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경실에서 일하는 인력만 해도 수천 명은 될 텐데

영상을 찍고 싶다

by 돌돌이


인스타에서 병원직원들이 연기하는 영상들을 재밌게 보고 있다. 팔로우하진 않았지만, 알고리즘은 내가 봤었던 것들과 비슷해 보이는 것들로 채워 준다. 멍하니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당시엔 힘들고 지옥 같았던 시간들도 돌이켜 보고 먼발치서 들여다보면 웃음이 나온다. 힘든 순간은 말 그대로 순간일 뿐. 순간이 지나고 찰나도 사라지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제 3자의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병원에서 일하는 수많은 직종도 마찬가지 일 테고 다른 곳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도 비슷할 거다. 시간이 지나서 단단해지는 것인지, 무뎌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받았던 충격과 두려움은 그때 존재할 뿐.


아무튼 병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상황에 대한 재연영상과 코믹 쇼츠를 보다 보니 왜 내시경실은 그러한 영상과 이야기가 없을까 싶다. 어딘가에도 있을 수 있지만,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도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시경실에서 얼마나 웃긴 일이 많은데. 흔히 수면으로 검사를 진행하기에 내시경실에서만 발생하는 일들이 많다. 그리고 생각보다 수검자들은 조용히 검사를 받고 검사를 진행하는 의료진도 별말 없이 진행한다. 나처럼 많은 말을 하고 주변 사운드를 채우는 사람은 다르겠지만. 영상촬영 계획을 이야기하자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가 답한다.


[아니요. 선생님. 저는 마음만 받겠습니다. 구독과 좋아요로 응원하겠습니다.]



생각보다 촬영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병원에서 한다고 하면 병원이 허락해 줄까? 로고가 나오지 않게 일과 후에 촬영을 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의 권태로움과 심심함 그리고 업무 긴장도 유지를 위해서는,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촬영이 될지, 다른 무언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스타에서 재밌고 공감되는 상황을 보면서 ’ 내시경실에서 일하는 인력만 해도 수천 명은 될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병원에서 일하고 있지만,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병동, 응급실, 중환자실, pa 등 각자 있던 곳에서 온 선생님들은 자신의 기본기와 지식을 사용해서 내시경에 임한다. 내가 모르던 관점을 배울 때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병동이나 ICU에선 pre, post care에 맞춰져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검사가 이뤄지고 어떤 시술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나의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 나름의 대본도 쓰고 연기도 해가며 영상을 찍고 싶다. 이곳은 힘도 필요하고 기술도 필요하고 체력도 필요하고 멘탈도 필요하다. 긴장 속에서 근무를 하다가 업무가 끝나면 툴툴 털고 끝나서 좋다. 인계 후에 전화가 오는 불상사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나는 올해도 고민만 할까 두렵다. 두렵기 전에 도전해야지. 이제 나이도 있어서 크게 부끄러울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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