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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 곳에서 Feb 07. 2024

[콜롬비아] 메데진에는 마약왕 투어가 있다.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나는 '나르코스' 시리즈의 광팬이다. 나르코스는 콜롬비아와 멕시코 카르텔의 시작과 번영, 몰락을 보여주는 사실에 기반한 드라마로, 마약 조직을 소통하기 위한 미국 마약단속반 DEA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Narcos'는 스페인어로 마약 거래상을 뜻하는 Narcotraficante 단어의 줄임말 Narco에 s를 붙여 복수형으로 표현한 단어이다.


나르코스 시즌 1,2 배경이 콜롬비아 메데진이다. 스페인어로 이 도시는 Medellin이며, 콜롬비아식 스페인어 발음으로 메데진이라고 읽는다. 사실 보고타 주재원으로 근무하기 이전에도 콜롬비아 메데진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그때 메데진의 매력적인 날씨와 친절한 사람들의 매력에 빠져, 언젠간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타에서 메데진 공항으로 이동한 뒤, 숙소로 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그 우버 기사가 나에게 나르코스를 봤냐고 물어봤다. 두말하면 잔소리이고, 나의 최애 드라마라서 드라마 속 배경을 여기저기 방문하고 싶어서 메데진에 왔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더니, 자기에게 6만 페소(그 당시 환율 기준 약 20 달러)를 주면 '프라이빗 나르코스 투어'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 기사가 전문 가이드도 아니고, 전문성에 대해 의심을 하였지만, 투어를 따로 알아보기도 귀찮고, 아침 일찍 도착해서 호텔 체크인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이 투어를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묘지였다.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의 묘지를 방문하는 것은 왕릉 이후로 처음이라 많이 낯설었다.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묘를 방문한다는 것이 뭔가 참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버 기사 겸 가이드는, 이곳에 뭔가 스토리가 있다고 하면서 나를 이끌었다.


마약왕의 묘지에는 그의 부모님과 마지막까지 그를 지키다가 함께 총에 맞아 숨을 거둔 경호원 리몬도 같이 묻혀있다고 한다. 마약왕이 서서히 몰락할 무렵, 여느 범죄 집단이 그렇듯 그의 동료들은 마약왕을 배신하고 팔아 넘기기 급급했다. 그러나 리몬은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지내면서 그를 돌보고, 지붕 위에서 총을 맞아 죽을 때까지 그와 함께 있었다. 근처에는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친척이자 오른팔이었던 구스타보 가비리아의 묘도 있었다. 그는 마약 사업을 총괄하고, 그나마 이성적인 사고로 조직 내 브레인을 담당하는 인물로, 드라마에서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구스타보가 죽고 파블로의 엽기적인 만행은 더욱 심해졌으며,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다음으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가난한 사람을 위해 공짜로 집을 지어준 마을인 Comuna 13에 방문했다. 언덕에 위치한 이곳은 아주 가난한 마을이었고, 여전히 힘든 삶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마약왕은 자신이 정치인이 되기 위한 물밑 작업으로, 마약으로 번 검은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현금도 뿌리는 행동을 하는 등 이미지 세탁을 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겐 그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 주민들에게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그저 먹고살기 힘든 나를 위해 도움을 주는 영웅이자 로빈후드 같은 인물이었다. 실제로 슈퍼, 세탁소, 카센터 등 모든 가게들이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벽화로 관광객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이 마을에서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주민들의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몇몇 주민들의 집에는 그의 사진이 걸려있고, 신을 모시는 것과 같은 종교도 있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그가 지어준 집 사진이다. 그는 동일한 구조의 집으로 하나의 '시범단지'를 만들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가이드에게 파블로 에스코바르에 대해 메데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그를 영리하게 돈을 번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희망이 없던 메데진 사람들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축구선수, 인플루언서, 가수, 영화배우처럼 자신의 능력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후에 내가 만났던 콜롬비아 사람들 사이에서도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일부는 천재라고도 하고, 누구는 콜롬비아의 국격을 심하게 훼손시킨 악마 같은 인물이라고. 그러나, 모든 사람이 말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넷플릭스라는 공룡 콘텐츠 기업이 콜롬비아가 그동안 '마약 소굴'이라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했던 많은 노력들을 다 부정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넷플릭스 나르코스 시리즈가 히트 친 이후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콜롬비아=마약 국가'라는 이미지를 다시 갖게 되었고, 그래서 콜롬비아 국민들은 넷플릭스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음으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거주했던 '모나코 빌딩'에 방문했다. 이 빌딩도 드라마에 나오는 곳으로, 당시 메데진 카르텔의 라이벌의 경쟁 조직이었던 '칼리 카르텔'이 에스코바르 암살을 위해 다이너마이트가 가득 찬 차량을 건물로 돌진시킨 곳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누가 죽진 않았지만, 마약왕이 끔찍하게 아꼈던 그의 딸의 한쪽 청력을 잃게 하였다.(그의 가족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도주할 때 딸이 춥다고 하자, 2백만 달러의 현금으로 불을 피워 따뜻하게 해 줄 정도로 아끼는 딸이었다.) 이 사건으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피의 복수극이 시작되고, 이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많이 희생당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이 건물은 폐쇄되어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가이드와 같이 잠깐 점심을 먹고,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최후를 맞이한 곳을 방문했다. 미국 마약단속국 DEA가 그의 전화 교신을 감지하여 그가 숨어있는 곳에 급습하자 창문에서 튀어나와 지붕을 뛰어다니며 도망치다 결국 이 작은 건물 지붕에서 총을 맞고 최후를 맞이했다. 현재 이 건물은 부동산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때 29조 원을 보유하여 포브스 선정 7위 부자까지 올랐던, 콜롬비아 국가 채무를 모두 갚아주겠다고 했던 그의 최후는 아주 초라했다.


