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EO전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회의(會議)는 중요한 지휘 수단

2017. 10. 17. 화요일.

회의는 결정하려고 한다

지휘자는 갈 길을 제시하고 무리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도록 이끌고 또 밀어주는 사람입니다. 지휘자에게 회의는 이걸 달성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입니다. 회의는 갈 길을 공식 결정하고 선포하는 자리입니다.


저에게 회의는 제 뜻을 공식 확정하고 선포하는 자리입니다. 저는 토론하려고 회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끔씩은 토의 자체가 목표인 회의도 합니다만,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은 제 뜻을 조직의 뜻으로 공식 확정하려고 회의를 합니다. 저에게 회의는 결정하는 곳이지 토의하는 곳이 아닙니다. 저는 회의에서 토의하는 것은 어리석기까지 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회의 주재자가 의견을 들으려고 회의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고 그렇게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을 정말 싫어합니다. 주재자가 의견이 명확하지 않은 채 의견을 듣겠다는 회의에 가는 건 정말 힘듭니다.


정부 부처 장관이나 기관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여러 번 참석해봤습니다. 보통 열 명, 많으면 스무 명 이상도 참석합니다. 책임자가 나와서 10분~15분 모두(冒頭) 발언을 합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해당 업체나 부문의 현황을 소개합니다. 이게 뭐 하자는 걸까요? 한 나라의 장관이 이처럼 한가해도 될까요? 그리고 참모들은 뭘 하는 사람일까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장관이 초청한 사람들이면 그래도 웬만큼 바쁜 사람들입니다. 이 바쁜 사람들이 남 하는 소리를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들어야 할까요? 회의를 왜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이렇게 하는 겁니다.


장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웬만한 회의 주재자들은 대개 이렇게 합니다. 물론 의견을 듣는 회의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늘 이런 식이어서 문제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티쿤 해외법인장들을 한국에 불렀습니다. 저는 회의하기 전에 법인장들에게 <각 나라에 만드는 쇼핑몰을 ‘독립몰 연합’에서 ‘종합 오픈마켓’으로 전환한다>는 글을 미리 발표했습니다. 미리 읽고 오라고 했고, 회의 때는 그 안을 자세히 소개하고 그 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 회의에서 저는 각 법인 현황 보고를 일체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각국 법인 현황 보고를 할 거면 한국 본사 각 사업부 보고도 해야 합니다. 온통 보고할 것 투성이입니다. 그런데 각국 법인 현황과 본사 각 사업부 보고를 하면 논의할 게 풍부해지고, 좀 더 논의를 잘할 수 있습니까? 보고자가 열 명이면 5분씩 보고해도 50분입니다. 그럼 한 나라 상황을 5분 보고해서 참석자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요? 없습니다. 그런 보고는 참석자들도 잘 듣지 않습니다. 설사 듣는다고 해도 그게 듣는 사람 사업에 큰 도움을 주지도 않습니다. 모두 형식일 뿐입니다. 그런 보고 받으려고 그 비싼 비행기 값이며 방값 물면서 회의에 오게 할 필요 없습니다. 시간낭비입니다.


각국에서 비행기 타고 오는 회의라면 회사 전체 방향을 정하는 정도여야 합니다. ‘자주 보면 좋지 않아요?’ 이런 마음으로 해외법인장을 오라 가라 할 일은 아닙니다. 한번 오면 며칠이 사라지고, 비행기 값, 숙박비도 듭니다.

올 만한 안건을 놓고 오라고 해야 오는 사람도 보람이 있습니다. 회의를 한다면서 그 회의에 걸맞은 안건이 없으면 회의를 소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한 나라 장관이 회의를 소집할 거면, ‘이러한 정책을 세우려고 하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해서 미리 정책안을 만들어 각 참여자에게 보내고, 각 참석자들은 사전에 의견서를 낸다거나 회의에서 발언할 걸 미리 정해서 오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의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의견 청취는 참모들이 사전에 해야 합니다. 참석 대상자를 따로 만나고, 심층 취재를 해서 장관이 회의를 주재할 때는 뭔가 뜻있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장관이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들을 필요도 있긴 합니다만 기초 의견까지 장관이 들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석한 회의의 대부분은 기초 상황 청취였습니다.


