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슬퍼하긴 일러요, 수달
어린아이를 둔 30대 여성의 암 투병기는 무작정 슬플까?
'아직 슬퍼하긴 일러요'의 저자인 수달은 10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고작 30대였고 아이는 이제 6살이었으며, 남편은 해외 근무 중이었다.
수달 작가가 처한 상황만 두고 보면, 이 에세이는 마냥 슬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 표지에 그려진 일러스트처럼(이건 내 추측이지만 저 드라이기를 든 사람이 수달 작가인 것 같다) 작가는 '이건 슬픔의 암 투병기도, 그렇다고 매사에 감사와 감탄을 내뿜는 간증 스토리도 아님'을 시작부터 명확히 한다.
담담하지만 생생하게 펼쳐지는 유방암 투병기
책 초반부는 작가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과정이 그려진다. 생생한 묘사로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 유방마저 저릿해져 오는 느낌이지만, 필요 이상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담담한 톤이 유지된다. 물론 작가가 아이와 도서관에 가서 '미용실에 간 사자 루카'라는 책을 읽으며 머리를 밀고 싶다 말하는 장면에선 내 눈에서도 '찰랑 거리던 눈물이 똑떨어졌다'.
이 책의 진가는 중, 후반부부터
이 책이 일반적인 암 투병기보다 더 빛나는 이유는 암 투병이라는 경험을 들려주는 것에서 지나지 않고 그 너머의 삶과 우리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총 3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2,3부로 넘어가면서 작가는 본격적으로 드라이기를 들고 우리의 눈물을 말린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이야기들을 툭툭 던져준다.
암 투병 중인 환자에게 세상은 마냥 따뜻할 것 같지만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겪은 혹은 들은 경험들은 마냥 따뜻하진 않았다. 나를 걱정하는 듯하면서 남을 걱정한다거나, 오히려 아픈 나를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 암 투병까진 아니었지만 나도 직장 다니던 시절 많이 경험했던 울고 있을 때 뺨 때리는 기도들.
몇 년 동안 꼬박꼬박 보험금을 냈지만 매정한 태도로 보험사가 실사를 나온 과정도, 읽을수록 알쏭달쏭 해지기만 하는 검증되지 못한 여러 치료법들, 차가운 수술대만큼 냉담한 몇몇 의사들의 태도와 암 투병 중인 아내보다 집안일을 해줄 아내가 없는 남편을 걱정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까지... 읽는 내내 한숨이 흘러나왔다.
쉼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암 투병을 해본 적은 없지만 막 세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임신과 동시에 경력이 멈춰있는 여성인 내가 격렬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고강도의 업무에 시달리던 싱글 시절부터, 나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자기 관리'로 포장되어 한 명의 인간을 극한의 어떤 지점까지 몰아붙이는 인색함에 질려있었다.
아이가 난지, 내가 아이인지 모를 첫 3년의 육아가 끝나자 쉼을 허락하지 않는 이 사회의 인색함을 다시 내 목을 조여왔다. 쉼표에 인색한 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육아가 조금 살만해지니 바로 자존감이 하락하는 경험을 했다. 내 몸은 더 쉬고 싶다고 외치지만 그렇게 쉬었다간 내가 영영 묻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불안해졌다.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너저분한 집을 뒤로하고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펼쳐보지만, 내 신경은 온통 장난감이 널브러진 우리 집 거실을 부유한다. '난 워킹맘도 아닌데... 고작 애 한 명 키우는데... 7살까지 가정 보육하는 엄마들도 있다던데...' 류의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어 괴롭힌다.
그와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커다란 의문이 생겨난다.
'난 지금 노는 게 아냐. 가정을 돌보고 있잖아. 근데 왜 자꾸 불안한 거야?'
작가는 책에서 조기현 작가의 <새파란 돌봄> 중 '돌봄을 받는 사람과 돌봄을 주는 사람 모두 동일한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결혼 후 아내와 엄마가 되자 세상은 기다렸다는 듯 내 어깨에 돌봄이라는 일을 묵직하게 얹어주었다. 카드 할부처럼 조금씩 나눠주면 좋으련만 일시불로 한 번에 훅 들어온 이 돌봄은 누구와 나눠지기도 어려웠다. 상당한 양의 노동력이 들어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오히려 나에게 '조금 더 해야지! 이 정도도 못해?'라고 말했다.
홍익인간 이념이 있는 사회를 꿈꾸며
우리에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이념이 있다. 쉼을 허락하지 않고 돌봄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요즘의 한국 사회와는 결이 맞지 않는 이념이라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에 지친 인력들, 선천적 혹은 후천적인 질병으로 투병 중인 많은 환우들에게 제대로 된 위로를 건넬 방법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함께 울어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너그러운 시스템과 내가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해보자는 정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