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불교에 객진번뇌(客塵煩惱)라는 말이 있다. 마음의 번뇌는 때 되면 떠나는 손님이라는 의미다. 어느 날은, 카운슬러와 얘기를 나누다가 “우울해요”라는 말끝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언제 울었나싶게 눈물이 그쳤다. 카운슬러가 물었다.
“지금 눈물이 그친 거 같은데, 우울한 기분이 어떤 것 같아요?”
“아까랑 똑같은걸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카운슬러의 말이 허를 찌른다.
“그래요. 감정이란 게 사실 그래요. 속상해서 눈물이 나다가 눈물은 이제 그쳤는데, 이전과 기분이 똑같다고 인식하는 것은 마음은 울기 전보다 개운해졌는데, 우리 '머리'가 습관적으로 우울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 있어요. 그 차이를 알아차리는 건 중요해요.”
한날은 미운 사람이 청첩장을 주기에 "청첩장을 왜 줬는지 모르겠다니까요."라며 불평을 했다. 카운슬러은 "그런데 안줘도 기분 나쁘지 않았겠어요? 줬으니 또 기분 나쁘고요"라고 말했다. 상대방이 밉기 때문에 이래도 저래도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이래도 기분이 안 좋고, 저래도 기분이 안 좋은 상황에, 뾰족한 해결책이 있을리 없었다. '설마 나 스스로 그저 습관적인 불평불만을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자, 그 일에 대한 불평을 관두었다. 그러자, 의외로 그 외의 많은 일에 대한 불평도 줄어들었다.
9월의 프랑스는 꽤 쌀쌀했다. 여행자를 대하는 공항이나 기차역의 직원들은 대개 무표정했다. 다만, 프랑스의 하늘은 유독 낮아서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 올라가면 코가 닿을 것 같았다. 기계같던 사람들과 달리 하늘은 먹구름 하나 없었다. 어느 날엔가 하트 모양 구름을 발견하곤 사진을 찍었다. 금방이라도 흩어져버릴 모양의 구름 같아서 괜스레 서둘러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이따금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프랑스에서 본 하트 구름이라든지 낮은 하늘 따위를 떠올린다. 그러면 오늘 아니면 내일이라도 유럽으로 떠나갈지 모를 구름에게 온 마음을 다해 인사를 띄운다. 프랑스 친구를 다시 만난다면 포옹을 한 뒤 프랑스어로 “꼬망 바 뛰?(잘 지냈어?)”라고 물어보리라. 그러면 그녀는 “트레비앙!(최고로!)”이라고 답할까. 그녀가 되묻거든 당당히 "기분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는 날, 그때 다시 한번 유럽에 가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