한번 모이기 어려운 회의에서는 뭔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견을 모으고 조정하고 조율한 다음에 회의를 해야 성과가 생깁니다.


각국 정상 회담하는 걸 보십시오. 사전에 실무 회담을 여러 차례 엽니다. 실제 정상끼리는 대개 적당한 덕담이나 하면서 끝냅니다. 나라 정상이 앉아서 실무 회의를 하겠습니까? 밥 먹었냐? 너희 나라 홍수 크게 났다더니만 괜찮냐? 이런 말 통역 두 번 거치고 하면 뜻있는 말을 얼마나 하겠습니까? 물론 정상끼리 담판 지을 것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경우는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게 회의하는 방법입니다. 준비하는데 시간을 충분히 들이고 본 회의는 의견 확인만 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의견을 듣고 준비하는 과정이 치밀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려야 하는데, 회의에서 토론하는데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은 잘못입니다. 달랑 한 시간, 두 시간 하는 회의에서 참여자 기본 보고까지 하는 건 장관이나 공기관이 할 회의가 아닙니다.


참석자들에게도 예의가 아닙니다. 그 바쁘고 귀한 CEO들을 모아놓고 각 회사 현황을 듣느라 한 시간 이상 시간을 쓰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다른 회사 소식 들으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취합할 수도 있지만 대개 정보는 그 정도 가치 있지 않습니다. 좀 지혜로운 장관이나 부처라면 사전에 그런 정보를 미리 모아서 자료로 보내줘야 합니다.


이 정도가 한국 정부 부처 장관과 참모들 수준입니다. 한 나라 장관과 장관 참모의 수준이 이러니 일반 기업체 회의 수준도 높을 리가 없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듯이 ‘왜 그래야 하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원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회의를 왜 하는 건가? 회의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 생각해야 합니다.


‘마이크 잡으면 왕’이라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우스개가 아닙니다. 회의 주재자는 회의를 살릴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습니다. 지도자는 회의 주재권을 가집니다. 회의를 자기 멋대로 이끌 수 있습니다. 회의 의장은 정회권을 갖고 있고, 재의권도 갖고 있습니다. 정말 멋대로 할 수 있습니다. 멋대로 할 수 있는 주재권을 가지고 시간 낭비할 거냐 아니면 뜻깊게 쓰느냐도 결국 기량입니다. 다시 회의를 왜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동의(動議)하면 통과시켜야

저는 제 뜻을 관철시키려고 회의를 합니다. 저는 상황이나 이견은 회의 전에 파악하고 조율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조정이 된 안을 회의에 동의(動議)합니다.


저는 회의 때 통과시키지 못할 동의안은 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동의(動議)하면 반드시 통과됩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면, 기우제를 지내기만 하면 비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면, 싸우면 이깁니다. 말장난 같습니다만 리더에게 이건 정말 중요합니다.


통과되지도 않을 안은 내는 건 무척 미숙하고 회의 참가자들 시간을 도둑질하는 행동입니다. 왜 준비도 안 되고, 조율도 안 된 안을 내서 통과도 못 시킨다는 말입니까? 그냥 연습 삼아 해보는 걸까요?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인가요? 목표가 뚜렷해야 합니다. 슛을 했으면 골을 넣어야 합니다. 동의했으면 통과시켜야 합니다. 그게 프로가 일하는 방법입니다. 낸 안에 몇 가지 질문을 했더니 ‘좀 더 보완해서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하는 건 아마추어입니다.


안을 내면 ‘이의 없습니다’ 하고 그냥 통과되게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질문하고, 반대자가 있고 할 정도면 동의 안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므로 공식 최종 회의에 올리는 안은 간결해야 하고, 해석에 따라 달라질 요소가 거의 없어야 하고, 토론할 필요가 없어야 합니다. 토론은 동의(動議) 하기 전에 하는 겁니다.


결정하는 회의에서 토론하는 것은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어떤 의견인지 남기는 것은 이후 일을 잘하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그걸 정리해서 기록해 두려고 발언하는 것이지 그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회의를 그렇게 주재하면 안 됩니다. 물론 소소한 사안이야 토론도 할 수 있지만 그건 회의의 본질이 아닙니다.


