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는 카시트조차 어렵다

by 돌돌이

무려 기계과 출신이란 게 무색할 정도로 난 알아주는 기계치다. 전자 기계는 기본적인 기능만 사용하고 있으며, 스마트폰도 알람, 전화, 카톡, 웹툰이나 웹서핑 정도로 사용한다. 엑셀과 한글 문서 강좌는 들을 때마다 새롭다. 나에게 얼리어답터는 새로운 인류다. 게임에서는 캐릭터를 만들고 종족을 선택하는 데 있어 능력치 보정이 있다. 예를 들어 전사 계열의 캐릭터는 마법 능력이 0에 가까운 것처럼 나라는 인간은 기계에 관한 능력치가 0에 수렴한다. 인간이 특정 분야에 재능을 나타내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 같은 소시민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편리함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출산휴가 당시 아내와 함께 기쁨이를 돌보고 있었다. 기쁨이는 내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듯, 출산휴가 기간 내내 밤새 울고 보채기 일쑤였다. 밤엔 자지 않고 오전에 자다 깨다를 반복했으며 그만큼 피로도는 쌓여가고 있었다. 이날도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예약되어 있었던 비형간염 2차 접종을 하기 위에 부랴부랴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전날에 카시트를 설치하는데 30분 이상이 소요된 것은 아내는 모르고 있었다. 남들은 3분 안에 설치를 끝마치는데, 난 설명서를 보고 접합부를 찾는데만 10분이 걸린 것이다. 설명서에 있는 그림을 파악하고 내 차에 동일하게 적용시키는데 20분이 소요됐다. 볕이 전혀 들지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온몸을 땀으로 샤워를 마친 뒤에야 겨우 카시트를 설치할 수 있었다.


KakaoTalk_20210614_234101672.jpg 카시트에 앉은 기쁨이


전날의 고된 학습으로 인해 병원 예약 시간보다 일찍 주차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기쁨이를 카시트에 태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혹여나 모를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카시트에 앉히는 것만 하면 되는데 무엇이 어려울 것이 있겠냐 만은,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카시트에는 [안. 전. 벨. 트]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카시트에도 안전벨트가 당연히 있었고 이제 생후 35일이 갓지난 기쁨이에게 딱 맞는 안전벨트의 고정은 필수였다. 아내는 차 옆에서 기쁨이를 안고 있었고 난 다시 카시트 안전벨트를 아기 몸에 맞게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줄이 길게 늘여져 있었더라면 기쁨이를 태우고 갈수 있었겠지만, 새 카시트의 안전벨트는 시트와 한 몸이듯이 딱 붙어있었다. 안전벨트를 여유 있게 늘리려고 해도 늘려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당겨도 안전벨트는 고정되어 있었고, 또다시 온몸이 땀으로 젖고 있었다. 아침부터 어제와 동일하게 땀으로 샤워를 하고 있을 무렵, 결국 아내는 한마디를 건넸다.


[인터넷에 한번 찾아보는 게 어때?]


유튜브에서 동일한 제품을 리뷰하는 영상을 찾아서 안전벨트를 늘리는 방법을 확인했다. 하지만 동일하게 해도 안전벨트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난 나 자신이 미웠다. 예방접종 시간은 다가오고 카시트의 안전벨트는 나에게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다. 결국 카시트의 안전벨트 위에다가 기쁨이를 앉혔다. 아내는 혹여나 기쁨이가 충격이 있을까 봐 카시트와 기쁨이를 꼭 안은 채 뒷좌석에 몸을 기댔다.


주사를 맞히고 카시트를 분리해서 집으로 들어와서 천천히 안전벨트의 줄을 늘렸다. 여전히 안전벨트의 줄은 뻑뻑했었고 주차장에서 시도했었던 방법으로 동일하게 줄을 동시에 당겨서 늘릴 수 있었다. 새 제품이어선지 아니면 불량이어선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안전벨트의 줄은 쉽게 늘려지지 않지만 기계치인 내가 모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리 기쁨이가 커서 카시트가 필요 없는 나이가 되면 굴욕과 고통의 시간을 선사해 준 이 카시트를 박살 내 버릴 거다. 저 멀리 던져버리고 망치로 부숴 버릴 거다. 이것이 기계치인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인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최소 5년, 그리고 기쁨이가 크게 되면 주니어 카시트가 새로이 등장할 것이다.


아오 속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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