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금쪽이들을 위한 심리학 책

어른의 중력,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

by 일상채색가 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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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사티아 도일 바이오크 작가는 심리 치료사이자 작가다. 살로메 융 심리학 연구소(The Salome Institute of Jungian Studies)의 소장이다.


심리학의 대가 카를 융의 융 심리학을 토대로 성년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20대 초중반을 대상으로 한 심리 연구와 치료에 전념해왔으며, 이와 관련된 주제로 강연과 글을 쓴다. (출처: 교보문고)



이제 막 성인이 된 20대의 멘탈, 괜찮을까

한국의 20, 3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무엇일까. 바로 '자살'이다.


10대 시절 숨 막히는 입시 경쟁을 뚫고 성인이 되었으니 마냥 행복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특히 팬데믹 이후 20대의 정신 건강에 대한 문제가 더 두드러지게 보인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이십 대 초반의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확연히 다른 아주 반짝거리는 빛을 내는 사람일 것이라 확신했던 이십 대 초반. 무한한 가능성이 현실을 만나 좌초하는 순간, 나도 그저 세상 속의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엔 너무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사회가 2030세대를 바라보는 시선

한동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문구는 처음 작가가 의도한 것 이상의 사회적 파장이 있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는 말과 함께 어린 어른들이 마주하는 무거운 중력을 낭만적인 현상 혹은 복에 겨운 투정으로 넘겨버리는 이들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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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카를 융의 연구를 통해 이 시기를 아이도 어른도 아닌 생의 1/4 지점, 즉 '쿼터라이프'라는 생의 주기로 지정하고 '심리적 방향감각을 제공해 줄 지짐과 이정표'를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안정형과 의미형

<어른의 중력>에서 작가는 쿼터라이퍼(쿼터라이프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삶)를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바로 '의미형'과 '안정형'이다. 책에서는 두 가지 유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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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책 초중반부에서 두 가지 유형에 대해 설명한 뒤, 여러 내담자와 진행한 상담 내용을 바탕으로 사례를 재구성해 보여준다. 실제와 유사한 사례를 읽으면서 의미형과 안정형에 대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총 네 명의 사례를 바탕으로 '성장의 네 기둥'이라 정의하는 발달 작업에 대해 설명한다.

분리, 경청, 구축, 통합으로 이뤄진 이 성장 기둥은 하나씩 미션 클리어를 하고 넘어가거나 숙제 같은 과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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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 경청, 구축, 통합

이 책에서 다뤄지는 '성장의 네 기둥'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 전 읽었던 오소희 작가의 <언니들의 마음공부, 부모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치유의 3단계'와 이 책에서 다뤄지는 '성장의 네 기둥'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자기만의 삶을 시작하기 위한 욕구를 모든 인간은 가지고 있으니 긴 시간에 거쳐 경제적, 정서적, 심리적 의존 관계를 천천히 재정립하고 유익하지 않은 관계와 관점에서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는 것. (경계 설정)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내면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 (대면과 이해)

자신만의 독특하고 고유한 삶을 구축하고 이 모든 것이 통합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내 인생을 사랑할 수 있고, 그 고유한 선택을 할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긍정의 지점)

결국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나만의 길'을 찾으려면 '내면의 나침반' 즉,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쿼터라이프의 여정을 응원해주는 사회

작가는 <어른의 중력> 맺음말에서 쿼터라이프라는 시기를 지나는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따뜻한 말을 남긴다. 모든 시대마다 쿼터라이프의 존재는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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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22년도 마찬가지다. 쿼터라이퍼들에게 그 시기를 지나간 세대들은 얼마나 가혹한가.

그들이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어른'이 몇이나 되나. 나부터 반성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제도적인 측면이나, 사회적 분위기 측면에서 쿼터라이프를 지나는 어린 어른들에게 좀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그들이 고통을 겪으며 성장하고자 애쓸 때, 그 고통을 공감해주고 그 여정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세상을 꿈꿔본다.

내가 반짝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무수한 모래알 중 하나라고 슬퍼하는 쿼터라이퍼에게 '모래알도 햇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빛난다'고 말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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