국회, 지자체(地自體) 회의도 다 이렇게 합니다. 본회의에서는 찬반 토론 없이, 또는 한두 명 찬반 토론하고 표결합니다. 진짜 찬반 토론은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상임위원회에서 합니다. 본회의에서 하는 토론은 그야말로 기록을 남기는 게 목적입니다.


회의를 할 때는 미리 토론, 대화, 조율, 상의하고 동의안을 내야 하고, 지도자는 그렇게 동의(動議)하게 지도해야 합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음악회에서 지휘하지 않습니다. 음악회에서 하는 지휘는 90% 이상 쇼입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아프면 제1수석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오늘 내가 몸이 안 좋네. 중심은 자네가 잡게’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휘자는 흉내만 냅니다. 그래도 오케스트라는 그 지휘자의 음악을 연주합니다. 왜냐면 음악은 연습 때 90% 이상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축구팀의 실력이 시합 중 감독 지휘에서 나오겠습니까? 감독도 흥분해서 떠들지만 그 영향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물론 경기 흐름을 바꾸기 위해 선수를 바꾸고, 포메이션을 바꾸기도 합니다만 진짜는 연습에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어떤 시합에서는 감독이 퇴장당해 관중석에서 보기만 하는데도 그 팀이 이깁니다. 평소에 호흡을 맞췄고 준비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의는 회의 전 준비에서 결정이 납니다. 이치가 이런데 사전에 대화, 토론으로 조율하지 않고 동의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이걸 생각하면, 동의를 냈는데 부결이 되면 동의자(動議者)는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동의안을 만드는 것도 일입니다. 조사하고, 연구하고, 다듬느라 부서 실무자로 하여금 일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동의해서 부결되면 그 시간과 노력은 물거품이 됩니다. 동의자가 잘못한 겁니다. 안 되면 말고 식이면 무책임합니다. 통과되게 해 놓고 동의해야 합니다. 원리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회의장에서 토론은 시간 낭비

사전 준비 없이 회의하고, 회의에서 토론하면 시간 낭비가 심해집니다. 모든 사안에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세 명만 모여도, 토론하다 보면 한 사람은 스마트폰 만지고 있습니다. 관심 없다는 겁니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 자세를 탓하는 건 아무 소용없습니다. 스마트폰을 안 만진다고 그 사람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머릿속은 여전히 오늘 저녁에 친구 만나 놀 궁리하고 석 달 뒤 해외여행 계획 짤 겁니다. 탓할 수가 없습니다. 세 명도 그런데 네 명, 다섯 명, 여덟 명, 열 명이면 토론이 안 됩니다. 서너 명만 토론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지겨운 회의가 끝나기만 바랍니다. 나머지 사람은 아까운 시간만 버릴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정이라도 되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린 결정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회의는 모두에게 걸리는 핵심 사안을 놓고 그 안을 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토론하지 말고 기록용 발언만 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사전에 충분히 토의해서 일치하는 건 뭐고 틀린 게 뭔지를 알고 참여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의에서는 마지막으로 그 의견을 발표하는 정도로 끝내야 합니다.


회의를 사전에 준비하는 이유는 사람끼리 소통이 정말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소통이 어렵다는 걸 매우 잘 알기 때문에 늘 자세히 설명하려고 애씁니다. 한 얘기 또 하고, 다음 회의에서는 앞 회의 결정 사항을 또 정리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듣는 사람 문제보다 말하는 제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제 말을 전달하지 못하고, 듣는 사람이 한번 걸러서 듣는데, 회의장에서 처음 듣고 토론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전 토론하지 않은 안건은 청자(聽者)가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들어도 스스로 걸러서 듣습니다.


글쓰기가 왜 어려운가요? 내가 주장하려는 게 뭔지 나도 잘 모르고, 안다고 해도 표현할 방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말하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는 있지만 뜻이 없는 말이 정말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게 왜 어렵습니까? 내 말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듣는 사람은 다 자기 능력과 실력만큼 알아듣기 때문입니다.


자기 뜻을 다 표현할 수 없고, 듣는 사람은 자기 식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사람끼리 커뮤니케이션은 형편없습니다.


그러므로 사전에 충분히 대화하지 않고 올라오는 안건은 통과되기 어렵고, 통과되더라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낳습니다.


