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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경찰이 소매치기를 '안'잡는 이유

by 이베리코 Mar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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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살다 보면 여러 유형의 소매치기 사건을 듣게 된다. 해외 어느 곳이든 한국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지만, 스페인에는 유독 소매치기가 많은 것 같은 기분이다. 작년, 마드리드의 한 호텔에서 내 바로 옆에 있던 지인이 가방을 소매치기당했다. 호텔 로비에서 잠시 일 얘기를 하느라 잠깐 가방을 옆에 두고 있었는데, 불과 몇 분 사이에 누군가가 감쪽같이 훔쳐갔다. 지인은 가방이 없어졌음을 눈치챘고, 순간 나도 당사자보다 더 놀라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허둥지둥했다. 다행히 지인의 스마트폰은 주머니 속에 있었지만, 현금이 조금 든 지갑과 신분증, 집 열쇠 등을 모두 잃어버렸다. 피해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었지만, 지인의 씁쓸하고 찜찜한 표정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행사를 위해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마드리드 경찰들행사를 위해 도로를 통제하고 있는 마드리드 경찰들

지인과 같이 마드리드 경찰서에 찾아갔다. 경찰서에 들어서자 기다리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이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도 많이 보였다. 신고 접수를 위한 번호표를 받고 하염없이 우리를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신고를 접수하는 곳은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는 사무실 형태로 되어 있어 기다리는 시간이 더욱 지루했다. 한참을 기다려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경찰은 사건의 경위를 듣고 나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익숙한 듯 무덤덤하게 서류만 채워갔다. 이 정도 사건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범인을 잡겠다는 의지도 없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cctv를 보고 싶다고 요청하니, 피해자인 우리가 직접 CCTV를 보는 건 개인정보호를 이유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 가방을 훔쳐간 놈이 누군지 얼굴이나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해도 경찰만 볼 수 있다고 거절당했다. 경찰과 호텔이 협력하여 범인을 찾게 되면 연락을 준다는 공허한 약속만 들었을 뿐이었다. 물론 1년이 지난 지금 시점까지 당연히 경찰 측으로부터 아무 연락도 없었다. 이처럼 경찰이 소매치기 사건을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건 후, 스페인 동료 직원에게 물어보니 꽤나 합리적(?)인 이유를 말해주었다.


스페인에서 소매치기는 처벌 수위가 낮은 경범죄로 분류된다고 한다. 적은 금액의 절도는 범인을 잡아도 대부분 금방 풀려난다. 오히려 너무 강하게 처벌하면, 그들이 강도나 살인 같은 더 큰 범죄자로 변할 위험이 있어 일부러 어느 정도 눈을 감아준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에서는 늘 강력 범죄가 발생할 위험이 높기에 경찰의 인력과 자원을 더 중대한 범죄에 집중한다고 한다. 동료의 뇌피셜이긴 하지만 꽤나 그럴듯하다. 그래서 그런지 스페인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큰 테러나 대형 사고 발생이 적다.

마드리드에는 각종 스포츠 행사, 종교 행사, 기타 이벤트가 많아서 통제를 위해 동원되는 경찰이 아주 많다.마드리드에는 각종 스포츠 행사, 종교 행사, 기타 이벤트가 많아서 통제를 위해 동원되는 경찰이 아주 많다.

치안이 좋은 나라에서 익숙하게 생활한 우리 한국인들은 이러한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스페인에서는 '내 손을 떠난 순간, 내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여권과 스마트폰, 지갑은 꼭 몸에 밀착해 소지해야 하며, 방심한 틈을 타 당신의 물건을 노리는 소매치기가 있다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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