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박물관 내외부에서의 업무들
영국박물관 한국 전시실에서는 매년 2월과 7월에 전시가 교체된다. 전시를 대대적으로 교체하기보다는 일부 작품을 요리조리 바꿔서 그때의 콘셉트에 맞게 기획하는 정도이다. 그마저도 해당 연도의 큐레이터가 누구냐에 따라 구성, 내용,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내가 일할 때 큐레이터 선생님은 한국계 미국인이셨는데, 외부인의 시선에서 한국의 것을 바라보는 감각을 가지셨던 것 같다. 이미 한국 문화에 스며든(?) 내가 볼 때 식상한 것이 외국인의 눈에는 흥미롭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 즉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처음 느꼈다.
난 2018년 올림픽을 주제로 한 전시 기획에 참여했었는데, 태극기, 오륜기, 호돌이 등등 귀여운 작품이 대거 출품되어 인기가 많았다. 작은 전시실을 운영하는 터라 큐레이터의 역량과 감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세계적인 기관에서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첫인상이 되어줄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국가의 지원이 있으면 참 좋겠지만, 아직 이곳까지 닿을 힘과 여력이 부족한 듯하다.
전시를 기획하는 일 외에도 참 많은 일들이 이곳에서 일어난다. 박물관은 전시를 통해 유물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직접적인 교육을 통해 한 문화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전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소장품 중 일부를 학생, 연구자들에게 보여주는 작품 핸들링 세션(object handling session)이 있다.
이러한 과정 덕분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단순히 책에 국한된 평면적 공부가 아니라 작품을 실제로 보고 빛, 기형, 크기, 느낌 등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교육을 하게 되는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도 조금 더 박물관을 방문하는 문화가 발전하고, 학생들의 태도가 확립되어 안전하게 이러한 현장 교육을 많이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어릴 때는 이와 같은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요즘은 박물관을 단편적으로 관람하는 것 외에도 이처럼 생생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지 잘은 모르겠다.
한 번은 핸들링 세션의 일환으로 현대 작가의 옻칠 공예 작품을 소개한 자리가 있었다. 소수의 신청 인원을 대상으로 이뤄진 과정이었는데, 2018년 콜렉트(Collect)라는 공예 페어 차 런던을 방문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분들의 협조로 직접 작가분을 모시고 흥미로운 시간을 가졌었다. 옻칠 공예를 하는 작가였기 때문에 유사한 맥락의 나전칠기 작품들도 함께 소개하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한국의 전통문화의 맥을 짚어보는 자리여서 나에게 조차 너무나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다음으로 갤러리 토크(Gallery Talk) 시간이 있었다. 이는 큐레이터가 직접 갤러리를 돌며 전시 기획 의도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시간이다. 한국 전시실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이집트 등 여러 관에서 갤러리 토크를 진행하는데 참여하는 인원수에 따라 각 전시관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국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매번 참여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이외에도 전시와 관련된 업무로는 사진 촬영, 작품 연구,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소장품 관리시스템 업데이트 등이 있었다. 특히 사진 촬영의 경우, 간단한 작품들은 직접 촬영하기도 했지만 역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나 크기가 커서 촬영이 어려운 작품의 경우 촬영팀의 협조를 받아 전문 사진 촬영을 맡기기도 했다. 당시 병풍 보존 프로젝트가 이뤄지고 있어서 2m에 달하는 대형 병풍을 전문 유물 핸들러들과 함께 운반하는 일이 많았는데, 오래된 작품을 다루다 보니 옷이 상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능숙하게 작품을 다루는 동료들 덕분에 적은 힘으로 안전하게 유물을 옮길 수 있었고, 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작품을 실제로 다루다 보니 전시공간에 놓일 때는 볼 수 없는 부분을 볼 수 있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한 번은 삼국시대 토기의 내면에 1887년 기록된 메모를 볼 수 있었는데, 이러한 내용이 석사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직까지 내가 연재하고 있는 글에서 영국박물관의 열악함(?)에 대해 논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박물관에는 두 가지 대표적인 열악함이 있었다. 첫째는 화장실이 각 층마다 없다는 점과 두 번째는 정수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이것 말고도 에어컨이 없는 공간이 많아 탁상용 선풍기를 사용해야 하는 점도 있었지만, 영국의 여름은 한국처럼 극한의 폭염이 별로 없기 때문이 대체로 잘 버틸 수 있었다.
