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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세트테이프

by 돌돌이

어젯밤엔 잠이 오지 않았다. 코로나 확진이 되고 컴퓨터 방안에서만 있었으니 크게 체력 소모가 없었는지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잠이 들었다. 웹툰을 보고 넷플릭스를 보다가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의 영상들을 보다가 90년대, 2000년대 가요를 듣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썩 맘에 들었다. 난 1985년 생이고 아날로그와 디지털과 스마트한 세상을 전부 경험하고 있다. 포스트디지털세대이기도 하고 N 세대이기도 하고 MZ 세대의 아주 끝에 걸려 있기도 하지만 우선 내가 경험한 아날로그를 이야기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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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마이와 파나소닉 카세트 기계는 중학생인 내 사춘기를 채워준 고마운 친구들이었다. 휴대용 카세트 기계를 잃어버렸을 때 느꼈던 그 슬픔은 지금도 기억날 만큼 카세트테이프에서 울리던 노래와 라디오는 학교와 학원을 마친 중학생이 즐길 수 있던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정현, 차태현의 라디오 방송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당대의 스타가 라디오 DJ를 했었다. 매일매일 듣는 그들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게 삶의 큰 낙이었다. 방송을 듣다가 방송 중간에 나오는 노래들을 녹음하기도 했는데 노래가 다 끝나기도 전에 광고 소리가 들리거나 노래 중간에 DJ 멘트가 들릴 때면 녹음 버튼을 끄고 한탄하기도 했다. 내가 녹음한 만큼 카세트테이프는 그 사운드를 그대로 간직했었고 광고와 DJ의 멘트 또한 그대로 흔적을 남겼다. CD 플레이어보다 카세트테이프가 좋았다. CDP는 라디오가 안된다는 단점이 있었고 특정 노래를 듣기 위해 테이프를 감는 시간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앨범을 처음부터 다시 듣고자 한다면 카세트는 테이프가 감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금처럼 터치 한 번에 원하는 노래를 바로 재생할 수 있었던 것은 MP3가 창궐하고 나서부터이다.


카세트테이프를 꺼내서 내가 좋아하고 듣고 싶은 노래의 트랙을 듣기 위해 테이프가 감길 때까지의 기다려야 하는 과정을 지금은 경험할 순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기다림이 필요했으며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카세트테이프 방향을 돌려가며 혹여나 흠집이 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카세트를 만지던 그때의 감성이 그립다. 카세트테이프가 감기는 소리를 들으며 한쪽 면이 다 감기고 나서 자동으로 재생되기 전에 트랙이 녹음되지 않은 짧은 공백의 순간이 있다. 1번 타이틀곡을 기다리며 기다리던 즐거움은 지금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재생이 안되며 늦는다며 답답해할 것 같다. 지금의 나도 당장 재생되지 않으면 답답한데 요즘 친구들은 오죽할까. 테이프에 담긴 트랙을 따라가며 듣는 순간보다 테이프가 감기고 자동 재생될 때 노래가 나오기 전에 비어있는 테이프 공간의 재생 소리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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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노래를 지겨워질 때까지 듣기 때문에 매번 같은 곡만 들어선지 테이프가 늘어나곤 했었다. 수백수천 번을 듣다 보면 카세트의 음질이 엇나가고 망가지는데 그때쯤 듣던 곡에 대한 집착이 풀리는 것 같았다. 테이프의 고장이 나야지만이 내가 그 곡에 대한 애정을 전부 표현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크게 듣다 보니 부모님이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방에서 노래를 들었던 적이 많았다. 어머니는 귀 상한다며 노랫소리를 낮추라며 신신당부를 했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당시의 노래들은 내 사춘기의 지분에 5할은 족히 차지하고 있는데 내가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건 당연한 결과이다. 지금은 데이브레이크가 리메이크한 모노의 노래 '넌 언제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름다운 가사와 부드러운 선율이 너무 좋다. 코로나 시국은 나에게 노래방을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정말 코로나 증상으로 목이 아파서 노래를 못 부르고 있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귤을 까먹으며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실없이 낄낄거리던 모습이 생각난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을 해야 한다며 뒤늦게 부랴부랴 테이프를 찾는 내가 떠오른다.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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