저는 전언을 쓸 때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정리하느라 시간을 다 보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파악하는데 글 쓰는 시간의 50% 이상을 씁니다.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그게 뭔지 잘 모릅니다. 어떻게 쓸지 잘 모르는 것은 생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쓸 걸 정리하는 게 일입니다. 쓸 걸 정리한 다음에 어떻게 써야 내 뜻을 잘 전할 수 있을지를 궁리할 수 있습니다. 준비하지 않은 회의는 쓸 게 분명하지 않은 채 쓴 글과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훈련이 잘된 동의자(動議者)는 작가와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뭘 동의(動議)하는지, 어떻게 동의하는지를 아주 잘 압니다. 그런데 훈련 안 된 동의자는 글쓰기 훈련을 못 받은 사람처럼 동의하는 방법도 잘 모릅니다.

동의자가 뭘 동의하는지 모르고, 청자가 뭘 들었는지 모르는 채 결정하는 거야말로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이 됩니다.


이러지 않으려고, 저는 본회의에 동의하기 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상의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참석자들이 제가 내는 동의안(動議案)을 충분히 이해하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내는 동의안 자체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듣는 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충분히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제 뜻을 잘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참석자들로 하여금 이해를 하기보다 충분히 들었다고 느끼게 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걸 위해 저는 전언을 쓰고, 평소에 회사 내 각종 수단으로 제 의견을 알립니다.


저는 회의에서는 설득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다만 충분히 설득했다는 느낌을 남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수로 통과시켰을 때 마지못해서라도 동의하게 하려고, 혹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잘 이해하고 찬성해주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저에게 회의는 통과시키는 곳이지 설득하는 곳이 아닙니다.


작은 일조차 사람을 설득하려면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므로 회의장에서 처음 얘기하고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옳습니다. 그래서 저는 힘들게 전언을 씁니다.


남 앞에서는 설득당하지 않는다

공식 회의에서 토론하여 남을 설득하는 것은, 애를 부모 뜻대로 하려는 것만큼이나 힘듭니다. 토론하여 남을 설득하는 건 애당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는 회의를 주재할 때, 이견이 생기면 될 수 있으면 다음 회의로 넘깁니다. 회의장에서 생긴 이견을 토론으로 일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설사 억지로 하나로 결정하면 이견자가 불만을 가지게 되므로 토론을 더 진행시키는 게 오히려 좋지 않았습니다.


회의장에서 이견이 왜 해소되지 않습니까? 자존심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승복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성보다 감정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갖다 붙일 논리는 수백수천 가지입니다. 이론은 이론으로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토론해서 설득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 앞에서 토론하면 흥분이 극에 달해 절대로 승복하지 않습니다. 아니 승복하려고 해도 승복할 수 없습니다. 이건 사람 속성입니다.


그러므로 회의 주재자는 이견이 발생하면 빨리 봉합하는 게 최선입니다. 그리고 뒤에 가서 조용하게,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자리에서 체면을 살려주면서 안을 포기하게 해야 합니다. 공식 회의에서 토론하면 관계만 안 좋아집니다.


저는 정치 조직에 있었습니다. 언젠가 200명가량이 1박 2일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연동된 두 안을 분리 표결했습니다. 한 안을 처리한 다음 두 번째 안은 앞 안의 의미를 희석시키려는 쪽에서 사활을 걸고 토론을 했습니다. 밤새도록 토론하고 표결했는데 딱 한 표가 바뀐 걸 봤습니다. 그 딱 한 표도 졸려서 잘못 기표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이렇습니다.


저는 사전에 조율하고 토론합니다. 그래서 제가 주재하는 공식 회의는 30분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영전략회의는 특별하지 않는 한 30분 이상 회의하지 않습니다. 대신 30분 회의를 하기 위해 30시간 이상을 사전에 준비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조율합니다. 제가 직접 대화하고, 토론하고, 조율하지 않아도 여러 방법으로 준비하고 조율합니다.