관람객이 다니는 전시 공간의 경우 화장실이 여러 곳에 위치해 있지만, 큐레이터들은 후미진(?) 곳에 업무 공간이 배치된 경우도 많기 때문에 화장실이 없는 층, 혹은 위치에 있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른 층을 가거나 계단으로 빠르게 이동해야만 했다. 특히 한국 큐레이터 연구실은 1층 후문 쪽에 있어서 화장실을 가려면 두 층을 더 올라가야 했다.
또 한국처럼 정수기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브리타(Brita)를 사용하거나 물을 끓여 차를 종종 마시곤 했는데, 난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매번 물을 사서 마셔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의 물리적 열악함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내용, 본질이 타 공간에 비할 바 없이 우수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누구보다 열심히 잘하려고 노력했고 작품 연구에 진심을 다 했다. 이러한 연구자(큐레이터)들의 연구 성과를 들어볼 수 있는 세미나 과정도 있었는데, 박물관 직원이라면 누구나 참관할 수 있었다.
또 중앙 입구(Great Court)에서는 매년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가 펼쳐졌는데, 2017년에 한국도 추석을 기념한 행사를 했다고 한다. 언젠간 동시대 한국 대중음악 K-pop과 전통 국악, 풍물패가 어우러진 성대한 공연을 펼쳐볼 기회가 생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가 오면 기회를 잡으려고(?) 여러 국악 그룹을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 중이다. 제발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보존 및 복원은 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야이지만 그만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별도로 소개하고자 한다. 영국박물관에는 WCEC(World Conservation and Exhibitions Centre)가 있다. 최고의 과학 기술을 통해 전시와 연계된 보존 및 복원 작업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영국박물관 내에서 가장 최근에 증축된 건물로, 2014년에 완공되었으며 고전적인 다른 공간들과 달리 모던한 느낌의 외관을 지닌 점이 특징이다.
사실 내가 가장 자주 일했던 곳은 WCEC가 아니라 히라야마 스튜디오(Hirayama Studio)라는 동양 회화 보존 및 복원 전문 연구 공간이었다. 주로 중국, 일본, 한국 세 국가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인데, 이외에도 중동 문화권 지류 작품을 보존하기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보존 및 복원 작업을 위한 다양한 도구가 즐비해 있고, 종이를 건조할 수 있는 나무판, 한지를 비롯한 수많은 종이들이 공간을 가득 채운 곳이었다. 박물관의 외곽 한 곳에 조용히 위치해있기 때문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아니고는 잘 모를 것 같았다. 히라야마라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 공간은 1994년에 이쿠오 히라야마(平山 郁夫)*라는 일본 작가의 후원에 의해 설립되었다. 문득 기억하기로는 이곳은 원래 은행이었으나 폐쇄된 후 보존 스튜디오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 Ikuo Hirayama 내용은 다음 링크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Ikuo_Hirayama)
유럽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호기심과 짝사랑(?)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 같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동안 각종 유럽 사람들에게 지긋지긋하게 'Zen'(선종불교의 선)이라는 단어를 들었고, 수행과 명상을 마치 대단한 주술 행위인양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히라야마 스튜디오에도 프랑스에서 일본 회화 보존 작업을 전공한 동료가 한 명 있었는데, 주말마다 부모님과 함께 젠 명상을 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산마다 사찰과 불상이 있고, 심지어 도시 곳곳에도 절이 있어 불교가 일상처럼 스며들어있지만 서구인에게는 어떤 위대한 수련의 기회처럼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일본은 꼼꼼하고 세심하게 작업하는 것은 기본으로 잘하지만, 일련의 작업을 화려하게 과시하고 뽐내는 퍼포먼스(?)도 수준급의 실력을 보였다. 묵묵히, 조용히 일하지 않았다. 모든 작업에 과정 발표회가 수반되었고, 박물관에서 일본에 관심이 조금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불러다가 엄청나게 큰 행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이러한 노력이 일본이 지닌 강점을 더욱더 크고 대단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시도 과시지만, 사실 일본은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작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치밀함은 얄미우면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영국박물관은 입장료 수익이 없고 영국 외 문화권의 유물을 다루는 공간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해당 국가의 지원에 의해 유지되고 개선된다. 한국 전시실도 한국의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중국과 일본의 금전적 지원 규모와 시간의 투자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일본의 복원·보존 작업은 한 회사에 의해 후원되는데 그 역사가 아주 깊다. 오랜 후원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앞서 말한 일본의 치밀함이 큰 몫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후원을 단편적으로 하기보다 장기간에 걸쳐 철저하게 진행한다. 영국박물관의 일본 회화 보존 프로젝트의 공식 명칭도 스미토모 프로젝트(Sumitomo Project)로 동명의 일본 기업에서 후원해왔다.
