연 사이트가 본 사이트인 애드프린트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어서 영업점이 활동을 해도 고객이 전부 본 사이트로 가버리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현재 지역책임 영업제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영업점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2013년 월매출 목표를 1억 5천만 엔으로 잡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습니다.
또 실패한 모델은 기억을 떠올리기 참 쓰라린, 그러면서도 티쿤 아이템 별 오픈마켓을 있게 한 오더몰닷컴(
www.ordermall.com)입니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목표로 내놓았습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고 그 당시 이동하, 신상현 수석 둘을 투입했습니다. 오더몰닷컴은 종합 오픈마켓입니다. 자금부족, 경험 부족으로 실패했습니다
. 이 사업은 월경직판 지원 플랫폼 티쿤으로 계승되었고 지금 오픈마켓으로 발전했습니다.
성공도 했고 실패도 했습니다.
저는 이처럼 먼 목표와 중간 목표를 명확히 하는 걸 제 지도 방편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저는 중간 목표를 내놓으면서도 회사 전체를 말아먹는 황당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리 큰 중간 목표도 조직 재정 상태를 보면서 추진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실패를 많이 했지만 조직 전체가 위기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인도 인트라고와 통합했고, 용기를 새나라 진출에서 기본 상품으로 한다는 것과 tqoon.jp 육성이 제가 결정했거나 세운 목표였습니다. 이 모두는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지금 티쿤을 있게 하고 있습니다. 성공은 눈에 잘 안 띄지만 실패는 눈에 잘 띄어 참 난감합니다.
목표 없는 지도 없다
저는 처음에 목표를 뚜렷이 세웠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중간중간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올 때 제 목표와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뚜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제 업적 중 하나는 개발실을 육성한 것입니다. 애드프린트 초창기에 안팎에서 개발을 외주 주자고 했을 때 저는 콧방귀도 안 뀌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제가 먼저 나서서 개발실 인원을 늘리라고 독려했습니다. 지금 회사 전체 구조에 비하면 플랫폼 운영실이 비대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목표에 비추면 지금 플랫폼 운영실은 너무 왜소합니다. 이 규모로는 ‘외국인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오픈마켓을 각 나라에 만드는 일’은 어렵습니다. 이 규모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플랫폼 운영실은 커지는 걸 넘어 비대해져야 합니다. 비대해서 비효율도 많아야 합니다. 비효율을 감수하고도 인원을 늘리는 게 오히려 멀리 보면 효율을 높이는 길입니다. 저는 각 나라에 오픈마켓을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개발진을 내부에 두고 계속 육성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플랫폼 운영실을 키운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지금 매우 훌륭한 플랫폼 운영실을 우리 회사에 두고 있습니다.
저는 지도자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목표 세우기’라고 확신합니다.
천재 CEO들은 목표를 정말 잘 세웁니다.
레닌이라는 천재는 마르크스 이론을 뒤집어서 ‘혁명은 자본주의가 뒤진 나라에서 터진다’는 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또, 당시 멘세비키들이 그때 러시아를 부르주아 혁명 단계라며 정권 잡는 걸 꺼릴 때, 냉큼 나서서 부르주아 혁명을 프롤레타리아가 감당한다는 이론을 만들어서 정권을 잡아 버렸습니다. 병신 같은 녀석들이 이론을 가지고 조몰락 거리고 앉았을 때 그는 현실에 맞게 이론을 바꿔버린 것입니다.
모택동이라는 천재는 민주 연합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이론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농민혁명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본이 중국에 침략했을 때는 ‘점은 면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상식을 이론으로 만들어서 중국 민중에게 힘을 줬습니다.
등소평이라는 천재는 흑묘백묘론을 만들었고 남순강화로 개혁 개방을 보여줬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박정희는 중공업 우선, 전자산업 육성, 새마을운동이라는 목표를 내놓았습니다. 박정희는 그 덕에 많은 악행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많은 지지자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키운 것은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무리를 이끌고 가는 사람입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무리는 헤매고 때로는 폭동을 일으켜서 지도자를 잡아 죽이기도 합니다.
지도자는 목표를 내놓는 사람입니다. 마르크스는 ‘지금까지 철학자는 세상을 해석하는데 머물렀다. 진짜 철학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는 말을 했는데, 정치 천재들이 한 것은 이론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바꾸는데 이론을 이용했습니다.
지도자는 세상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이론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좋고, 싸고, 빠르고, 편리하게’라는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구성원의 인격 성장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회사’라는 슬로건을 만들었습니다. ‘100만 회원, 1천 이용사 유치’를 목표로 내걸기도 했습니다. ‘살 사람이 있고, 경쟁력이 있다면, 광고하면 팔린다’는뚜렷한 활동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해외직판’이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월경 직판’이라는 단어로 바꿨고, ‘외국인도 자유롭게 참여하는 오픈마켓’이라는 개념도 만들었습니다. 안식휴가제도 만들었습니다. 이걸 통해 끊임없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했습니다.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뚜렷한 목표를 내놓았습니다.
