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바리스타 도전기

by 수집가

처음 안경사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안경원을 차리고 싶었다.


이천구년, 주오일제 도입으로 이십 명 이상의 사업장이 권리를 보장받고 있을 때,

오전 아홉 시부터 밤 아홉 시까지, 주 육 일을 안경원에 갇혀있어야 했던 나는,

난 절대 저런 사장이 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되뇌며,

그 누구보다 빠르게 안경원을 차리고 싶었다.


돈이 필요했다.

백오십만원 남짓 되는 월급을 모아 일 년 만에 천만 원을 만들고,

월세가 아까우니 저렴한 전셋집에 들어가겠다며 부모님께 손을 벌려

이천오백만원짜리 반지하 전세방을 구했다.

이천십년, 갓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사회초년생의 아들이 기특했으리라.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고, 해가 지나 월급이 오르니 여유가 생겼다.

안경원과 집을 오가는 패턴 속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궁리만 하고,

최저시급에도 못 미치는 안경 일이 점점 더 싫어지기만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그렇게 방황이 시작됐다.


새로운 일을 구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별다른 이력도, 특별한 요령도 없이, 근자감으로 가득 찬 새파란 나를

기꺼이 받아주는 곳은 단순 아르바이트 뿐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이곳은 혹시 다를까 싶어 다시 다른 안경원에 들어가길 반복하며,

그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단단한 강판에 갈리는 파마산 치즈처럼,

이렇게, 저렇게 갈려버린 내 마음은 점점 모가 많아지기 시작했고,

홀로 치열했던 내게 남은 건 구차한 자존심뿐이었다.

삼십대를 눈앞에 두고 있던 내게 호주 워킹홀리데이가 눈에 들어왔다.

호주는 비자 자격 제한도 없고, 최저 시급도 높아 열심히만 하면 큰돈을 벌어올 수 있다는 얘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떠나기로 했다.


호주에서 삼 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많은 경험과 작은 종잣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왔고,

고향친구들의 도움으로 친구들과 함께 안경원에서 다시 일하게 됐다.

안경원을 피해 호주까지 다녀왔건만 결국엔 다시 안경원이라니,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여서, 가족들과 함께여서 맘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이랬다면 나는 안경원을 일찍 차렸을까?


글쎄? 안경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게 분명하다.

경영난으로 자릴 비워주고, 진정한 나의 길을 찾아 2년간 국가지원을 받으며 창업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과정은 마치 다시 대학에 입학한 듯했다.

그 안에서 만학도였던 나는 이제 막 사회초년생인 친구들의 재기 발랄한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꼰대의 마인드를 풀풀 풍겨내고 있었다.


전문대학을 나온 나에게는 '사년제 대학을 다녔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싶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문제에 관해 토론과 조사, 해결방안을 탐구해내고, 그것을 더 좋은 방법으로 표현해내기 위한 방법들을 배우고, 다양한 정보들을 공유하는 정말 좋은 배움이었다.

하지만 창업의 길은 멀고 험하다는 의견을 받았고, 창업에 대한 내 마음은 쪼그라들어갔다.


이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상남자인 나는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오래 좋아하고 있었기에, 가전제품판매매장과 자동차판매매장 두 곳에 지원했고, 운 좋게도 두 곳 모두 합격하여 선택의 기로에서 서게 되었다.

처음에는 안정적인 가전제품판매장을 갈까 했었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전의 안경원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이동과 시간이 자유로운 자동차판매매장을 선택했다.


선택은 옳았다.

고정적인 급여는 없어 초반에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차량을 판매해 수익을 창출해낸다는 자영업자적인 구조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어려운 만큼 더 큰 보상이 따른 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이게 자영업자의 느낌일까?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조금 생겨난 지금, 나는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기 위해 바리스타 수업을 들으려 한다.

전세계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카페 창업의 꿈이다.

멋진 음악과 편안한 공간 속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며 유유자적을 꿈꾸지만, 현실은 장사가 안돼 문을 닫거나, 온종일 사람에 치여 커피만 내린다는 카페 말이다.

큰 욕심은 없다. 작은 내 공간을 갖고, 일상에 작은 맛을 더해줄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매운맛이든, 달콤한 맛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