내가 일하던 2018년에도 장황(mounting) 전문가와 함께 회사 측 담당자가 방문하여 프로젝트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얼마만큼 진행하였는지 등을 직접 워크숍을 통해 공유했다. 이는 단순히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었는가를 확인하러 오는 것뿐만 아니라, 박물관 측에 후원 기업이 프로젝트를 방임하지 않고 철저히 신경 쓰고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작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일본의 철저한 태도를 보고 좋은 것은 수용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전략을 영악하게 취해야 할 텐데, 그저 일본의 그릇됨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전시와 보존 등의 작업이 이루어졌다면, 연구의 일환으로 외부 출장도 왕왕 있었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 몇 가지만 공유해보고자 한다.
먼저, 대표 경매회사 중 하나인 런던의 본햄스를 다녀온 경험이다. 4-5층 정도의 건물에 층마다 일본, 중국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와 큐레이터 선생님, 보존가 선생님은 당시 출품되어 있던 한국 수묵화를 직접 보기 위해 함께 외근을 다녀왔었다.
여기서도 유럽의 (영국의) 일본 사랑을 엿볼 수 있었는데, 워낙 수량이 많은 중국 작품이 많은 것과는 별개로 일본 작품이 굉장히 많았다. 그에 반해 한국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병풍 보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작품들의 족자와 장황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일이 많았다. 일례로 보존가 선생님과 함께 파리 기메(Guimet) 동양미술 박물관에 방문하여 한국 회화 한 점을 직접 분석한 일이 있었다.
영국에 있으면서 파리는 두 번밖에 못 가보았지만, 갈 때마다 파란 런던과 다른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파리만의 느낌이 좋았다. 물론 오래 있어보지 못해서 내막은 잘 모르지만 짤막하게 방문했던 나의 느낌이 그러했다.
영국박물관 내부를 누비며 다닌 것도 모자라서, 기메 박물관의 내부까지 가볼 수 있었다. 2018년은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분명하다. 3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모든 일이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떠오르니 말이다.
기메 박물관에서 한국 소장품을 담당하시는 Pierre Cambon 선생님과 연이 깊은 보존가 선생님 덕에 기메의 소장품을 직접 볼 수 있었고, 사진 촬영과 작품 분석도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영국박물관에서의 시간은 단지 박물관을 경험하게 해 준 것뿐만 아니라 영국박물관과 관련된 수많은 유럽의 우수한 기관들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영국에서 일한 시간이 더 길었다면, 더 많은 경험을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더할 나위 없이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영국박물관에서의 시간이 내게 준 소중한 자산들에도 불구하고,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고 했던가? 이 자산은 어리석고 모자란 나에게 일종의 독이 되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 좋은 경험은 한편으로 내게 어려움을 줄 수밖에 없었을까?
다음 편에 계속.
※ 본 글은 철저히 작성자의 경험과 상황에 입각하여 쓰인 글로, 주관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주어진 현상에 대한 절대적 정답이 아닙니다. 저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은 참고용으로만 봐주시고, 재미로 봐주시는 분들께서는 부족한 글이지만 어여쁘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생산적이고 유용한 피드백에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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