마지막으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들어갔던 La Catedral에 방문했다. 미국은 마약왕을 자국 교도소에 송치하기 위해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였으나, 그는 미국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의지로 끝까지 저항하였고, 결국 자신의 활동구역인 메데진에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셀프로 입주하였다. 자세한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는 넌센스로 보이겠지만, 그가 이런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암살, 고문, 납치 등 모든 나쁜 짓을 다 하였고, 생떼를 부리는 아이처럼 행동하였다. 결국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콜롬비아 정부는 이런 조건을 들어주게 된다.


하지만, 말이 감옥이지 이곳에는 자신들의 부하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고, 아지트로 조성하여 매일 파티를 즐기면서 마약 사업을 계속 이어갔다. 이 감옥을 그는 La catedral(성당)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세상에서 가장 악인 중 한 명이 자기 자신을 신성시하는 그의 생각회로와 뇌구조가 궁금했다. 아무튼 이 감옥은 메데진 인근 높은 산에 위치하여, 자신을 위협하는 경찰, 군대, 경쟁 조직을 감시할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셀프로 만든 감옥에서 탈옥하게 된다.

그가 만든 셀프감옥에는 "역사를 모르는 자, 그것을 반복하는 죄를 받는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실제로 메데진 시는 이 건물을 철거하지 않았고, 맹인들을 위한 시설로도 사용하며 그들의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고 있다. 


이로써 콜롬비아 마약왕 나르코스 투어가 끝이 났다. 조금은 특별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여러 방면에서 놀라움을 많이 느꼈다. 먼저, 이런 투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나르코스 덕후들이 실제로 여기까지 와서 이런 투어를 들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마약왕 명소(?)들에는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구경 중인 관광객이 아주 많았다. 두 번째로, 에스코바르에 대한 메데진 사람들의 평가 역시 신선했다. 자신들의 국가 이미지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자신들의 먼 가족, 지인을 무고하게 희생시켰지만 메데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한 영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마약 카르텔은 검은돈으로 메데진에 다양한 인프라를 투자하였고, 수많은 관광객을 모으는 인공호수 등 여러 명소를 만들어냈다. 먹고사는 것과 옳고 그름의 사이에서 자신들만의 결론은 각자 다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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