용감해야 한다
뚜렷한 목표를 내놓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뚜렷한 만큼 실패하면 표가 확실히 납니다. 그리고 목표를 내놓는 순간 반대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고, 그 반대에 부딪히면 힘겹습니다. 그렇지만 지도자는 욕먹을 걸 각오하고 목표를 뚜렷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양비론(兩非論)이나 절충주의(折衷主義)에 빠집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직영, 플랫폼 사업, 오픈마켓 세 가지입니다. 저는 오픈마켓을 회사 중심 비즈니스로 삼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을 때, ‘세 가지가 서로 시너지 나게 운영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답을 들으면 정말 화가 납니다. 이 따위 대답은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세 가지가 서로 시너지가 나면 좋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정말 해야 하는 말은 세 가지가 서로 시너지가 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내놓는 것입니다. 하나마나 한 소리,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은 지도자가 할 말이 아닙니다.
어떤 강사가 한 시간 반 동안 통일이 필요하다는 말을 늘어놓고는 끝에 ‘이제 우리는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하고 결론을 맺습니다. 이런 지도자가 정말 많습니다. 통일이 필요하다는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정말 중요한 방법론은 전혀 내놓지 않는 것입니다.
공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잘’, ‘열심히요’, ‘최선을 다해야지요’. 이게 무슨 답일 수 있습니까?
사업계획을 쓰라고 하면 누구나 다 쓰는 이야기, 고등교육받은 사람이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 것은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실무자가 쓸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지도자가 할 일이 아닙니다. 상황을 설명하는 게 아니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내놓는 게 사업계획입니다.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상황을 잔뜩 써놓고는 끝에 열심히 해야 한다고 쓴 글을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그런 글은 실무자도 다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실무자와 다른 통찰과 사고력을 가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지도자는 방법과 수단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매출을 늘릴 방법, 회원을 늘릴 방법, 이용사를 늘릴 자기 방법을 내놓는 사람입니다. 구성원들과 상의를 하든, 혹은 스스로 생각하든, 혼합하든 어쨌든 마지막에는 지도자가 선택하고 결정해서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목표를 마련하는 건 잘 못하고 늘 부하들 뒷바라지하는 걸 지도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큰 잘못입니다. 제시하는 것과 돕는 것은 같이 가야 합니다. 둘 중 택하라면 지도자는 역시 제시하는 쪽이어야 합니다. 어떤 지도자는 회의를 할 때면 스스로 내놓는 안건은 거의 없이 참여자가 내놓는 안건만 다룹니다. 이런 지도자는 참 편합니다. 이런 지도자는 교통순경이지 결코 지도자가 아닙니다.
지도자는 남들이 다하는 이야기, 남들이 다 하는 생각으로 버텨서는 안 됩니다. 그런 거 하라고 지도자 시키는 게 아닙니다. 비단 지도자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구상,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만의 생각을 내놓는 것은 저도 두렵습니다. 대주주면서 CEO인 저도 새 계획을 낼 때면 반발이 두려워서 사전 공작을 엄청나게 합니다. 그 의견을 여러 경로로 확산시키느라 아주 힘듭니다. 의견을 내놓고 반응을 보고, 또 수정하는데도 반발과 반대가 신경 쓰입니다.
물론 CEO니까 밀어붙이면 되긴 될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진심으로 동의해야 일이 됩니다.
저도 그런 판에 간부는 자기 뜻을 제대로 밝히는 게 무척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걸 해야 진짜 지도자입니다. 또 그렇게 해서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두려우니까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하고, 두려우니까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게 이야기합니다.
혹은 정말 모르니까 목표를 세우지 못합니다. 이건 정말 비극입니다. 능력이 안 되는데 지도자 자리에 앉은 셈입니다. 이 상황이면 본인도 죽고 조직도 죽입니다.
제가 정치를 할 때는 극좌가 진보정치를 지배했습니다. 저는 의회 사회주의를 주창했습니다. 그런데 워낙 극좌가 주도했기 때문에 의회 사회주의를 주창하면서도 극좌파들 눈치를 봤습니다. 정치에서 이런 태도는 금물입니다. 저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저주저하다가 저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때만 놓고 보면 제 주장을 소신껏 하지 못한 걸 무척 후회합니다. 제 주장을 소신껏 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을 수 있습니다. 주장이 곧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니까요. 다만 그때 주장을 소신껏 하지 못한 것을 무척 후회합니다.
그때 경험 탓일 겁니다. 저는 지금은 어디서든 제 의견을 분명히 밝히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노력할 때마다 느끼지만 의견을 분명히 밝히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앞서도 말씀 드렸지만 CEO고 대주주인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틀렸다는 지적을 받는 게 무척 두렵고 때로는 제 주장을 받은 사람들이 몸을 사리는 것 역시 두렵습니다.
