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신용카드 복제, 저도 당해봤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by 이베리코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에 2년 동안 거주하면서 스페인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기업들을 컨설팅해주는 업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와 도시에 대해 자연스레 스터디를 많이 할 수밖에 없고, 다른 사람들보다 속속들이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업무 관련 내용뿐 아니라, 현지 생활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에게 늘 "비즈니스도 좋지만, 스페인은 소매치기도 많고 사이버 금융사기도 많기 때문에 항상 유의하시는 게 좋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스페인은 세계 최대 관광 국가이기 때문에 소매치기는 일종의 '직업'처럼 여겨지고, 내가 보기엔 허술한 사이버 범죄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그런 내가! 스페인에서 신용카드 복제 사기를 당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더니, 아주 보기 좋게 당해버린 것이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사기범들이 사기를 친 그 타이밍이 아주 완벽했다. 지난 1월, 나는 스페인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했다. 늘 그렇듯 스페인의 배송시스템은 아주 느리다. 그리고 한국과 다르게 배송 추적 시스템이 매우 불편하다. 송장번호로 배송 추적이 되긴 하지만, 그냥 마드리드 안에 있다고만 나올 뿐 정확히 내 물건이 어디에 있고 언제 도착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스페인 우체국(Correos) 명의로 문자가 와서, 나의 배송물품에 도로명이 적혀있지 않아서 계속 배송이 중단 되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문자메시지에 링크가 달려 있어서, 링크에 들어가서 우리 집 주소를 입력하라고 했다. 주소를 입력한 뒤, 재발송 비용 0.8유로 지출을 위해 카드 정보를 입력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입력을 했다.


이때만 해도 난 사기인 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링크에 들어갔을 때 Correos 로고와 홈페이지 디자인이 매우 유사했으며, URL에 Correos 단어도 들어가 있어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계속 소포가 오지 않았고 위와 같은 Correos 문자가 또다시 왔다. 내가 부재중일 때 소포가 배달이 된 줄 알고 또 입력을 했다. 참고로 스페인에서는 수령인이 부재중이면 배달부가 다시 소포를 가져가고, 다른 날에 재배송을 해준다.

사기 문자.jpg 도로명 기재 누락으로 배송 대기 중이기 때문에 정보를 업데이트하라는 사기 문자

그로부터 2일 뒤에 내가 시킨 물건이 도착했다. 링크에 정보를 입력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물건이 도착했기 때문에, 이때까지도 내가 사기를 당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로운 2월의 토요일 오전에 갑자기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알림을 보니 "Alfha Griff"라는 지출처에서 내 신용카드를 연속적으로 결제하고 있었다. 결제된 금액을 모두 합쳐보니 대략 90유로 가까이 되었다. 나는 스페인 대표 은행인 Santander 은행의 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곧바로 애플리케이션을 열어서 카드 정지를 했다. 고객센터에 전화하니, 그때 내가 Correos 홈페이지인 줄 알고 입력했던 정보가 사기범들에게 넘어간 것 같다고 했다. 다행히도 Santander 은행은 카드를 정지하는 순간 바로 새로운 신용 카드 번호가 애플리케이션으로 발급되고, 애플페이로 즉시 사용할 수 있어서 아주 편리했다.

사기 내역.jpg 소중한 돈들이 사기범 주머니로 마구 들어가고 있었다.

월요일에 회사 앞 Santander 은행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창구 직원은 은행에서 발급해 주는 서류를 갖고 경찰서를 가서 사고 접수를 하고, 경찰서에서 발급해주는 서류를 갖고 은행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한다. 안 그래도 업무 떄문에 바쁜 시즌인데, 이런 일까지 처리하려니 골치가 아팠다. 그래도 생각날 때 바로바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서둘러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마드리드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서에서 접수를 하고 내 차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소매치기를 당해서 오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관광객뿐만이 아니고, 마드리드 사람도 스마트폰, 카메라, 지갑 등을 소매치기당해서 신고를 하고 있었다. 경찰서 내부는 촬영 금지라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사이버 범죄, 소매치기 등 신고하는 창구가 마치 우리나라 은행 창구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와서 경찰에게 서류를 제출했다. 담당 경찰은 스페인뿐만 아니고 모든 유럽에 사이버 범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해주었다. 절대 모르는 사람이 보낸 링크는 누르지 말고, 신용카드나 개인정보는 절대 입력하지 말라고 했다. 이 멘트는 보통 내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해주는 말이었는데, 막상 내가 듣는 입장이 되니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역시 직접 당해보니 이런 걸 정말 조심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경찰서에서 발급받은 서류를 은행에 다시 제출했다. Santander 은행은 세계적인 글로벌 은행이라 그런지 이런 사기를 당했을 때 모두 결제 취소 처리를 해준다고 한다. 은행 창구 직원이 한국은 이런 유형의 범죄가 많이 없냐고 물어서, 고도로 발전한 보이스피싱이 많다고 알려주었다. 요즘엔 AI를 활용해서 목소리 변조까지 해서 사기를 친다고 하니, 그 머리를 좋은데 쓰면 사회가 더욱 발전할 텐데라고 수다를 떨었다.

은행 업무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바로 결제취소 처리가 되어 있었다. 스페인의 느리고 느린 행정처리로 인해서 2주는 걸릴 줄 알았는데 빠르게 조치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찰서 사진.jpg
환불.jpg
경찰서로부터 받은 서류를 은행에 제출하니, 바로 결제 취소를 해주었다.

이 사건을 겪은 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소매치기와 금융사기를 조심하라고 조금 더 목에 힘주어 말하고 있다. "제가 당해봐서 아는데요.."라고 말하면 더욱 신뢰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후로 소매치기 당한 한국 고객사와 같이 경찰서를 방문하였고, 내가 직접 해봤던 경험이 있어서 일처리를 빠르게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최근에 사이버 범죄를 당했던 일을 주위 동료들에게도 공유했다. 한 스페인 직원은 나에게 "Al mal tiempo, buena cara" 라고 얘기해주었다. 이 속담은 나쁜 시기에도 좋은 얼굴을 유지해라라는 뜻으로, 우리 말로 치면 어려운 상황에 닥쳤는데도 긍정적으로 잘 해결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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