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이었다. 유희열이 쏘아 올린 작은 공에 90년대의 수많은 가수들의 민낯을 보게 된다. 내가 즐겨 듣고 사랑해 온 노래들은 일본과 미국의 유명 가수들의 노래였다. 작곡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노력한 그들의 열매를 훔쳐 다가 싱어송라이터와 천재 뮤지션으로 불리며 우리나라 대중음악시장의 카르텔을 만들었던 그들. 피아노 건반은 12개이고 그중에 비슷한 음과 배열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속도나 느낌만 살짝 바꾸고 작곡자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 넣었던 그들의 파렴치함에 치가 떨린다. 교수를 하고 유명 프로그램의 패널을 하고 예능의 한자리를 차지한 채 전문가 행세를 하던 그들. 좋은 명곡을 소개해 주는 DJ이라는 측면에서 그들은 전문가가 맞긴 하다.
60년대와 70년대에 번안곡으로 부른 가수들이 존경스럽다. 그들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살짝 손만 보고 내가 만든 창작품이라며 거짓말을 일삼는 그들과는 달랐다. 남의 창작물을 표절해서 만든 노래와 음악으로 저작권을 받아 왔으니 유희열의 이야기가 터져 나올 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작업물들이(창작물이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 들통날까 봐 노심초사했겠지? 아니면 애초에 신경 쓰지도 않고 여전히 저작권료를 노후 연금처럼 생각하며 자신의 지휘를 누려가며 대중문화의 카르텔을 더 공고히 했던 걸까? 수많은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이들에 대해 제대로 된 논평조차 하지 않는다. 뭐가 무섭고 뭐가 두려운 걸까?
그들은 한배에 탄 선원들이다.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들을 함께 기만해 왔다. 정말 몰랐을까? J pop을 자주 듣던 중학교 친구는 우리나라 노래는 전부 일본 노래를 베낀 거라고 했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그 친구의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일본 노래를 듣고 일본 애니와 문화를 일찍 접한 친구였고 왜놈이라며 장난치며 놀렸던 내 중학교 시절이 밉다. 당시의 편협한 사고도 문제가 되지만, 그 친구가 했던 말들은 전부 사실이었는데 믿지 않고 헛소리라고 치부했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시디가 튈 때까지 반복해서 들어왔던 가수들의 작품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
유희열 덕에 야마시타 타츠로라는 가수를 알게 되어 좋은 노래를 감상하고 있다면, 김현철 덕에 T-square의 수많은 곡들을 밤 지새워 듣고 있다. 그가 만든 수많은 곡들의 표절 의혹이 유튜브를 통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명곡들을 찾아준 까닭에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좋은 음악들을 알게 된 것 같아서 좋다. 서태지, 김현철, 시나위(신대철), 토이(유희열), 김종서 등 내가 직접 매장에서 앨범을 사고 반복해서 들어왔던 가수들이기에 배신감이 더 크다. 당시엔 그렇게 했다고 해버리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대놓고 베껴놓곤 레퍼런스란 이름으로 코드와 진행을 복사한 작업물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내뱉어 온 모습들이 역겨워서 그런다. 언급된 작곡가들 중에선 자신의 작곡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놈은 한 놈도 없다. 변명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냥 철판 깔고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거겠지?
p.s
원곡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수많은 표절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