정확한 목표를 세우는 것도 어렵고 그것을 관철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용감해야 하고 또 지혜로워야 합니다.
목표를 내는 게 실력이다
지도자는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판단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전투 중에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포탄이 쏟아지고 적군은 몰려옵니다. 안개가 잔뜩 끼어 있어서 길은 안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도 지휘자는 머물지, 전진할지, 후퇴할지, 전진하고 후퇴한다면 어느 방향으로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머물지, 전진할지, 후퇴할지,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지 못하면 지휘자뿐 아니라 부하들도 다 죽이게 됩니다. 지휘자는 몰살을 당하더라도 결정해야 합니다. 정 모르겠으면 손바닥에 침을 뱉어 탁 쳐서라도 갈 길을 정해야 합니다. 결정하라고 지휘자를 뽑았습니다. 제일 안 좋은 지휘자는 결정을 안 하거나 못하는 지휘자입니다. 뭘 하자는 건지 뚜렷하지 않은 지휘자도 안 좋은 지휘자입니다.
결정을 잘못하는 지휘자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지휘자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순간순간 결정하려면 경험이 많아야 합니다. 일본 전국시대(戰國時代)를 마감하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 이에야스와 서군 이시다 미츠나리가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에 가담하느냐에 따라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이쪽저쪽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고바야카와 히데아키 진에 포를 쏴버렸습니다. 엄청난 결단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실전으로 다져진 판단력과 전쟁터 심리를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감각입니다. 여기에 무슨 이론이 있겠습니까? 이에야스의 공격에 놀란 히데아키는 화들짝 이에야스 편에 서서 서군을 공격했고, 큰 전쟁이 그날 저녁에 끝나버렸습니다.
드라마에서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포가 떨어지자 부하들에게 ‘자, 출진이다!’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부하 장수들이 ‘어느 쪽입니까?’ 하고 묻는다. 그러자 히데아키는, ‘응?’ 하고 어디로 내려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적은 미츠나리다’ 하고 출진합니다. 결정장애가 있던 히데아키는 나중에 정신분열로 죽습니다.
이에야스는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전쟁을 거듭하면서 살아남은 실력이 있었습니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처조카입니다. 그 정도 결정할 실력이 없었습니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관료였고 전쟁을 주로 머리로 겪은 사람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에야스도 미츠나리도 히데아키도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이 선택이 역사를 바꿨습니다. 이 순간에 정답은 없습니다. 이에야스가 히데아키 진에 포를 쐈을 때 히데아키가 꼭 이에야스 쪽으로 붙는다는 보장이 있었을까요? 이에야스는 감각에 의존해서포를 쐈고 히데아키는 넘어왔습니다. 이게 실력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 역시 드라마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 전쟁사가들은 이에야스가 과연 포를 쐈는지조차 의심합니다. 다만 히데아키가 끊임없이 주저하다가 동군에 가담했고, 서군으로부터는 배신자라고 규정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주저함 때문에 히데아키는 동군에서도 무시를 당했습니다.
선택을 하는 건 실력입니다. 실력은 경험과 학습에서 나옵니다. 이에야스는 그 중요한 순간에 목숨을 걸고 선택했습니다. 그의 오랜 경험 때문에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정치를 했고,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하는 자리에 늘 있었습니다. 비즈니스에서도 별의별 경험을 다했습니다. 특히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는 비록 성공한 곳에 있지 못했지만 늘 있었습니다. 실천과 경험, 그리고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저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결정을 할 수 있었고,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티쿤글로벌 젊은 간부들은 제 경험을 잘 전수받고 있습니다. 저는 티쿤글로벌 젊은 간부들이 비 온 뒤 대나무처럼 쑥쑥 성장하는 걸 보면 정말 기쁩니다. 젊은 간부들이 10년 뒤 세상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걸 생각하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목표를 정하기 바랍니다. 실천하기 바랍니다. 실패하기 바랍니다. 다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그 일은 저 지도자가 했다고 평가받을 뚜렷한 목표를 내놓으십시오. 지도자는 정책으로 평가받습니다. 뚜렷한 철학이 담긴 정책으로 평가받습니다.
남들이 다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뭘 하자는 것인지 뚜렷하지 않은 정책은 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철학, 자기 세계관, 자기 생각을 정책으로 내놓기 바랍니다. 어디서 본듯한, 남의 것을 내놓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범을 보이기 바랍니다. 부하를 키우려고 애쓰지 말고 자기 일을 잘하십시오. 부하는 키운다고 크는 게 아닙니다. 어떤 부하는 여왕벌 키우듯이 키워도 안 되고, 어떤 부하는 짓눌러도 성장합니다. 후계자를 키워서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다음 지도자는 스스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미래 일은 자기 몫이 아닙니다.
지도자로서 자기 일만 잘하면 됩니다. 목표를 내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구성원들을 잘 이끌고 가면 됩니다. 나머지 일은 구성원들이 각자 알아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