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1월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수학능력시험을 보았다. 어쩌다 인문계고등학교를 오게 되었던 것일까. 중학교 3 중학교 3학년 그때까지 내가 가고 싶었던 고등학교는 대구에 남녀공학고등학교로 알고 있던 경북사범대학교 부속고등학교와 경북예술고등학교 중 예고를 희망했었다. 우선 중학교 다니는 동안 미술부 활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회에서 수상도 했었고, 나름 미술에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남녀공학이란 것도 무시하지 못했던 것 같다. 3년 동안 수컷들만 버글대는 교실에 있다 보니 본능적으로 여자가 그리워졌던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인문계고등학교를 가기를 원하셨었다. 예고에 들어가면 우선 당장 학원비가 많이 들 것인데 가정형편상 그런 비용을 대기가 넉넉잖았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고, 남자가 예고를 나와 무엇을 할지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이셨던 것이다. 그러면 대구공고로 가겠다고 하니 집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셨는데, 이번에는 담임선생님께서 헛소리하지 말고 배치고사나 준비하라고 하셨다. 아마 공고를 보내기에는 내 성적이 인문계 갈 성적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의 학창 시절 시험기간이란 집에 일찍 와서 실컷 잘 수 있는 그런 기간이었다.. 물론 이건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고, 훗날 군대 교육기관 OBC, OAC 가서도 변함이 없었다. 대부분 시험기간에 책을 한자라도 더 보기 마련인데, 나름 논리를 피자면 여태껏 안 보던걸 시험기간에 본다고 머가 달라질까 하면서 그냥 포기 아닌 포기를 하고 한편으로는 불안감과 근심 때문에 책을 베고 자긴 했었다. 그렇게 시험을 보고 난 성적을 보면 반에서 중간 정도로 등수가 30대로 벋어나 본 적이 없었고, 잘 받으면 10등권 정도를 유지했었다. 이렇게 시험공부를 안 하는 것에 비하면 나름 만족하는 성적을 받았기에 이후로 이런 습관이 계속 붙었던 것이다. 중학교 다닐 때도 미술부 활동하면서 그냥 그럭저럭 19등 20등을 유지하는 성적이었기에 담임선생님께서 공고를 보내주시지 않았고 그렇게 배치고사를 보고 난 뒤 그래도 남녀공학을 가보고 싶어 11 지망으로는 경북사대부속고를 썼지만 집 근처 남고로 배정받으며 또다시 수컷들과의 생활을 3년간 더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첫 대학생활은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반가량 떨어진 울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부 00학번으로 입학하였던 것으로 시작하였다. 왜 이곳을 가게 되었는지는 다른 이유는 없었다. 희망원서를 넣었던 학군에서 다 떨어지고 가장 안전빵으로 썼던 곳인데 여기만 합격이 되어서 간 것 같다. 수능성적을 받고 일단 학비가 저렴한 국공립을 우선적으로 지원했는데 거기선 점수가 모자랐던 모양이다. 집이란 테두리를 벗어나 방종의 생활을 만끽하며 미식축구부에 들어가 본업인 학생의 신분을 망각하고 마치 NFL에 드래프트 된 선수라도 된 마냥 보냈었다. 학과 수업보다는 동아리방에서 전날 마신 숙취로 윽엑 대거나 오후쯤에 슬슬 정신이 들면 또다시 운동을 하고 그러다 저녁에는 선배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갖는 그런 시간으로 2000년의 4월 5월을 보냈었다. 대학생활이라는 게 성인이 되어 스스로를 통제하고 자율적으로 학업과 그동안 못해본 사회생활을 하는 기간인데 나는 그 첫발을 아주 잘못 내디뎠던 것이다. 어쩌다 미식축구부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동아리 소개를 하는 장소에 있던 여자 매니저들이 예뻐서 그랬던 것이었나.. 아니면 생전 처음 보는 헬멧과 장비들이 신기해서였나. 미식축구를 아예 처음 본 것은 아녔었다.. 가끔 AFKN에서 주말 아침이나 점심쯤에 나오는 것을 채널 돌리면서 이건 뭐지 하면서 보다가 재미없어서 다시 가던 채널을 돌리며 접했던 경험이 있었다. 운동장에 선을 그어놓고 이쪽저쪽 팀원들이 부딪히고 뛰는데 도대체 규칙도 모르겠고 점수도 어떻게 나는 건지 정말 먼 나라 미국의 풋볼을 대학이란 곳에 와보니 할 수 있게 된 것에 입단하게 되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때는 알았을까? 지금 내가 덴버 브롱코스의 고장에 오게 되리라는 것을. 울산대 유니콘즈의 팀 심벌은 사실 여기 브롱코스 마크에 뿔 하나만 더 그려 넣어 만든 것이다. 그런 인연에서 일까 미식축구를 그만두고는 미국 NFL을 심심하면 찾아보게 되다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브롱코스의 경기는 꼭 한 손에는 맥주를 지참하고 레이지 보이에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보는 게 시즌 중의 일상이 되었다. 아직도 유니콘스 입단식 당시 헤드기어에 막걸리와 소주, 맥주 거기에 선배들의 타액과 체모, 추가로 입고 있던 양말이나 속옷 등을 섞어 동기들끼리 돌려 마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필 전달하던 마지막에 자리 잡고 있어 사랑스러운 동기들이 남긴 입단 주를 남김없이 처리해야만 했던 씁쓸한 장면도 함께 기억에 남아 있다. 허들을 짜고 원기! 를 외치며 흩어져 쿼터백의 시그널 구호에 라인맨들의 헬멧 부딪히는 소리를 내고, 리시버들은 뿌연 흙먼지를 내며 뛰고, 라인배커는 라인맨들 사이사이로 비집고 돌격하던 그 모습. 언젠가 NFL에 KWON이란 이름의 선수가 나오길 바라본다. 물론 그 선수의 피부색이 검더라도 Last name이 권이라면 나의 작은 소원은 이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