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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May 24. 2020

진혼


 노래를 듣다 보니 사뭇 가사가 와닿는 곡들이 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만남에서도 출세와 성공도 타이밍이 중요하고 노래를 받아들이는 순간의 내 감정 상태도 중요하다. 아무리 명곡에 멋진 가창력을 첨가해도 와닿지 않는 노래가 있는 반면 밑도 끝도 없는 가사가 내 가슴을 후벼파는 노래들도 있다. 랜덤하게 노래를 듣다가 이 노래 가사가 가슴을 후벼파서 더 깊게 음미하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다.


 첫 번째 곡으로 야다의 진혼을 꼽았다. 노래방에 가면 꼭 부르는 야다의 걸작 오브 걸작이다. 2000년 12월에 나온 곡으로 야다 2집 앨범의 타이틀곡이다.레퀴엠,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을 진혼곡이라고 칭하는데 네이버 사전에는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어 고이 잠들게 함'이라 적혀있다. 메인보컬 전인혁의 강렬한 목소리와 강렬한 기타 리프가 노래를 이끌어 가고 있다. 가사를 뜯어보자.


진혼


내일이면 눈뜨지 않고

영원히 잠들길 바래

그대 없다면 내가 살아있어도

그건 죽은 거니까


->아마도 그대라는 사람이 없어졌나 보다. 그대가 없다면 살아있어도 죽은 거라며 그냥 눈뜨지 않고 잠들길 바라는 이 강렬한 사랑. 2014년에 '썸'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도 사랑의 방향과 크기를 가늠하는 정도가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지만 2020년인 지금은 더 가벼워졌겠지.


타고남은 나의 모든 것

그대의 곁에 뿌려 줘

못 다했었던 우리 사랑 나눌 수 있게

마지막 부탁이야


->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화장을 생각하고 있나 보다. 자신이 죽고 남은 모든 것을 그대 곁에 뿌려 달라고 했던걸 보면.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 또한 화장해서 저 멀리 뿌려졌을 가능성이 크지만 만약 그녀가 묻혀있는 곳이 납골당 근처라면 같은 납골당을 이용해 달라 정도로 해석해야 하나? 못 다했었던 사랑이라는 단어가 와닿는다. 더 늦기 전에 더 사랑해 주고 옆에 있는 그녀 또는 그와 사랑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아끼면 똥 되고 죽으면 끝이니까.


그래 죽는 날까지

같은 날에 하고 싶다고

우리 함께 약속 했었잖아

혼자 두고 떠나면 안돼


->결국 혼자 두고 떠나버렸다. 죽었겠지? 설마 그냥 차인 거 라면 이 노래의 주인공은 사랑에 미쳐 버려서 힘든 나날을 보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를 보내는 슬픔을 노래에 드러내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죽지도 않았는데 그녀 옆에 뿌려달라고 했었다면 미친놈일 가능성이 크다.


그대를 따라서 이 세상 떠나가려해

오 우리 사랑 영혼까지 함께 해

아름다웠었던 그 모습 아직 기억해

이 세상 빛이 사라진다해도 찾을 수 있어


->이 세상 빛이 사라진다 해도 찾을 수 있다니. 이렇게 멋진 가사가 나올 줄이야. 수많은 노래를 작사 한 하해룡씨의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오글거림, 중2병, 설명충 따위의 단어가 나오면서 낭만이 사라졌다. 좀 오글거리면 어때. 중2병스러운 모습이면 어때. 설명 좀 길게 해주며 이야기해 주는 박찬호가 어때서. 내가 보기엔 멋있기만 하고만.


그래 죽는 날까지

같은 날에 하고 싶다고

우리 함께 약속 했었잖아

혼자 두고 떠나면 안돼


-> 1절과 같은 가사


그대가 있는 곳 저 하늘 끝에 돌아가

왜 이렇게도 빨리 왔냐 묻거든

단 하룰 살아도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어둠의 끝에 있다 해도 나는 행복하다고

다시 떠나면 안돼


->단 하룰 살아도 함께 할 수만 있는 사랑. 아 가사를 눈여겨 보고 글로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함께 할 수만 있으면 어디든, 어디서든 행복하다는 그 말. 어둠의 끝이 죽음과 같은 깊은 심연이더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그 믿음.


 내가 정말 반성하는 점은 조건과 상황을 마주할 때 이런 맹목적인 믿음을 잃었다는 것이다. 중2병스러운 모습을 잃었고 그만큼 내 색깔을 잃었다. 빨간색과 노란색을 좋아하는 내가, 회색과 검정을 좋아하는 무채색의 남자가 되기까지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신중함을 얻은 대신 잃어버린 만용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리저리 갈팡질팡하지 않고 간 보지 않는 가사들은 20년이 지나도 멋지다. 썸이나 타고 간이나 보는 노래들은 좆이나 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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