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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곳에서 Jan 31. 2024

[콜롬비아] 정복자 이름이 국가명이 된 나라

'콜롬비아'는 '콜럼버스'에서 유래한 국가명이다.

보고타에 온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나서야 이제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의 경비 아저씨들과도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농담도 하는 사이가 되었고, 이제 동서남북이 어딘지, 어디가 부촌이고 어디는 위험한 곳인지 등의 생활 지식이 쌓여갔다.


3년간 해외 주재원으로 나온 입장으로서, 콜롬비아는 나에게 단순 해외 근무지 이상이었다.

짧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는 나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였고, 직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심 밖인 이곳에 근무하면서 나의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국가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가장 먼저 든 궁금점은 '콜롬비아'라는 나라 이름의 어원이었다.


"설마 콜럼버스에서 유래된 건 아니겠지? 자신들의 조상과 문화를 짓밟은 정복자 이름을 국가명으로 지정하진 않았겠지..."


그러나, 콜롬비아는 콜럼버스(스페인어로 크리스토발 콜론)에서 유래한 것이 맞았다.

같은 식민지 경험을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명이 조선의 제1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로 불리는 것과 같은 정도일까?


하지만, 이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콜롬비아 원주민들이 무식해서 나라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도 아니었고, 스페인 지배 계층이 콜롬비아 독립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여 강제로 그렇게 국가명을 짓게 한 것도 아니었다.


조사를 해보니, 콜럼버스가 직접 예전의 콜롬비아 영토를 개척하고, 여긴 내 땅이야!라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고, 식민 지배시대에 크리오요(유럽인 혈통으로 식민지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세운 국가 '그란 콜롬비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란 콜롬비아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파나마 등 중남미의 광활한 영토를 아우르는, 당시에는 센세이셔널하게 탄생한 국가였다.(그 센세이셔널한 국가의 수도가 보고타였다!)


이를 정리하면, 결국 스페인 지배에서부터 독립 시 콜롬비아 토착민의 언어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결국 순수 스페인 혈통(Peninsular)의 지배 계층으로부터의 차별과 열등감을 느낀 크리오요들이 또다시 자신들이 지배하게 될 새로운 영토에 대해, 위대한 정복자의 이름을 따서 국가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중남미 국가별 주요 명소나 관광지에 이런 스페인의 흔적이 아주 많이 남아있고, 스페인 도시의 지명과 똑같은 곳을 흔히 볼 수 있다. 실제로 스페인의 식민 지배 기술 중 하나가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의 가장 신성한 곳에 성당과 광장을 중심으로 한 도시를 건설하고, 원주민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었던 질서 정연한 도로,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을 통해 경외감을 가지게 했으며, 그렇게 토착민의 정신을 장악해 나갔다. 스페인에게 있어 국가명, 도시명, 건축, 도시계획 등은 모두 원주민을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던 것이었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수백 년 동안 이 땅은 '콜롬비아'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고, 사람들 이름 역시 스페인식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처음 이 땅에 적응할 때는 단순히 이들이 무지하고, 스페인의 잔인함과 폭력성으로 인해 이젠 다시 자신들의 것을 찾지 못한 다는 것에 안타까움(애정)이 느껴졌지만, 이것은 나의 아주 오만한 생각이었다. 


지나간 봄을 생각하면 지금의 가을을 향유할 수 없다. 내가 만난 콜롬비아 사람들은 과거의 자기 조국의 아픈 역사를 이해하면서 수용하고,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 만난 사람들, 새롭게 접한 유럽 문화, 자신들의 정통성 등 모든 것이 뒤섞인 것이 현재의 자신이라는 점을 이해하였고, 나는 이런 시각을 갖고 중남미 국가들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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