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이 아니라 내 말에 공감을 해 달라고!

by 돌돌이

여: [해결책이 아니라 내 말에 공감을 해 달라고!]


새해 첫날부터 싸웠다. 정확히 말하면 새해가 되는 카운트다운을 같이 보고 저 멀리 송도해수욕장에서 불꽃이 터지는 것을 집에서 살짝 구경한 직후부터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0시를 넘은 시점이니 정확히 새해 첫날부터 싸운 것이다. 발단은 이렇다. 근 2년 가까이 치지 않은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치고 싶은 노래와 솔로곡들을 찾아보며 혼자 기분 좋게 노래를 듣고 고르고 있었다. 내가 어떤 노래가 좋을지 찾고 있었고 기타 연습을 해서 한 곡을 잘 치고 싶다고 말하자 아내는 한마디 툭 던졌다.


KakaoTalk_20220101_230943898.jpg?type=w1 집에서 본 불꽃놀이


여: [애나 잘 보지...]


기분 좋게 이야기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새해의 새 계획을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훅 들어온 한마디는 정말 기분이 나빴다.


남: [아니, 말을 왜 그런 식으로 해? 새해고 나도 하고 싶은 거 생각하고 이야기했을 뿐인데, 갑자기 그런 식으로 말을 왜 해?]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그냥 자신도 폰만 볼 뿐이었다.


남: [지금 내말 무시하나? 맨날 자기 말 안 듣는다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하는 말은 쌩까냐고?]


아내는 들릴 듯 말 듯 한목소리로 듣고 있다고 했지만 화가 가라앉진 않았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 [나도 하고 싶은 거 많고 피곤하고 힘든데, 오빠는 매번 일 마치고 오면 힘들다며 표정 굳어있고 졸리다며 밥 먹고 바로 졸고 자고 그러잖아. 시우는 같이 키우는 건데 내가 대부분 다 보고 있잖아. 애도 잘 안 보면서 매번 하고 싶은 건 많잖아.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남: [갱이 힘든 거 알고 있고 나도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데, 난 그냥 새해를 맞이해서 하고 싶은 게 생겼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혼자 이야기한 거야. 그런데 내가 새해 첫날 0시가 딱 지난 순간부터 '애나 잘 보지'란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해? 나도 일하고 피곤해서 골골대는 거고 힘드니까 밥을 먹고 졸게 되는 거야. 나도 피곤해서 그렇고 지치니까. 갱이 힘들어하고 지쳐하니까 내가 육아휴직 써서 시우같이 본다고 했잖아. 근데 그건 싫다며?]


여: [정말 내가 힘든 거 알아 주긴 하나? 하루 내내 시우랑 같이 있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서서 대충 때우는데 오빠는 오빠 생각만 하잖아. 집에 와도 피곤하다며 시우랑 제대로 놀아 준적 있어? 시우도 아빠랑 놀고 싶어서 달려가는데 오빠는 졸거나 핸드폰 보고 그랬잖아. 그리고 오빠가 와야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있고 손도 바꿔서 씻을 수 있는데 오빠는 피곤하다며 졸거나 웹툰 보고 있고 시우는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잖아. 나 혼자 시우 키워?]


남: [그래서 내가 해결책을 제시했잖아. 새해에는 주말에 내가 더 시우를 보고 갱이 자유시간을 줄게. 피곤해 하니까 들어가서 쉬어. 내가 시우를 볼테니까. 그리고 진짜 힘들어하니까 1년까진 아니더라도 몇 달간 육아휴직 써서 같이 본다고 했잖아.]


여: [해결책이 아니라 내 말에 공감을 해 달라고!]


아내의 목소리가 커지고 싸움은 더욱 감정적으로 변해갔다. 사실 아내가 요즘 막말을 하고 나에게 말을 거칠게 하는 것에 대해 나도 불만이 쌓여있는 상태였다.


