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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이랑 박시우중에 어떤 이름이랑 소개팅 하고 싶겠어

by 돌돌이

아들의 이름은 박시우다. 철학관에서 이름을 받아 왔는데, 8개의 이름 중에 선택한 것이다. 지금에서야 이야기해 보지만 아내는 ‘은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단다. 은우라는 이름은 8개의 이름 중엔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튼 여러 가지 이름들 중에서 내가 바라는 이름과 아내가 바라는 이름은 달랐다. 아내는 시우와 시후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고 나는 태원이와 창수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아들 이름을 정하는데 장난치는 거야? 태원이는 그렇다 치고 창수? 지금 박창수라고 아들 이름을 짓고 싶어?]


[시우나 시후, 서진, 서준 이런 흔한 이름보다 임팩트 있고 머리에 각인되는 이름이 더 좋지 않을까? 난 예전에 박태풍이라고 개명하고 싶었어.]


[그럼 오빠가 그렇게 이름을 바꾸면 되지 왜 아들 이름을 그런 이유로 짓는 거야? 그리고 태원이라는 이름도 너무 옛날 이름이야.]


[나는 창수라는 이름이 까일거 같아서 태원이를 선택한 거야. 박태원. 이름 멋진 거 같은데?]


[만약 시우가 커서(벌써 아내는 시우라는 이름을 낙점하고 있더랬다.) 소개팅이 들어왔어. 그런데 소개받는 여자애가 남자애 이름이 머냐고 물었을 때 어떻게 되겠어? 박태원이랑 박시우중에 어떤 이름이랑 소개팅 하고 싶겠어? 박창수는 애초에 논할 가치도 없고.]


아내의 주장엔 특별한 근거는 없었고 이유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창수라는 이름을 양보하고 태원이를 선택했는데 그냥 시우를 하겠단다. 사실 다수결을 해도 창수나 태원이라는 이름이 선택될 것 같진 않았다. 소개팅할 여자애의 마음까지 들먹이는데 더 할 말은 없었다. 내 마음도 시우라는 이름으로 기울고 있을 무렵,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전말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물었다.


[며느리가 하고 싶은 이름으로 해줘라. 네가 배 아파서 낳은 거 아니잖아.]


어머니는 아내의 편이었다.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내 편이 아니다. 나에게 용돈을 준 적은 없지만 아내에게는 꼭 용돈을 챙겨 준다. 그만큼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그녀에게 동질감과 고마움을 느끼나 보다. 의견이 이런데 내 주장이 먹힐 일은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들은 박시우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박창수라는 간지(?) 나는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P.S

만약 아들이 커서 창수라는 이름이 후보였다는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엄마 말 안 듣고 꼬장 부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내 어렸을 적 모습이 보인다. 창수로 바꾸겠다고 우기는 건 아닐까? 내 아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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