사람을 설득하면 손해입니다. 가르쳐주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 같습니까? 많은 사람은 고까워합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어린아이들조차 가르쳐주려고 하면 “내가 할 거야” 합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그저 어르고, 달래고, 잘났다고 칭찬해주고, 스스로 한 것처럼 만들어줘야 움직이는 게 어린아이입니다. 이 속성은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설득하는 게 아니라 안을 만들어서 쥐어주고 그 사람 얼굴이 빛나게 만들어주는 게 사실은 최고 설득 방법입니다.


설득당하면 기분 나빠집니다. 내 의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저는 누가 만든 의견인지 모를 정도로 의견이 전부에게 녹아 있을 때 성안 하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해야 공동의 안이 되기 때문입니다. 회의장에서 설득할 필요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관철하기 전에 설득

저는 제 뜻을 관철시키려고 회의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회사에서 민주주의를 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저는 회사 조직은 ‘민주주의’를 흉내 낼 수 있지만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과 민주주의는 전혀 다릅니다. 회사 정책은 CEO가 결정합니다. 주변 사람은 CEO가 결정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임무입니다. CEO가 결정하기 전에 문제가 있으면 여러 가지 의견을 내서 CEO가 잘못 결정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CEO가 결정하면 주변은 그냥 따라야 합니다.

‘CEO는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걸 해야 한다’는 주장도 꽤 있습니다. 남들이 다하는 생각을 해서는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남들이 다하는 걸 하는 정도면 왜 그 사람이 CEO를 해야 합니까? 아무나 하면 됩니다.


부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서원들이 모두 동의하는 정도 수준 사업은 다른 사람이 이미 다 했다고 봐도 됩니다.


그런 점에서도 리더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서 집행한다기보다 다른 사람을 능가하는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부하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회사는 분권도 하지 않습니다. 감사도 주주총회에서 결정하고, 주주총회는 주식수가 지배하는데 무슨 분권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회사에는 애초부터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제가 간부교실을 하면서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고 부하를 이끌고 가는 사람이라는 말을 계속하니까 거북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CEO 리더 관련 안내서를 한번 훑어보십시오. 거의 100%, 리더는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리더는 여러 사람 의견을 모아서 좋은 의견을 취합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바둑 프로 9단 5명을 모아도 인공지능을 못 이겼습니다. 바둑 1단 100명 모아서 상의한다고 바둑 9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저는 간부교실을 통해 조직은 독재라고 말했고, CEO에게 회의는 의견을 모으는 곳이 아니라 의견을 관철시키는 통로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강압이다, 독불장군이다 하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입니다. 이 본질을 관철시키는 과정은 전혀 별개입니다.


저는 제 의견을 관철시킵니다. 다 반대해도 저는 합니다. 저는 최종 결정권자이고, 회사가 실패하면 제가 제일 크게 책임져야 합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거의 100% 은행 돈을 쓰게 됩니다. 은행 돈을 쓸 때는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을 합니다. 망하면 융자를 혼자 다 감당해야 합니다. 그 책임은 누구도 나눠지지 않습니다. 냉정한 현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그런 책임을 지냐고 하지만 저는 제가 원해서 집니다. 그리고 그만큼 권한을 가지고 일합니다. 책임의 크기만큼 권한이 있고, 그 권한으로 다 반대해도 저는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지켜봤습니다만 저는 관철시키려고, 여러분보다 훨씬 더 노력합니다. 설득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교육합니다. 전언과 간부 교실도 그 노력의 일환입니다. 조직 내 밴드에 가장 많은 글을 쓰는 사람도 저고, 조직 바깥 SNS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사람도 저입니다.


저는 제 뜻을 관철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 뜻을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제 뜻이 올바른지,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설명할지를 끊임없이 검토하고, 또 주변 의견도 듣습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는 점은 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단어에 매달리면 관철시킨다는 건 밀어붙이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관철시키더라도 상대로 하여금 납득하게 한다고 생각하면 전혀 다르게 됩니다.


저는 전언을 쓰고 또 간부 교실 자료도 원고로 작성합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 정리하려면 진이 빠집니다. 저는 이렇게 회의를 준비합니다. 이게 관철시킨다는 현상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하는 설득 과정입니다.

지휘자는 갈 길을 제시하고 무리로 하여금 그곳으로 가도록 이끌고 또 밀어주는 사람입니다. 지휘자에게 회의


매거진의 이전글 한, 일, 중 티쿤 법인은 이용사 모집에 집중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