남: [매번 갱이에게 공감해달라고 하지? 그러는 난 공감 안 해주나? 왜 막말해? 요즘 내가 제일 자주 하는 말이 뭔지 알지? '왜 말을 그렇게 해?'잖아. 정말 말을 왜 그렇게 해? 내가 호구야? 내가 만만해? 왜 나한테 말을 그렇게. 사람 무시해? 나도 퇴근 후에 설거지에 집안일 다 하잖아. 왜 매번 시우 혼자 보고 혼자 육아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해? 퇴근 후에 나도 피곤하고 지쳐 있는 상태야. 같이 밥 먹고 시우 돌보잖아. 부족하다고 느끼고 폰만 본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막말을 해? 내가 이야기했었지? 무언가를 얻고 싶으면 공손하게 이야기하라고. 매번 명령조에 기분 나쁘게 무시하듯이 말하면 내가 하고 싶겠어?]


여: [내가 오빠한테 좋게 말하면 오빠는 절대로 안 들어 주잖아. 예전에도 그랬었고 아무리 좋게 달래도 안 해주잖아. 그래서 내가 울고 화를 내고 말을 못돼 게 해야 겨우 들어주는 척을 하잖아.]


남: [아니, 그러면 정말로 말을 부드럽게 최소 일주일이라도 하면 안 돼? 하물며 내가 행동을 고치는 일인데 한 달은 부드럽게 이야기해 보면 안 돼? 하루 좋게 이야기하고 내가 안 들어 준다고 말을 그렇게 한다고? 도대체 왜 말을 그렇게 해? 좀 부드럽게 해주면 안 되나? 내가 무시를 당해도 되는 사람이야? 내가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여: [그냥 화가 난다고. 시우를 하루 종일 보고 밥도 제때 못 먹고 밤 중간에 깨서 잠도 못 자서 매번 피곤하다고 하잖아. 오빠 일하느라 피곤할 거 생각해서 밤에 따로 자잖아. 근데 오빠는 퇴근 후에 또 피곤하다며 시우랑 안 놀아주고 폰 보다가 졸면서 시간 보내잖아. 나도 졸리고 나도 하고 싶은 거 많아. 왜 오빠만 매번 하고 싶은 거 해야 해? 나도 똑같이 시우보느라 하루 종일 피곤해 있고 매여 있다고.]


결국 아내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내는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고 나도 틀린 말은 없었다. 매번 아내가 하는 이야기는 같았고 나도 같았다. 분명 나도 화가 나고 할 말은 많았지만 더 할 순 없었다. 언제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 말투는 아내의 속을 문드러지게 하기 충분했다. 해결을 위해 명민한 답을 제시해도 아내는 시큰둥하거나 오히려 화를 낼 때가 많았다. 본인의 감정을 우선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분명 공감해 주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난 까먹고 본인의 특징이자 강점인 해결책 제시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시경을 할 때 출혈이 있으면 지혈 방법을 생각한다. 스텝이 고민하거나 확답을 내지 못한다면 어시스트를 하고 있는 내가 그 답을 해줘야 하는 것이다. 빨리 결정하고 선택을 해야만이 시간이 지체되어 생기는 불상사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보고도 중요하지만 선조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즉,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10년간 쌓여온 직업적 성향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남성의 특성이기도 했다. 공감을 우선해야 하는 여성과 해결책을 제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남성 사이의 간극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책 내용도 재밌었지만 제목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준다. 화성과 금성이라는 성분과 출신 자체가 다른 두 개체의 만남은 분명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물며 결혼이라는 사회계약은 수십 년을 따로 살다가 같은 공간 안에 살게 하는데 싸움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한 테두리에 묶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성향과 관점에 관해선 완전히 다른 종이라고 생각한다.


시우랑 주말에 더 많이 놀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1월 1일, 시우랑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며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아내는 만족했으며 아내는 제때 밥을 챙겨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화를 한 번도 내지 않았다.


결혼생활도 육아도 쉽지 않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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