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보내준다는 것은

20년 만에 정든 곳을 떠나면서

by coloresprit


고된 나의 몸을 편히 쉬게 해 주던 오래된 나의 집에게 이별을 고하고, 나는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다. 20년 만에 이사를 준비하며 이참에 묵혀져 있던 짐들을 정리했다. 평소에 잘 버린다고 생각했지만, 곳곳에 숨겨진 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애정하던 책들과 음반들을 지인들에게 분양을 보내면서 몇 주의 시간이 흘렀다.

버리지 못해 보관하고 있던 기록들과 일기, 어릴 적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들도 이제는 보내주어야겠다. 하나하나를 다시 읽어보며 정리하던 중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받은 편지가 발견되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큰 서랍을 가득 채워져 있던 나를 걱정하고 지켜주는 마음으로 보내주었던 마음들이 시간으로 쌓여, 외롭던 시절에 '내가 충분히 사랑받았었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기억이라는 것이 현실에 쫓기다 보니 그런 소중한 마음을 흐려지게 하고 잊어버리게 했던 것 같다.






이사 전에 짐들을 정리해서인지 이사는 짧은 시간에 끝났다.

낯설지 않지만 또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동네에 오게 되면서 이 동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가게 된다.

반갑게도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고 아침마다 뛸 수 있는 공원로가 잘 조성되어 매일 뛰는 것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5일마다 시장이 열리기도 하는데, 이른 아침에 신선한 야채와 생선을 바로 살 수 있고 사람구경하는 재미도 톡톡하다.

처음엔 고민도 많았고 30여 년을 살던 익숙한 곳을 떠난다는 불안감이 크기도 했었다. 설렘보다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나를 한 곳에서 오래 머물게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지났다고 인간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까닭일까, 이곳이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